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김영삼 한국기원 사무총장, ‘커제 vs 이세돌 특별대국’ 유치한 K바둑의 독점 중계 거부
한국기원 소유의 바둑TV와 공동 방송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기득권 앞세워 바둑 방송계에 횡포…매년 한국기원과 맺는 정보이용료 족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이달 5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렸던 ‘3.1운동 100주년 기념 블러드랜드배 이세돌(맨 오른쪽) vs 커제 특별대국’에서 대국 직후, 두 선수가 복기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이세돌 9단은 커제 9단에게 156수 만에 불계패했다. 한국기원 제공

한국기원의 삐뚤어진 갑질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상식 밖의 규정을 앞세워 소리 소문 없이 바둑 방송계에 강압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어서다. 당하는 ‘을’의 입장에선 한국기원이 가진 절대적인 기득권 앞에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한국기원의 횡포는 최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벌어진 ‘2019 블러드랜드배 이세돌 vs 커제 특별대국’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 대국은 당초 바둑 전문 케이블 채널인 ‘K바둑’에서 오랜 노력 끝에 독점 생방송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K바둑은 지난해부터 블록체인 업체인 블러드랜드를 후원사로 정하고 한국기원에 이 대국의 주관 및 주최를 요청했다. 규정상, 한국기원 소속 프로바둑 기사들의 대국은 한국기원에 동의를 받게 돼 있다.

한국기원측의 부당함은 이 과정에서 제시된 황당한 전제 조건으로 불거졌다. 김영삼(45) 한국기원 사무총장측이 K바둑에 커제(22) 9단과 이세돌(36) 9단의 경기를 바둑TV와 공동 방송 해야 한다는 내용을 이 경기의 주관 및 주최 요건으로 강요하고 나선 것. 한국기원 관계자는 “한국기원 소속의 프로바둑 기사가 기원 주관이나 주최로 진행되는 대국에 참가할 경우, 해당 경기는 바둑TV에서도 방송을 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서 K바둑에 공동 방송을 요청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K바둑의 ‘속앓이’도 시작됐다. K바둑 입장에선 야심작으로 준비한 이 대국을 경쟁사인 바둑TV와 함께 생방송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기원측의 요구가 달가울 리 만무해서다. K바둑은 수 차례 한국기원측에 단독 생방송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한국기원과 K바둑이 생방송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 중임에도 불구하고 바둑TV에선 프로그램 방송 도중, 하단 자막 광고로 커제 9단과 이세돌 9단의 특별대국 생방송 일정을 알렸다. 결국, K바둑은 공 들여 유치한 특별 대국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경쟁사인 바둑TV와 동시에 내보내야만 했다.

내부 규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한국기원과 바둑TV의 관계를 살펴보면 기원측의 얄팍한 속셈은 금세 드러난다. 바둑TV의 주인이 바로 한국기원이기 때문이다. 1994년 2월 설립된 바둑TV는 삼성물산과 중앙방송, 온미디어 등을 거쳐 한국기원에서 인수, 2016년1월부터 운영 중이다. 바둑TV는 한국기원 덕분에 경쟁사에서 마련한 ‘커제 vs 이세돌’ 빅이벤트 프로그램을 ‘손 안대고 코 푸는 식’으로 손쉽게 가져간 꼴이다. 한국기원이 기원 소유인 바둑TV의 편에 서서 공정성이나 형평성을 상실한 논리로 바둑 방송계에 악영향만 미치고 있는 셈이다.

한국기원의 이런 독단적인 행보 이면엔 매년 방송 채널과 진행하는 정보이용료 계약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기원은 K바둑과 기원 소속 프로바둑 기사들의 초상권 및 기보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연간 수 천 만원대 계약을 맺고 있다. 만약 K바둑이 한국기원측에 ‘괘씸죄’라도 걸려서 정보이용료 인상을 강요 당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바둑 방송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보이용료 계약 협상 테이블에서의 주도권은 철저하게 한국기원의 고유 권한처럼 굳어져 있단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바둑에선 향후 특별대국과 같은 이벤트 기획 자체를 아예 포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별화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고 할지라도 경쟁사인 바둑TV와 함께 방영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추진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어서다. 아울러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과 더불어 바둑 대중화를 선도하겠다는 의미로 출발한 K바둑의 설립 목적까지 한국기원의 압력에 퇴색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곱지 않은 평가는 바둑계 내부에서조차 나온다. 한국기원 소속의 한 프로바둑 기사는 “K바둑과 연관된 이번 사태는 심판으로서 공정한 경기를 유도해야 할 한국기원이 마치 자기팀 소속 선수에게 유리하도록 편향된 관점에서 불공정한 게임을 진행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한국기원에서 바둑TV를 분리해 내는 게 순리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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