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에 요동치고 있다. 유럽과 중국에 이어 미국으로 번지고 있는 경기 부진 우려가 공포의 연료라면, 여기에 불을 댕긴 건 미국 장단기 국채의 금리역전이다. 국채 장기물 금리가 단기물보다 높은 통상적 가격 질서가 뒤집힌 상황으로, 미국에선 일단 발생하면 1년쯤 뒤엔 어김없이 침체가 나타나 확실한 R의 징표로 꼽힌다. 금융 위기 이후 시장 변화를 들어 금리 역전이 침체로 직결된다는 걱정은 기우라는 반론도 제기되는 가운데 전 세계 시장이 미국 국채 가격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 국채 금리 역전에 증시 급락
25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이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줄줄이 급락했다. 미 국채시장에서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면서 ‘나 홀로 호황’을 누려온 미국마저 침체의 길목에 들어섰다는 불안심리가 증폭됐기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간) 장중 만기 3개월 미국 국채 금리와 만기 10년 국채 금리는 미국 내에서 금융 위기 조짐이 완연하던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 역전됐다. 당일 미국과 유럽 증시가 일제히 2% 안팎으로 하락 마감한 것은 물론이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2.09포인트(1.92%) 빠진 2,144.86으로 마감했다. 지난해 10월 23일(-2.57%) 이후 5개월만의 최대 낙폭이다. 코스닥지수도 16.76포인트(2.25%) 내린 727.21로 장을 종료했다.
일본 닛케이225는 650.23포인트(3.01%) 폭락한 2만977.11을 기록, 심리적 지지선인 2만1,000선이 무너졌다. 닛케이225가 3% 넘게 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25일 5.01% 떨어진 이후 3개월 만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은 61.12포인트(1.97%) 떨어진 3,043.03에 장을 마쳤다.
◇금리 역전, 이번에도 R을 부르나
장ㆍ단기 금리 역전은 시장에서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믿을 만한 전조로 여겨진다. 미국 국채시장에서 1969년 이래 발생한 7번의 금리 역전(10일 이상 지속 기준)을 살펴보면 이르면 4개월 반 만에, 늦어도 1년 4개월 뒤에는 반드시 침체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금리 역전이 경기 침체의 징조로 설명되는 논리는 이렇다. 장기 국채는 물가 상승, 경제적 악재 등 보유 기간 중 손해(가격 하락 또는 금리 상승)를 유발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있다 보니 이를 감안한 가격 할인(기간프리미엄)이 작용해 단기 국채보다 금리가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대거 향후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면 이에 대비한 장기 국채 수요가 늘고, 이에 따라 장기물 금리 하락(가격 상승)이 발생하며 장ㆍ단기 금리 관계가 뒤집힐 수 있다.
지난 50년간 7차례에 지나지 않았던 금리 역전이 나타났다는 것은 시장의 향후 경기전망이 그만큼 어둡다는 의미다. 3개월-10년물 금리 역전에 비해 중요도는 떨어지지만, 미 국채 시장에선 지난해 12월 초에도 3년물-5년물 금리가 일시 역전되면서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국채 장기물 금리 하락이 미국만의 현상일 리는 만무하다. 우리나라 국채 시장에선 25일 3년물과 10년물 금리 격차가 10년 7개월 만에 최저치(11.8bp, 1bp=0.01%포인트)로 좁혀졌고,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1.5bp 떨어져 제로금리를 하회(-0.095%)하며 역시 10년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예전과 다르다” 반론도
그러나 경제 전문가 사이에선 금리 역전이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각국 중앙은행이 2008년 금융 위기 타개를 위해 장기물 위주로 국채를 대량 매입하는 양적완화(QE) 정책을 장기간 구사하면서 장기 금리가 낮아진 상황이라 장ㆍ단기 금리 역전을 지금의 불안 심리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국채 금리는 역전됐지만 채권시장의 다른 부분, 예컨대 회사채에선 경기침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미국 노동시장과 구매력, 기업투자 등 다른 경제 지표는 여전히 견조하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주 공개될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국 성장률 확정치가 지금의 경기둔화 현상이 일시적일지 구조적일지 여부를 판가름할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자들은 특히 28일 미국의 지난해 4분기 성장률 발표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지표로 봐도 글로벌 경제의 앞날은 밝지 않다. 미국의 경우 정부 전망치는 2.6%(전기 대비 연율)이지만 시장에선 이보다 훨씬 낮은 1.8%(JP모건)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보다 국제경제 상황에 민감한 유럽 지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유로존 핵심인 독일의 구매관리지수(PMI)는 3개월 연속 하락하며 44.7을 기록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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