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ㆍ소설 같은 ‘연좌제’ 족쇄]
미성년 자녀 2만여명 친인척 위탁ㆍ홀로 생활
주변 편견ㆍ눈총에 상당수가 정서ㆍ행동 위기
‘나는 작은아버지에게 위탁됐다. 학교에는 다니지 못했다. 전학한 첫날에 다닐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반 아이들은 내가 누군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작은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다는 게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거나 모두가 잠든 밤에만 방에서 나갔다. 밥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었다. 종일 참았던 용변을 보고 몸을 씻었다. 씻는다는 건 일종의 의식이었다. 내가 공포나 혐오감을 주는 괴물이 아님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정유정의 장편소설 ‘7년의 밤’에 그려진 수용자(收容者) 아들 최서원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아버지의 범죄혐의를 투영 당했다. 그의 신분은 학생이나 점원이 아닌 살인마의 아들. 신분이 드러나는 순간 일상의 안정은 깨지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니다. 2만명 넘는 우리 사회 청소년들이 매일 겪는 고된 세상살이다. 출소자 자녀는 자신의 울타리였던 부모와 이별하는 아픔만을 겪는 게 아니다. ‘범죄자 자녀’라는 낙인이 찍힌 채 성장기를 보내며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 법무부 교정본부가 지난해 10월 조사해 공개한 ‘수용자 자녀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협력체계 구축’ 자료에 따르면 수용자를 부모로 둔 미성년 자녀는 2만 1,765명이다. 이 가운데 부모가 양육할 수 없는 사정으로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맡겨진 자녀가 6,636명, 그조차 여의치 못해 홀로 생활하는 미성년 자녀는 1,209명에 달한다. 성인이 된 형제자매나 지인이 양육하는 일도 있지만 이들 청소년의 상당수가 정서ㆍ행동 위기를 겪는다. 성인이 돼 조사대상에서 제외됐거나 이미 출소한 수형자 자녀까지 포함하면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죄로 숨 죽인 채 살아가는 이는 훨씬 더 많으리라 추산된다.
17일 종영한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출소자와 그 가족의 신산한 삶을 담아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극중 강수일(최수종 분)은 살인 혐의로 28년간 복역한 뒤 출소했으나, 새 삶을 살아보려 문을 연 아빠빵집에 “살인자가 만든 빵 먹지 말라”는 붉은 글씨가 짙게 새겨지며 재기에 고통을 겪는다. 딸 김도란(유이 분)은 아버지의 죄로 이혼당하고 빵집에 찾아와 비난하는 이웃들에게 날계란을 맞으며 손가락질을 받는다. 드라마에서처럼 ‘도란이는 무죄’이고, 강수일은 죗값을 치렀지만 이들이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융화되어 살아가는 건 물 위의 기름처럼 힘든 일이다. 출생의 비밀, 고부갈등, 신데렐라 여주인공, 시한부 설정 등 주말 안방극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진부한 소재로 비판이 많았던 이 드라마의 이면엔 이처럼 우리사회가 외면했던 수형자 가족의 고통 받는 삶이 자리잡고 있다.
수형자 가족은 오로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숨 죽인 채 살아간다. 결코 범죄자가 아니지만 그림자처럼 살아야 하는 안타까운 피해자이다. 교도소 밖 친족들이 감수해야 하는 눈총과 손가락질, 수군거림은 이 사회가 만들어 낸 연좌제가 아닐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사기혐의로 3년 간 복역한 뒤 출소한 황보람(48ㆍ가명)씨는 “사람들의 편견을 이해할 수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제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저 역시도 (수형자와 그 가족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편에 섰을지 모릅니다.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딸이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비로소 출소자에 대해 관대해지더라고요. 대통령도 교도소 다녀오는 세상 아니냐고요.”
죗값을 치르고 출소했지만, 황씨와 가족은 여전히 마음 졸이며 산다. 혹시라도 그의 전과가 드러나 비난을 받고 살게 되진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따라다닌다. 출소 후 일자리를 찾을 때는 고향에 전과가 알려져 재기가 어려웠다. 복역 중 이혼한 남편과 동향인 탓이다. 하는 수 없이 멀리 떠나야 했다. “계산일을 하는데, 늘 조마조마 해요. 혹시라도 (사건을) 아는 사람이 올까 봐 두려워요. 내색은 안 하지만 아이들도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요. 둘째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유명한 사람이 됐을 때 ‘빚투’논란에 휘말리면 어떡하느냐고. 사실은 이번 인터뷰도 아이가 못 하게 했어요. 원치 않게 전과가 다시 알려질까 봐 ‘수형자 자녀’라는 낙인이 따라다닐 까봐 걱정된다고요.”
황씨는 과거와 철저히 단절하기 위해 숨는 편을 택했다. 시댁과 왕래도 끊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향한 부당한 비난은 먼 길을 날아와 황씨 가족의 귀에 들어왔다. “남편이 재가를 해야 하는데 아이가 셋이라 여의치 않다면서, 아이들이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는데…”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황씨 자녀들은 성장기에 접한 여러 부당한 대우를 잘 이겨냈다. 하지만 종종 숨겨져 있던 분노를 무섭게 표출한다. 갑자기 폭식을 할 때도 있다. “제 자신이 교도소에 가게 된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 심신이 소진된 데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커서 아이들 마음을 깊이 들여다 봐주지 못 했어요.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을 텐데, 학원도 다녔을 텐데. 성장기에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어서 벌어진 일이니 이따금 터져 나오는 분노쯤이야 감수하며 삽니다. 올해보다 내년엔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요.”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꿈을 펼치기도 전에 냉담한 시선과 마주했던 십대들은 우리 사회가 만든 편견의 피해자들이다.
다행히 수용자 미성년 자녀에 대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체계화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부모의 책임으로 죄 없는 아이들이 사회로부터 비난과 소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아동인권보호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수용자가 신청하면 교복이나 학비, 학습교제, 준비물을 지원하는 학업지원 사업을 펴고 있다. 또 거주지원과 함께 대학생 멘토링과 문화체험 활동 기회를 주고, 자녀뿐 아니라 가족을 대상으로 한 심리 상담도 실시하고 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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