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여왕’ 김해란(35ㆍ흥국생명)은 긍정의 아이콘이다.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긍정적인 성격인 김해란을 흥국생명 선수들은 물론 다른 팀에서도 ‘롤모델 언니’로 지목하는 선수들이 많다. 17일 경기 용인시 흥국생명 연수원에서 만난 자리에서도 김해란은 자신의 배구 인생을 특유의 긍정 에너지로 담담히 풀어냈다.
김해란은 지난달 27일 V리그 남녀 통틀어 최초로 디그 9,000개를 달성했다. 그의 탄탄한 수비력(17일 현재 디그 1위, 리시브 2위, 수비 3위)은 흥국생명의 조직력을 더욱 짜임새 있게 만들고 있다. 그의 활약 속에 흥국생명은 여자부 1위를 질주 중이며 디그 1위, 리시브 3위, 수비 1위, 세트 1위 등 비공격 전 부문 최상위권이다.
박미희 감독은 최근 “5라운드 MVP는 9,000디그에 성공한 김해란 선수가 받았으면 좋겠다”며 그를 높게 평가했다. 팀 에이스 이재영도 “내 마음 속 MVP는 오직 해란 언니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운드 MVP는 한국도로공사 문정원에게 돌아갔다. 김해란은 “팀 성적이 중요하지 (라운드 MVP는) 아예 생각해 본적도 없다”면서 “선수들 마음속 MVP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역대 1호 9,000 디그‘라는 대기록에 대해서도 “배구를 오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달성한 숫자일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리베로는 ‘잘해야 본전’인 자리다. 공격수처럼 화려하지도 않을뿐더러, 조금만 잘못해도 온갖 질책이 쏟아진다.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15시즌을 치르면서 리베로가 라운드 MVP에 오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김해란은 원래 공격수 출신이다. 배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지금의 키(168㎝)와 비슷했다. 당장 배구부에 스카우트돼 고등학교(마산제일여고) 3학년까지 줄곧 중앙 공격수를 맡았다. 김해란은 “초등학교 때 이후로 키가 안 클 줄 몰랐다”며 웃었다. 공격수는 아니더라도 세터 정도는 욕심 낼 만 한데 김해란은 손을 내저었다. 김해란의 올 시즌 세트 성공 62개를 기록, 2단 연결이 좋은 선수로도 정평이 나 있다. “개인 훈련 때 몇 번 도전해봤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 그래서 내 자리는 리베로구나 생각했다.”
지금은 국가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지만, 프로 데뷔도 못 할 뻔했던 아찔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당시 실업팀 지명을 앞두고 있던 2002년 김해란은 훈련 중 공을 밟고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뼈가 5곳이나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당시 도로공사 감독이었던 김명수 전 감독은 김해란의 재능을 높게 평가, ‘부상 루키 지명’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그때만 해도 다시는 배구를 못할 줄 알았다. 그런 제게 배구 인생을 열어주신 은인이다.”
이후 실업리그 2시즌, 프로리그 15시즌 등 17시즌을 치르는 동안 꾸준히 기량을 뽐냈다. 2014~15시즌 올스타전에서 다시 한번 큰 부상으로 배구 인생의 큰 위기를 맞았다. ‘리베로 후위공격’ 이벤트에 참가했는데, 점프가 어긋나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시즌 아웃’된 것. 김해란은 당시 부상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해석했다. 김해란은 “재활 과정을 거치면서 더 독하게 마음먹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올 시즌 목표는 정규리그ㆍ챔프전 통합 우승이다.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통합 우승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김해란은 “매 경기 매 순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코트에 선다”면서 “올 시즌이 멤버 구성이나 팀 분위기로도 적기다. 팬들의 성원에 꼭 보답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용인=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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