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지진으로 고통 받는 포항시민의 목소리를 대신할 범시민대책기구가 발족됐지만 정작 시민들에게 외면 받는 분위기다. 포항시장을 비롯해 각계각층 대표들이 범시민기구를 구성하고 소송보다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시민들은 지진피해 소송을 진행 중인 민간단체로 몰리고 있다. 더구나 포항시장 등이 속한 범시민기구에 여당소속 포항 지역위원장들이 불참하고, SNS로 상대로 정권 탓만 벌이자 내부에서도 ‘한심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과 서재원 시의회 의장, 박명재ㆍ김정재 국회의원,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시민ㆍ경제ㆍ종교단체, 정당 등 60여명은 23일 오후 2시 포항 북구 덕수동 포항지역발전협의회에서 포항지진 범시민기구를 구성했다. 단체 명칭은 ‘포항 11ㆍ15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로 결정했다.
범대위는 국가를 상대로 한 개별 피해 소송보다는 지난 2015년 1월 제정됐던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처럼 ‘지진 피해지원 특별법’ 제정에 주력하기로 했다.
범대위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 법적 지원 근거가 없어 정부와 피해시민 모두 복잡한 소송 절차에 의존해야 한다”며 “특별법이 제정되면 배상금 지급을 신청하고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대위가 결성된 날에도 국가를 상대로 한 지진피해 소송을 접수 받는 민간단체인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이하 범대본)’에는 문의 전화와 신청이 줄을 이었다.
24일 범대본에 따르면 지난 20일 포항지진이 포항지열발전으로 촉발됐다는 정부조사연구단 발표 후 소송 신청자가 하루 400명 이상 몰릴 정도다. 범대본의 네이버 밴드(BAND)도 최근 하루 수 수백 명씩 가입해 6,700명을 넘어섰다. 범대본에서는 지난해 말까지 1ㆍ2차 소송인단 1,227명이 국가를 상대로 포항지진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범대본 사무실을 찾은 최모(44ㆍ북구 장량동)씨는 “정부조사단이 지열발전 때문이라 밝혔으니 승소할 것 같고, 비용도 10만원 정도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찾았다”며 “밴드에 가입만 하면 돌아가는 정보나 소송 진행 상황도 알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포항시장 등이 속한 범대위는 관변단체와 전ㆍ현직 시ㆍ도의원 중심으로 구성돼 시민들이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다 여당 관계자들이 범대위 출범식에 불참하고 SNS등으로 상대 정권 탓을 하며 공방을 벌이자 내부에서도 뒷말이 일고 있다.
범시민대책위 한 위원은 ”출범식에 가 보니 여당 정치인들은 불참하고 전직 시ㆍ도의원과 지방선거 낙선자 등 어디나 얼굴을 내밀고 싶어하는 구태 정치인들과 관변단체 대표들로 가득했다”며 “한데 똘똘 뭉쳐도 특별법이 제정될까 싶은데 서로 손가락질 하고 있으니 앞으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에 포항시 관계자는 “범시민기구가 우선 구성되고 지진 관련 민간단체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며 “범시민대책위원회가 막 출범한 상태로, 본격 활동에 들어가면 실질적으로 시민의 이익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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