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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 혁신, 시간이 없다

입력
2019.03.02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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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은 탈냉전의 기운이 전세계를 휘감던 시기다. 이 해에 아시아 대학 혁신의 새로운 장을 연 두 개의 대학이 탄생한다. 싱가폴과 홍콩에서 각각 문을 연, 난양공대와 홍콩과기대가 바로 그들이다. 난양공대는 이전에 설립된 이공계 연구소를 대학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런 경로는 바로 한국의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끈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같은 명문대학들의 성장 과정을 따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대학 설립후 채 30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두 대학의 세계 랭킹은 그들이 벤치마킹한 대학들을 훨씬 능가하거나 적어도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여러 지표 중 하나만 살펴보면, 난양공대의 올해 QS랭킹(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 더타임즈의 대학 랭킹)은 세계 12위, 아시아 3위다. 홍콩과기대는 세계 37위, 아시아 7위다. 설립한지 30년이 되지 않은 대학들이 아시아 최고 명문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흥 명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여유롭게 놀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 대학들은 최고 인재들을 교수로 채용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또 최고 수준의 ‘퀄리티 스탠다드’(질적 기준)를 맞춰야만 승진이나 재임용이 가능하다. 그러한 기준을 맞추지 못해 대학을 떠나더라도, 웬만한 대학의 정년 보장 교수보다 연구 실적이 나은 경우가 많아서, 글로벌 대학들은 이들을 교수로 채용하기 위해 다시 경쟁을 벌인다.

요즘 세계 명문 대학들의 경쟁 무대는 다름 아닌 온라인이다. 얼마 전 성균관대 신동렬 총장의 취임식날, 한 통의 이메일이 그에게 배달됐다. 인문사회 전공 학생들이 스탠퍼드대의 온라인 강의를 함께 들으며 공부하고 있는데, 그 강의를 바탕으로 심화학습을 시켜주는 강의를 정규 과목으로 개설해달라는 요구였다. 어찌 보면 성균관대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요즘은 학생이 왕이다. 그들은 예전 세대보다 훨씬 격심한 취업경쟁에 노출돼 있다. 취업에 필요한 지식과 스킬셋(기술적 역량)을 위해서라면 총장에게 취임 첫 날 이메일을 보내야 할 정도로 절박한 현실을 우리 청년들은 대면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가 오랜 시간 계속되면서,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입학 정원이 지원자수보다 많은 초과 공급 상황에 곧 직면하게 된다. 거기에 10년째 동결된 등록금은 그간 상승한 물가나 임금을 견뎌낼 수 없는 상황으로 대학들을 내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청년들은 한 직장에 들어가 평생을 다닐 수 없는, 그야말로 프리랜서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 직장, 저 직업을 옮겨 다녀야 하는 삶의 행로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이미 오늘의 대학생들은 대학과 교수의 권위를 이미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학의 담장 위에 서서 저 먼 바다건너 세계 최고 석학들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듣고, 자신들이 소속된 대학의 강의 품질과 비교한다.

이제 대학들은 문ㆍ이과의 벽도 넘어야 한다. 페이스북은 최근 뮌헨기술대의 인공지능윤리연구소 설립에 75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인종차별, 성차별 가치관이 녹아 있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한 다음, 그러한 편향된 가치관에 기반을 두어 자동화된 의사결정을 내놓았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런 시대에 기술과 가치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조정되고 검토돼야 하는건 당연하다. 공학만으로 세상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인간 본위의 가치가 정립돼야 기술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공학도가 인문을 알고, 인문학도가 공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의 교육혁신은 학문의 벽을 낮추고 학생의 성공을 곧 목표로 삼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혁신에는 더 이상 남은 시간이 없다. 대학이 스스로를 혁신하는데 사회와 교육수요자의 격려와 채찍이 필요하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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