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불과 몇 주 앞두고 있는 핀란드에서 중도우파 연립정부가 무너졌다. 보건복지개혁 관련 법안(SOTE)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자 현직 총리를 포함, 내각 각료 전원이 책임을 지고 총사퇴를 한 것이다. 고령화 사회 대비를 위해 우파 정부답게 ‘복지 예산 축소’라는 해법을 내놓으며 제도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의회와 지방정부 설득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좌절됐다. 전임 정권은 물론, 그 이전 정부 때에도 추진됐었던 복지 분야 개혁은 이번에도 물 건너갔고 또다시 다음 정권의 몫으로 넘어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8일(현지시간)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가 개혁안 입법 좌절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고 전했다. 성명에서 시필레 총리는 “사회제도 개혁은 정부의 주요 현안 중 하나”라면서 “그러나 현 국회 상황을 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가망이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총리는 4월 총선을 통해 새 정부가 구성되기 전까진 임시 관리내각을 맡는다.
SOTE 개혁의 핵심은 의료서비스 효율화였다. 현재 295개 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보건복지제도를 보다 효율적인 18개 자치주로 이관해 통합ㆍ관리하도록 한다는 것. 또한 공공 의료뿐 아니라 민간 의료로도 환자들의 선택 권한을 넓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2029년까지 약 30억유로(3조8269억원)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핀란드 정부의 전망이었다.
정보기술(IT)업계 기업가 출신인 시필레 총리는 핀란드가 노키아의 몰락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일자리 20만개 창출 △사회보장비용 절감 등 친(親)시장적 공약을 내걸고 2015년 4월 총선에서 승리, 총리직에 올랐다. 그는 “핀란드가 제2의 그리스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사회보장비용 절감 등으로 지출과 부채를 줄이겠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취임 후 시작한 복지제도 개혁은 거듭 실패했다. “복지제도를 미리 간소화하지 않으면 고령화 진전에 따른 막대한 비용 증가를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자치단체의 반발, 사회민주당 등 야당의 비판, 그리고 위헌 논란 시비에 휘말리면서다. 지자체별 복지제도의 편차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18개 자치주 단위 운영 계획’을 세웠으나, 권한을 뺏기게 되는 수도 헬싱키나 템페라 등 지자체는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지난해 2월 발표된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민영화에 대한 야권의 거센 반발도 주요한 갈등 원인이었다.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은 ‘선택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의료서비스마저 ‘이익’을 좇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영의료 기관은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진료에 매달리고, 그 결과 공공의료 부문은 ‘위험성은 높고 수익성은 낮은’ 환자들만 떠맡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위헌 논란도 있었다. SOTE 개혁은 공공부문이 전담해 온 의료 분야를 민간과 제3부문에 맡기려는 시도인데, 현재 핀란드 헌법상으로는 복지제도 등 관련 행정권한이 오직 공공당국에만 있는 것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사회민주당은 21%, 연정의 일원인 보수 성향 국민연합(NCP)은 17%의 지지율을 각각 보였지만 시필레 총리가 속한 중앙당은 14%로 고전했다. 2017년 지자체 반발에 대해 “전임 정부들은 개혁 과정에서 굴복했지만, 핀란드는 더 이상 그럴 여력이 없다”고 했던 시필레 총리였으나, 그도 결국 설득에 실패한 셈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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