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 범위와 제재 완화 정도를 놓고 양측이 줄다리기를 하다 결렬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회담이 무산된 지난달 28일 밤 기자회견을 자청해 민간 경제에 영향을 주는 유엔 제재 일부를 해제하면 영변의 모든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이 추가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많은 부분의 비핵화 뜻을 밝히면서 그 대가로 “전체 대북 제재의 해제”를 원했으나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사실관계에 대한 주장은 엇갈리지만 결국 ‘영변 핵시설+α’라는 비핵화의 규모, 그리고 대북 제재의 해제 범위를 둘러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 결렬의 결정적 원인으로 보인다.
다음 회담 일정이 잡히지 않은데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는 분위기로 봐서는 대화 재개에 어려움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상황을 비관할 이유도 없다.
우선 북한이 회담 실패 이후 미국을 비난하는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리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나 적대적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언론도 북미 정상이 “건설적이고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을 했으며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합의문 작성 실패 등의 내용은 담지도 않았다.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국 역시 향후 대화에 열린 태도다. 비록 합의 없이 협상장을 등지고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계속 대화를 나눌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어느 시점에서는 간극이 메워질 것”이고 “궁극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북미 정상이 서로 “호의를 느낀 만큼 (실무협상)계획을 강구하면 좋겠다”며 거듭 대화 의지를 밝혔다.
여기서 북미 협상이 중대 기로에 섰던 지난해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1차 북미 정상회담 취소와 이후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북측 제의로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진행 의지를 확인했고, 이후 남북 정상은 각자 채널로 이런 다짐을 미국에 전달해 회담 취소 사태는 사흘만에 수습됐다.
북미 협상이 난관을 맞을수록 문재인 정부의 존재감이 커지고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를 떠나 귀국길에 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과 대화해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1일 3ㆍ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북미 간 쟁점이 분명해진 만큼 신속히 한미ㆍ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데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다만 이번 청와대 국가안보실 인사에서 보듯 지나치거나 섣부른 낙관은 경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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