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예산 1조7000억 대부분 미사용
경기부양ㆍ일자리 위한 추경 편성하려면
“경기 개선 모멘텀” 경제전망 번복해야
정부가 올해 1분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사실상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작업에 착수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미세먼지 대응” 주문,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경 권고” 등으로 어느새 규모는 부쩍 커졌지만 국회를 설득할 마땅한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자칫 정부 스스로 내뱉은 말을 뒤집거나, 꼭 돈이 필요한 사업을 찾기 어려울 거란 우려도 나온다.
◇’경기 개선’ 전망 번복하나
24일 각 부처에 따르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난 22일 “미세먼지 관련 추경이 검토되고 있다”는 발언 이후 정부 내 추경 편성 움직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이번 추경이 법률상 요건에 맞는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국가재정법상 추경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중대 여건 변화 △법에 따른 국가 지출 증가 상황 등이다. 당정이 미세먼지를 ‘대규모 재해’로 본다 해도 올해 관련 본예산 1조7,000억원 대부분이 아직 남아 있어 일각에서 제기하는 ‘10조원 안팎 추경’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도 최근 “환경부 주도로는 추경 규모를 1조원 가량 예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때문에 대규모 추경을 한다면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요건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앞서 정부는 ‘최근경제동향 3월호(그린북)’을 통해 “주요 산업활동 및 경제심리 관련 지표들이 개선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경기 부양 추경을 하려면 경기침체를 전제로 해야 하는데, 정부 스스로의 경기 진단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경기지표 개선 모멘텀이 있다고 했던 정부가 추경을 위해 경기 전망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이는 기재부와 청와대로서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신규 사업 발굴도 어려워
대규모 추경을 쏟아 부을 사업을 발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토로다. 한 관계자는 “당해 년도에 할 수 있는 신규사업은 거의 없고 기껏해야 계획 수립이나 조사비 정도 지출밖에 안 된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추경을 한다면 기존 사업에 예산 투입액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올해 편성된 미세먼지 관련 예산의 경우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전기ㆍ수소차 보급, 1톤 화물차 액화석유가스(LPG) 전환 신규 지원 등과 어린이ㆍ노약자 등 미세먼지 취약계층 마스크 보급 확대, 미세먼지 저감 도시숲 조성관리 등에 투입되기로 돼 있다. 추경을 한다면 이 같은 사업에 보조금, 지원금을 대폭 늘리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올해 예산을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인 전년 대비 9.5%나 늘려 기존 사업 재원을 대폭 증액한 상황이어서 정부로선 그 효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같은 사업에 재정을 더 쏟아 붓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처지다.
◇본예산 잉크도 안 말랐는데
홍 부총리는 앞서 추경 관련 질문 때마다 “예산 조기집행, 공공기관 투자확대, 민자사업 활성화 등 재정확대 노력이 먼저”라고 답해 왔다. 그런데도 사실상 5년 연속, 그것도 채 1분기가 지나기 전, 본예산이 풀리고 있는 시기에 또 다시 추가재정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전문가들은 본예산 잉크가 마르기 전에 본예산을 무력화하고 정부의 경기예측 실패를 시인할 정도로 추경이 다급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가령 미세먼지 대책만 해도, 기존 관련 예산을 다 쓰지도 않았고, 환경관련 예산 이전용, 예비비 집행 등 다른 수단도 써보지 않고 추경 카드를 꺼내는 게 맞는 접근이냐는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반기문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위원장이 임명되긴 했지만 미세먼지 대책의 방향조차 나온 게 없는 마당에 추경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짓”이라며 “일자리안정자금, 생활SOC 예산 등 다 쓰지도 않은 경기부양 예산도 넘치는 상황에서 염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 규모는 물론 편성여부도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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