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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구두’ 아지오 대표 "납품 갔다가 대통령 깜짝 환대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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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구두’ 아지오 대표 "납품 갔다가 대통령 깜짝 환대 받았죠"

입력
2019.02.28 09:30
수정
2019.02.28 11: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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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들이 모여 구두 만드는 협동조합 유석영 대표 인터뷰 

유석영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대표가 2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직접 구두를 전달하고 있다. 유석영 대표 제공
유석영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대표가 2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직접 구두를 전달하고 있다. 유석영 대표 제공

사회적 협동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에서 만드는 대표 브랜드 아지오(AGIO) 구두의 별명은 ‘문재인 구두’, ‘대통령 구두’다. 문재인 대통령이 닳고 닳을 때까지 아지오 구두만 오래 신으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문 대통령의 두 번째 아지오 구두 주문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유석영 구두 만드는 풍경 대표는 2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을 직접 만나 깜짝 환대를 받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지난 26일 청와대에 직접 구두를 납품하러 갔어요. 그냥 비서실에 전달만 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받으러 나오시더라고요. 저에게 고맙다고 계속 격려해주셨어요. ‘신으면 신을수록 좋아서 이 구두만 신었는데 망했다는 소식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재창업을 해서 고맙다. 다 잘되도록 힘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랑 사진도 찍으셨고요. 아, 이거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 건데.” 유 대표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구두를 전달받던 사진 한 장도 한국일보에 공개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아지오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구두 주문부터 결제까지 마쳤다. 김정숙 여사도 11일 청와대 연풍문에 단 2시간 동안 마련됐던 아지오 팝업스토어를 찾아와 치수를 재고 신발을 주문하기도 했다. 유 대표는 “취임 직후 못 해 드린 신발을 이제야 해드렸다”며 기뻐했다.

문 대통령은 22일 '아지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직접 구두를 주문하고 결제했다. '구두 만드는 풍경' 페이스북 캡처
문 대통령은 22일 '아지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직접 구두를 주문하고 결제했다. '구두 만드는 풍경' 페이스북 캡처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구두(오른쪽)와 김정숙 여사가 주문한 '아지오' 구두가 진열된 모습. '구두 만드는 풍경'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구두(오른쪽)와 김정숙 여사가 주문한 '아지오' 구두가 진열된 모습. '구두 만드는 풍경' 제공

유대표는 1급 시각 장애인이다. 아지오에서 구두를 만드는 직원 총 17명 중 12명이 장애를 갖고 있다. 1명은 지체 장애인, 10명은 청각 장애인이다.

이들에게 장애란? “불편해서 그렇지, 열심히 사는 데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유 대표는 자신과 직원들의 장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말 못하고, 듣지 못해도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눈썰미로 하는 일은 우리가 청각장애인에게 환경만 만들어주면 집중력이나 성과가 훨씬 좋아요. 능력을 발휘하는 장을 만들어주면 장애인들도 잘 할 수 있어요.” 유 대표는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고 했다. “장애인들도 직접 돈을 벌어 세금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널리 알리고 싶었죠.”

사회적 협동 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 유석영(58) 대표가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에게 납품할 구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구두 만드는 풍경' 제공
사회적 협동 조합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 유석영(58) 대표가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에게 납품할 구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구두 만드는 풍경' 제공

유 대표는 청소년 시절 유전성 질병으로 시각 장애가 생겼다. 언론인을 거쳐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면서 다른 장애인들, 특히 청각장애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그의 눈에 띄었다. “청각장애인들은 다른 신체 기능은 다 좋은데, 소통이 안 돼서 장기근속이 어렵더라고요.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보다 유독 생활이 어려운 걸 보고 이분들을 위한 사업을 찾다가 시장 조사 없이 무턱대고 구두를 만들어 팔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유 대표는 구두 장인은 아니다. 경영자다. 그런 그가 처음 구두가게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2010년이었다. 이후 2012년엔 ‘장애인들이 만든 구두’라고 알려지면서 국회에도 가져가 팔았다. 그때 민주통합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아지오를 구입했고, 아껴주는 고객이 됐다. “그 때 대통령께서 현금으로 구두를 사셨어요. 그때부터 4년을 신으셨죠.”

좌절도 있었다. 유 대표는 시장 조사 없이 그저 일자리를 만들려고 뛰어들었지만, 열정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그의 첫 사업은 2013년 완전히 망했다. 함께 고생한 직원들과 일터를 정리한 아픔은 쉽게 지울 수 없었다.

폐업 후 4년쯤 됐을 무렵 문 대통령의 낡은 구두가 ‘장애인이 만든 수제화’, 아지오 구두라는 게 뒤늦게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아지오 구두는 곧 문재인 구두라는 별명과 함께 명성을 얻었지만, 유 대표는 명성에만 기대 공장을 다시 돌릴 순 없었다. “장애인들과 함께 쭉 가야 하는데 또 폐업 할까 봐 무서웠어요. 그 때 유시민 작가가 조합원으로 나서주겠다고 했습니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구두 만드는 풍경의 조합원 중 하나다. 그를 포함해 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자금을 보태 2017년 12월 회사를 설립했다. 국민들도 주머니를 털어 펀드에 참여했다. 유 이사장은 가수 유희열씨를 불러 모델을 해달라고 했고, 유희열씨는 가수 이효리씨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연결됐다. 유희열, 이효리씨 부부는 광고에 기꺼이 출연했다. 이들이 신었던 신발 한 켤레가 모델료였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힘들게 일어섰지만, 어려움은 여전했다. 20만원대인 아지오 구두는 가격이나 물량 공급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로지 품질로 이겨내야 했다. 다시 일어선 아지오의 지난해 목표는 고객 1만명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목표 중 4,000명은 달성했어요.” 유 대표는 들뜬 목소리로 힘껏 자랑했다. 여기서 이익이 생기면 노동자 처우나 복지 개선 재투자 등에만 사용하도록 돼 있고, 20만원이란 가격도 명품 구두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아지오 구두는 신으면 신을수록 편하다”는 격려는 구두 만드는 풍경의 자부심이다. “국민들에게 받은 투자금 중 1억 5,000만 원은 지난해 갚았고, 올해 더 열심히 해서 어서 갚고 싶어요.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자립해서 자부심으로 일하는 터전이 되겠습니다. ’친구보다 더 좋은 구두’라는 평가를 받고, 온 국민이 아지오를 신는 그날까지 힘을 내겠습니다.” 함께 잘 살고 싶었다는 유 대표의 진심은 오늘도 뚜벅뚜벅 세상을 향해 걸어 나아가고 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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