법조계 “법적용어로 보기 어려워, 법리 외 너무 다양한 요인 고려”
청 - 환경부 인사 논의는 관행 판단… 블랙리스트라는 프레임 깨져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김은경 전 장관이 영장이 기각된 26일 새벽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새벽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부장판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김은경 전 장관에게 청구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기각 결정 이유를 밝히면서 ‘최순실 일파’ 같은 표현을 쓰는 등 법리에서 많이 벗어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박 부장판사는 기각 결정 뒤 700자 분량의 이유를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청구하고 표적감사를 벌였다는 혐의를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한동안 공공기관 인사ㆍ감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새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 정상화를 위해 인사수요를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 △복무감사 결과 실제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던 점 등을 들었다.

청와대와 환경부가 논의해 낙점하듯 공공기관 인사를 진행했다는 점도 ‘관행’으로 판단했다. 박 부장판사는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장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블랙리스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라던 청와대의 항변,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때는 이보다 더 했다”는 여권의 항변에다 더 무게를 실어준 셈이다.

이번 기각 결정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최순실 일파’ 같은 표현은 법적 용어라 보기 어려운데다, ‘공공기관 정상화’란 명분은 위법 여부보다는 양형 요건에 가까운데 영장 기각 사유로 고려됐다”며 “영장전담판사로서 법리 이외 너무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다른 변호사도 “위법성 인식이 약하다고 하는 건 위법한 데 큰 문제는 아니라는 식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영장 기각으로 검찰 수사는 타격을 입게 됐다. 3개월여 동안 집중 수사를 벌여 수 천 쪽 분량의 증거 자료를 들이밀었지만 ‘블랙리스트’라는 사건의 프레임 자체를 법원이 거부해버린 셈이어서다. 당장 김 전 장관과 공모 관계 등으로 설정했던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 라인에 대한 추가 수사 방향이 모호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한 판단이 많이 다른 것 같고, 증거 문제도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영장 기각 사유가 워낙 구체적으로 기재가 돼 있기 때문에 보강 조사해야 할 사항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 보완 작업이 마무리되면 영장 재청구 여부 등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영장기각으로 이날 새벽2시 30분쯤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선 김 전 장관은 “앞으로 조사를 열심히 받겠다”고 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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