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44>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 
인도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순애보가 전해오는 아그라 타지마할 경내에 소달구지가 지나가고 있다.

하필이면 아그라에 안개가 자욱했다. 이 도시가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역사는 크게 알 바 아니었지만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순애보가 전해오는 타지마할이 안개에 가려버릴까 걱정이 앞섰다. 타지마할은 흰색의 대리석이니 안개가 끼면 제대로 보일 턱이 없었다.

걱정은 어김없이 현실이 된다. 이슬람을 느끼게 하는 입구를 들어섰는데 눈동자가 안개에 최적화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실눈 사이로 멀리서 어렴풋이 커다란 돔과 미나레트가 뿌옇게 들어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갈 듯한 대리석 풍경은 포기해야 했다. 며칠 머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짧은 기간에 여기저기 둘러보는 여행은 ‘복불복’이었다.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배짱 편하게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객들이 잡지나 책, TV 속으로 보는 타지마할은 열이면 열 모두 쨍한 모습이다. 안개 낀 타지마할은 돈 주고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그래서 이날 운수대통 했다고 반쯤 세뇌한 후에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인도 학생들이 안개 낀 타지마할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가운데 한 여학생이 주위를 응시하고 있다.

한 무리의 인도 학생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학생들의 환한 얼굴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 나라나 청소년들은 해피 바이러스를 뿜어내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모임 단위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고 연인들도 삼각대를 놓고 안개속 환상적 분위기의 에로물을 찍고 있었다. 안개효과였다.

사진포인트를 찾던 중 무조건 반사적으로 셔터를 마구 눌러야 했던 몇 초가 있었다. 파란 터번을 쓴 할아버지가 빨강 망토를 씌운 숫소 2마리가 끄는 달구지에 올라타 눈앞을 휑하니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타지마할 안에서 소달구지가 달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라 한동안 안개 속으로 사라진 달구지를 쫓았다.

여기도 경계가 삼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입구 보안검색대를 거쳤는데도 자동화기로 무장한 군인들 틈으로 검사를 한 번 더 거친 후에야 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뭄타즈는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 자한과 17년의 결혼기간 중 15번째 아이를 낳던 1629년 세상을 떠났다. 샤 자한은 아내를 기려 1631년 타지마할을 착공한 후 22년 만인 1653년 완공했다. 왕궁처럼 보이는 타지마할은 사실 뭄타즈의 무덤이다. 이 공사에는 2만여명의 장인과 코끼리 1,000여마리가 동원됐다고 한다.

타지마할 뒤편에는 야무나강이 흐르고 있었다. 샤 자한은 이 강 건너에 검은색 대리석으로 타지마할 쌍둥이 건물을 지어 구름다리로 이으려 했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묻혀 있는 돔 안에서 이들의 순애보에 젖기도 전에 현지인 문화유산해설사가 다가왔다. 과장된 몸짓과 함께 영어로 내 이름을 물었다. 그런 후 그는 돔 천장으로 “전~~~”이라고 외쳤다. 이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10초 이상 돔을 울렸다. 나도 한 번 외쳐봤다. “전~~~.”

화려한 옷을 입은 인도 여행객들이 타지마할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돔을 나와 야무나강을 둘러보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오전이었는데도 타지마할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관람객들은 1시간 내로 나가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 낀 타지마할도 맘껏 보지 못하게 한 이유가 있기는 했다. 인도의 혈맹 방글라데시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국빈방문을 위해 타지마할을 깨끗하게 비운다니 이날 일진이 뭔가 특별하기는 특별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에게는 특별한 나라다. 파키스탄이 동서로 나뉘어져 싸울 때 동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에 억눌려 숨도 쉬지 못했다. 인도는 동파키스탄을 지원했고, 1971년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 아그라성 입구로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다. 이 성은 '붉은 성'으로 불리고 있다.

타지마할을 나와 샤 자한의 슬픈 스토리가 담겨 있는 아그라성으로 향했다.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된 이곳은 ‘붉은 성’으로도 불렸다. 높이 20m, 길이 2.5㎞의 성벽 바깥으로는 해자가 빙 둘러 있었다. 한 눈에도 군사시설이었다.

하지만 성 남쪽 유일한 입구인 아마르 싱 게이트를 통해 들어가보니 성 안은 모스크와 분수대, 정원 테라스로 꾸며진 예술품이었다. 1565년 무굴제국 3대 황제인 악바르 황제가 만든 이 성은 후대에도 계속 증축됐지만 샤 자한의 슬픈 러브스토리가 없었다면 그냥 멋진 건축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성 안에는 무삼만 버즈라는 8각형의 탑이 있었다. ‘포로의 탑’으로 불리는 곳이다. 샤 자한은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이곳으로 유폐됐다. 권력 앞에 아버지고 뭐고 없었다. 그렇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베푼 유일한 효도는 바로 포로의 탑에 가둔 것이다. 아그라성에서 타지마할이 보이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샤 자한은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멀리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렸다고 한다.

소떼가 아그라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무굴제국의 영화를 구가한 황제를 꼽으라면 3대 악바르와 6대 아우랑제브다. 두 황제는 종교정책에서 극과 극이었다. 악바르는 힌두교를 포용했고, 아우랑제브는 배척했다. 힌두와 이슬람의 사이가 결코 좋지 않지만 악바르가 힌두교도의 칭송을 받는 이유기도 하다.

아그라를 누비면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뭄바이 한 복판에 사는 무슬림 하층민 ‘차이왈라’(차 배달원)가 퀴즈대회를 통해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풀어놓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힌두교도의 습격으로 느닷없이 고아가 되어버린 주인공 형제가 멀리 아그라까지 와서 타지마할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사기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아그라의 한 수공품 가게에서 장인들이 대리석을 가공해 문양을 넣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는 이곳 아그라에 원숭이 강도들이 떼 지어 관광객들을 위협한다고 보도했다. 원숭이가 무리째 달려들면 손에 쥔 것 던져주고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인도인이 쓴 댓글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타지마할 주변에 원숭이 무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기자가 최근에 보고 들었을 뿐이다.’ 맞는 말이다.

글ㆍ사진=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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