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전설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갈릴레이의 말은 그냥 전설이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든지, 독일 화학자 케쿨레가 뱀 한 마리가 자신의 꼬리를 물어 고리를 만드는 꿈을 꾼 후 벤젠의 고리형 구조를 밝혀냈다는 사실도 그냥 전설이다. 마치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처럼 말이다. 원래 중요한 사건에는 그럴싸한 전설이 필요한 법이다.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에게도 꿈을 꿨다는 전설이 있다. 그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멘델레예프는 꿈에서 어떤 표를 보았다. 표에는 원소 기호들이 흩어져서 배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표에서는 그 원소의 화학적 성질들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꿈에서 깨어난 멘델레예프는 꿈을 풀어서 ‘원소의 구성 체계에 대한 제안’이라는 논문을 써서 러시아 화학회에 발표했다. 그날이 바로 1869년 3월 6일. 오늘로부터 딱 150년 전이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는 꿈 말고도 전설 같은 이야기가 또 있다. 2019년 3월 6일이 주기율표 150주년이라는 것은 사실과 어긋난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멘델레예프 주기율표가 발표된 1869년에도 여전히 기원 전 46년에 발표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582년에 로마에서 제정된 그레고리력을 러시아는 1919년에야 도입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율리우스력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려면 13일을 더해야 한다. 덕분에 러시아 달력에는 10월 혁명 기념식이 11월에 있고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그레고리력에 주기율표 150주년이 되는 날은 오는 3월 19일이다. (2019년 3월 1일은 3ㆍ1 만세 운동 100주년이 맞다. 조선은 1896년에 그레고리력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멘델레예프가 만든 표를 주기율표라고 한다. 주기율표는 고등학생이 가장 싫어하는 표이기는 하지만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표라는 데에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한다. 주기율표가 없었다면 각 원소들의 특성을 일일이 암기해야 한다. 하지만 주기율표만 머리에 넣어두면 원소들의 수많은 특성들이 자동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표를 멘델레예프만 만들고 싶었을 리가 없다. 당시 많은 화학자들이 원소의 규칙성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표를 꿈꾸었다. 실제로 다양한 주기율표가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주기율표는 멘델레예프가 만든 주기율표와는 많이 다르다. 멘델레예프는 원소를 원자량, 즉 원자의 질량 순서대로 배열했지만, 요즘 주기율표에는 원소들이 원자번호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즉 원자 핵 안에 들어 있는 양성자 수가 기준이 된 것이다. 원소의 화학적 성질은 양성자의 숫자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반응은 전자들이 하지만 중성 원자의 전자 수는 양성자 수와 같기 때문에 어차피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용하는 주기율표와 멘델레예프가 만든 주기율표가 다른 데도 불구하고 꿈 전설까지 만들어서 굳이 그를 주기율표 발명가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과학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그노라무스(ignoramus)’, 즉 ‘우리는 모른다’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과학의 기반이다.

수많은 화학자들이 주기율표를 만드는 데 실패한 이유가 있다. 당시 화학자들은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62가지 원소를 배열하면서 꽉 찬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우주에 있는 전부라고 여긴 것이다. 보기에는 완벽했다. 그런데 가로 줄로 보든 세로 열로 보든 화학적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주기율표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멘델레예프는 달랐다. 그는 주기율표에 듬성듬성 빈 칸을 남겼다. 누가 보기에도 완벽하기는커녕 구멍이 많은 주기율표다. ‘우리는 모른다’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빈자리는 언젠가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헬륨, 아르곤, 갈륨, 우라늄, 토륨 같은 것이 금세 채워졌다. 주기율표에 빈 칸이 있으니 그걸 찾게 된 것이다. 원소 번호 97번인 프랑슘(Fr)은 지구에 기껏해야 20그램 정도밖에 없다. 이걸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주기율표에 빈 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은 스물세 살에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그리고 평생을 연금술사로 살았다. 그는 만물이 물, 불,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는 사원소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에는 무려 94가지의 원소가 있으며 주기율표에는 무려 118가지의 원소가 들어 있다.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이다. 현대인이야말로 진정한 연금술사다.

서울시립과학관 로비에는 거대한 주기율표가 있다. 사물함이다. 나이에 따라 인기 있는 칸이 다르다. 청소년에게는 철(Fe), 구리(Cu), 아연(Zn)이 인기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금(Au)과 은(Ag) 그리고 백금(Pt) 칸을 좋아한다. 왜 그럴까? 주기율표를 찾아보면 그 답이 보인다. 물론 주기율표를 외는 것보다 ‘우리는 모른다’라는 걸 인정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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