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리 꽃(사진 양형호)

기온이 풀렸습니다. 유난히 건조했던 겨울 날씨에 바싹 마른 땅엔 풀과 나무들이 싹을 힘있게 펼쳐내어 줄 물이 부족했습니다. 그 마른 대지에 자칫 부주의로 산불이 번지면 어떡하나 싶고, 기온이 올라가면 함께 찾아오는 미세먼지 걱정까지 보태어 설렘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어제 수목원 산책길에선 여기저기 삐죽삐죽 올라온 새싹이며 마른 나뭇가지엔 생명의 기운들이 퍼지는 것을 보니 덩달아 행복이 스며들더군요. 수목원 소리 정원에는 지난해 키를 키워 살다가 서리를 얻으며 마르고 늘어져 멋진 겨울 풍광을 만들어주었던 풀들을 정리했습니다. 새봄에 올라온 새싹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이지요.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실개울의 물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이즈음 되면 이런저런 봄 식물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나기 시작합니다.

가지에 가득 꽃 핀 히어리(사진 국립수목원)

제게 “이젠 정말 봄이에요”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국립수목원 키 작은 언덕에서 피어난 히어리무리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개나리 진달래보다 한발 먼저 피어나는 히어리는 작고 연한 노란꽃들이 포도송이를 만들어 잎도 없이 나무가득 달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꽃색이 은은하니 기품이 있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노란색에 흰빛을 섞은 꽃구름이 머문 듯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히어리”도 처음 들어보신다고요? 미선나무처럼 히어리도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나무입니다. 집안까지 특산인 미선나무와는 달리 히어리는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히어리 집안에 속하는 나무들이 중국이나 일본에는 여러 종류들이 있어 일부 학자들은 일본산 나무와 같은 나무라고 발표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수목원에서 형태는 물론 보다 정밀한 유전분석을 하여 비교해보니 그 어떤 나무와도 다른 계통의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임이 확인되었지요.

가지에 가득 꽃 핀 히어리(사진 양형호)

자생지도 참 신기합니다. 남해, 산청, 구례 등 주로 남쪽에서 가끔 발견되는데, 중부지방은 뚝 건너뛰고 경기도 명성산과 강원도와의 경계인 광덕산에도 자랍니다. 워낙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히어리의 집단을 분석해보니 동일한 계통이더군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지금은 신도시가 들어선 수원의 광교산에 몇 그루 있던 히어리를 은사님이 알려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찾기가 어렵네요. 우리 산야가 온전하게 보전되었더라면 전국적으로 볼 수 있었던 우리나무가 아니었나 싶어 아쉽습니다.

히어리라는 이름도 예쁘고 특별합니다. 유래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송광사에서 처음 발견되어 중국명을 가져와 송광납판화라고도 했습니다. 이 나무가 발견된 순천지역에서는 ‘시오리’라는 별칭이 있으며 이 나무가 십오리(十五里)정도 마다 드물게 보게 되어 그리 부르던 것이 히어리라고 기록되었다는데 정확하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단풍든 가을 히어리

히어리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 들어가다 보니 우리나무 하나를 온전하게 알아가는 일은 참 지난하다 싶었습니다. 매화나 대나무와 같이 중국원산의 나무들은 문화와 연계되어 넘치도록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입니다. 알고 보면 히어리는 꽃만 고운 것이 아니라 밝은 갈색이 도는 가을단풍도 일품이며, 그 잎 떨어지고 나면 드러나는 수피의 무늬와 그 자유로운 곡선의 줄기들은 마치 하나의 예술품처럼 멋지답니다.

나무를 심는 계절입니다. 미세먼지나 기후변화가 걱정이라면, 내 삶에 잿빛 대신 초록을 입히고 싶다면, 이 봄엔 우리나무 가운데, 평생 함께할 반려나무 하나 찾아보고, 한 그루라도 꼭 심는 실천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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