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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혁신 DNA… “무엇을 개발할지 알 수 없는 회사”

입력
2019.02.23 11: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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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잉게 툴린 3M 이사회 의장

미국의 대표적인 혁신기업으로 꼽히는 3M. 3M 홈페이지
미국의 대표적인 혁신기업으로 꼽히는 3M. 3M 홈페이지

‘미네소타에서 탄생한 돌연변이 기계(Mutation Machine).’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그의 저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미국 기업 3M을 표현한 말이다.

짐 콜린스는 책을 쓰기 위해 휴렛 패커드의 공동창업자 빌 휼렛과 인터뷰를 하며 “정말로 존경할 만하고 보고 배울 만한 모델 기업이 있느냐”고 물었다. 빌 휼렛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3M이다. 3M은 무슨 상품을 가지고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3M조차도 그들이 무엇을 개발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3M의 매력이다. 비록 3M이 무엇을 개발할지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은 3M이 계속 성공하리라는 점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짐 콜린스는 빌 휼렛의 말에 공감하며 ‘앞으로 50~100년 동안 지속적인 성공과 적응력을 지닌 기업을 하나 꼽는다면 3M’이라고 점 찍었다.

그들의 예측은 정확했다. 책이 나온 게 1994년이니 25년이 흘렀다. 1902년 창립한 3M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

◇3M답게

3M은 소비자들에게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 같은 소비재 상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뿐 아니라 전기, 에너지, 의료제품, 산업서비스, 안전장비 등 27개 분야에서 6만 개가 넘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전 세계 70개 이상 국가에 진출해 약 200여 개국에 제품을 판매 중이며 2018년 매출은 327억 달러(약 37조원)다.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회사’라는 말이 3M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다.

3M은 유명하지만 100년 넘는 역사를 지휘한 역대 최고경영자(CEO) 14명은 무명에 가깝다. 지금의 3M을 만든 윌리엄 맥나이트(1929~1949년 회장 재임)조차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3M의 CEO가 한 번 화제가 된 적은 있다. 2001년 제너럴 일렉트릭(GE) 출신 제임스 맥너니가 CEO로 영입됐을 때다. 그는 3M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였다. 맥너니는 당시 각광받던 GE의 경영기법 ‘식스 시그마(품질과 성과에 대한 정량적 평가와 효율성을 강조하고 개발ㆍ제조 과정에서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를 도입해 영업이익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러나 3M 최고의 히트상품 포스트잇의 발명자인 아서 프라이는 오히려 “폭넓은 자유를 부여하던 제품 개발 과정에 경영진이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맥너니 뒤를 이어 부임한 조지 버클리도 영국 레저보트 제조사 CEO 출신의 외부 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연구개발(R&D)을 좀 더 중시했다는 점에서 맥너니와는 조금 달랐다.

잉게 툴린. 3M 홈페이지
잉게 툴린. 3M 홈페이지

2012년 5월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3M은 1979년 입사해 33년 간 일해온 ‘정통 3M 맨’ 잉게 툴린(66)을 CEO 겸 신임 회장으로 내부 승진시켰다. 툴린 회장의 취임 소식에 ‘가장 3M다운 선택’ ‘3M이 다시 혁신 기업으로 돌아왔다’는 안팎의 평이 나왔다.

스웨덴 말뫼 출신의 툴린 회장은 예테보리대에서 경제학ㆍ마케팅을 전공하고 IHM경영대학원(스웨덴 10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뒤 은행원, 제지회사 세일즈맨으로 잠깐 일하다 3M스웨덴의 영업마케팅 팀에 입사했다.

그는 3M스웨덴의 생명과학 부문을 맡아 임원으로 승진했고 3M유럽의 시력관리 및 정형외과 제품 부문을 총괄했다. 1995년 3M러시아 상무로 부임한 이후 벨기에, 프랑스, 홍콩, 캐나다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스웨덴어와 영어는 물론 네덜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도 능통하다. 2003년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이 된 지 9년 만에 수장으로 승진했다.

툴린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R&D 예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가 경제 위기로 신음하고 있었고 상당수 기업은 R&D 예산을 줄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가 R&D를 강조하는 방식은 다른 회사와 조금 달랐다. R&D에서 ‘R(researchㆍ연구)’와 ‘D(developmentㆍ개발)’는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게 툴린 회장의 지론이다.

회사 중앙연구소에 있는 수십 개 연구팀에 상품화 부담은 갖지 말고 하나의 기술만 계속 연구하도록 하는 식이다. 다른 기업보다 5~10년 앞서가는 원천기술력만 일단 확보해 놓으면 각 사업부의 개발팀이 그 기술을 응용해 제품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다.

◇15%, 25% 원칙

3M은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 혁신과 이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회사로 꼽힌다. 경영 문화도 남달라 직원들의 자유로운 연구 개발을 위해 다양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게 바로 ‘15% 원칙’이다.

모든 연구 직원이 근무 시간의 15%는 자신이 생각하는 창조적 활동을 위해 쓰라는 것이다. 맥너니가 CEO였을 때 잠시 폐지됐다가 버클리가 취임한 뒤 부활했고 툴린 회장이 이를 더욱 강화했다. IT 기업인 구글이 제조 기업인 3M을 본떠 ‘20% 원칙’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툴린 회장은 3M 초창기부터 이어져 온 다른 혁신 규정에도 충실했다. 대표적인 게 ‘25% 원칙’이다. 각 부서는 최근 5년 동안 시장에 내놓은 신제품과 서비스로부터 연간 총 매출의 25%를 얻어내야 한다는 규정이다.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1988년 총 매출 106억 달러 중 32%가 5년 이내 신제품에서 나오자 3M은 1993년엔 그 비율은 25%에서 30%로 높이고 기간은 5년에서 4년으로 줄였다.

스카치테이프의 초창기 모습. 3M홈페이지
스카치테이프의 초창기 모습. 3M홈페이지

3M이 세계에서 출원한 특허는 지금까지 10만 개가 넘고 연간 약 3,000개씩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300억 달러가 넘는 회사 연 매출 중 3분의 1 이상이 최근 5년 안에 출시된 제품에서 나온다. 툴린 회장이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R&D 투자는 우리에게 경쟁 우위와 수익성을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라며 일반의 예상을 깬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30년 이상 근무하며 3M의 혁신 성장사를 몸소 체험한 덕분일 것이다.

6년 간 3M의 혁신을 주도했던 툴린 회장은 2018년 7월 회장 겸 CEO 자리를 마이클 로만(59)에게 넘기고 이사회 의장으로 추대됐다. 로만 역시 툴린과 마찬가지로 서른 살에 3M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근무한 ‘정통 3M 맨’이다. 이어 3M은 최근 “툴린이 의장직에서 물러나 2019년 6월 1일부로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마이크 에슈크 3M 선임 사외이사는 “잉겐 툴린의 리더십 아래 3M은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면서 보다 민첩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났다”고 예우했다. 툴린은 “3M에서 일하며 3M 사람들과 함께 이룬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짐 콜린스가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3M을 비전 기업으로 선정할 때 그를 가장 괴롭힌 의문은 “3M에서는 과연 누가 카리스마적이고 비전 있는 리더인가”라는 것이었다. 3M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며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전형적인 리더’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3M은 비전 있는 리더십, 비전 있는 제품, 비전 있는 시장에 대한 직관 또는 감동적인 비전 선언문 이상의 무엇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M의 진짜 매력은 바로 3M 자체가 맥나이트 전 회장과 다른 모든 개인들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CEO가 되든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힘.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그 제품을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3M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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