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이사장 유경촌 주교
김 추기경 “가진 걸 나누는 캠페인 해보자” 88년 본부 설립 후 안구기증 서약
빛 선물하고 떠난 2009년 기증희망 7만→18만 급증… “다시 그 기록 깨졌으면”
“나는 헌혈하는 게 허락이 안 되데. 나이 때문에 허락이 안 되는 것 같아. 아마 늙은 피가 소용이 없나 봐. 명동에 헌혈하는 차가 와 있었는데 가 보니까 내 모습을 보더니 나가시라고. 오히려 수혈을 받아야 한대.(웃음) 그래서 내가 약속한 것은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안구 중에서도 각막 기증하겠다고 서명을 했지.” (2003년 고 김수환 추기경 생전 인터뷰, 가톨릭평화방송)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선종과 동시에 두 사람에게 빛을 선물했다. 각막 기증을 통해서다. 이 일이 알려지자 매년 7만명 수준이었던 기증 희망자는 그해 18만 명으로 급증했다. 그의 기증이 많은 이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12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에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이사장인 유경촌(57) 주교를 만나 되새겨야 할 김 추기경의 뜻과 장기 기증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인종, 종교, 사상, 국경 등 모든 경계를 넘어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1988년 김 추기경이 직접 설립한 가톨릭 단체다. 특히 장기 기증 운동, 조혈모세포 기증 운동, 치료비 지원 등 생명운동사업과 국제개발 협력에 공을 들인다. 유 주교는 “모든 치료를 다 해보다가, 더 이상 장기이식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분들에게는 장기 기증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김 추기경님이 몸소 보여주고 떠나신 것은 이 생명 나눔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김 추기경님을 어떻게 기억하나.
“아무래도 큰 어른이다 보니, 어렸을 때 기억이 먼저 난다. 중학생 시절 서대문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을 때 청소년들만 따로 기념 촬영을 하는데 추기경님께서 ‘여기서 신부님이 되고 싶은 사람 있느냐? 수녀님이 되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질문해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추기경님 하면 실은 어려워야 하는 분인데, 따뜻하고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 같았다. 소신학교, 대신학교 시절에도 미사를 오시면 강론이 늘 감동적이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강론은.
“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 어린 말씀을 하신다고 느꼈다. 당신께서 아직도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말씀을 이해하고, 따르는데 참 부족하다고 하신 말이 기억난다. 하느님 뜻이 뭔지, 뭘 원하시는지 기도하면서 찾으려고 하는데 아직도 어렵다고 애쓴다고 하셨다. 이미 큰 어른인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감동이었다. 저렇게 아직 겸손하게 애쓰시는데 나도 그래야겠구나 싶었다. 가장 유명한 말씀이 있지 않나. ‘머리로 알던 하느님의 사랑이 가슴으로 오기까지 평생이 걸렸다’, ‘나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그런 말씀을 하실 정도니, 저희는 바보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인 거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설립 등 나눔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지만 본인이 워낙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고 일제 강점기를 겪지 않으셨나. 아버님께서 어린 나이에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께서 행상하면서 기르셨고, 풍족하고 윤택한 생활일 수가 없으니까 늘 배고프고 가난하셨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동성상업학교 소신학교 시절 일왕에 대한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그러므로 소감이 없음’이라고 적어 냈다는. 일본의 제국주의 압제하에서 고통받는 국민을 보면서, 6ㆍ25를 겪으며 가난한 시절을 보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러고 나서 독일 뮌스터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신 게 그리스도교 사회 윤리다. 그리스도교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다. 특별히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 노동자, 빈민을 돌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셨고, 막연한 감성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이론적 토대, 사목에 대한 배경이 분명하셨다.”
-천주교회에 끼친 영향이 크겠다.
“김수환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상당하다. 서울대교구장으로 만 30년을 재직하셨다. 그 시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5공화국, 문민정부 초기 등 급격한 변화가 우리 사회에 일어나던 때이기도 하다. 여러 사회 변화 속에서 단순히 추기경이라는 종교인에 머물지 않고 어려운 이들의 편에 서고, 어른으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한 분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천주교 안에서도 많은 사제에게 영향을 줬음은 당연하다. 종교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직접 각막 기증을 하셨는데
“우리 본부는 1988년 설립됐고, 추기경님께서 직접 이듬해 안구 기증 서약을 하셨다고 한다. 본부는 전 세계 가톨릭 지도자들이 한국에 모이는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천주교회에서는 성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빵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를 닮겠다는 것이다. 이 대회를 준비하며 내가 가진 걸 나누는 캠페인을 해보자고 해서 헌미(獻米), 헌금(獻金), 헌안(獻眼) 운동이 시작됐다. 밥을 지을 때마다 항아리에 쌀을 따로 담아 가난한 이웃과 나누고, 돈을 모아 전하고, 장기기증에 목말라하는 이들을 위해 각막 기증을 서약했다. 내게 소중한 것을 나누는 것, 장기기증에 목말라하는 이들과 생명을 나눈다는 것은 가톨릭 교리와 잘 맞는다. 이 과정에서 추기경님도 몸소 안구 기증 서약을 하셨다.”
-그 영향이 컸겠다.
“영향이 최근까지도 뚜렷했다. 매년 7만 명 수준이었던 장기 기증 희망자는 2009년 2월 선종 후 각막 기증을 하신 일이 알려지면서 그해에 18만명 정도로 급격히 늘었다. 이후 꾸준히 줄어 왔는데, 언젠가 다시 기록이 깨졌으면 좋겠다.”
-매년 장기 기증자를 위한 미사도 여는데.
“장기 기증자 봉헌의 날 행사를 하고, 위령미사, 유가족께 감사하는 행사를 연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정말 귀한 일을 한 것인데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돌아가신 가족 몸에 칼을 댔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본인이 생전 서약을 했어도, 가족이 동의해야 이식할 수 있는데, 아직도 ‘돌아가신 분을 또 한 번 죽인 것 아니냐’, ‘돈은 얼마를 받았냐’는 오해에 가족이 시달린다. 가족이 갖는 심적 부담이 크다. 이런 분들을 모셔 정말 숭고한 결정을 하셨다고 말씀드리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앞으로는 추모의 공간도 마련해 보면 어떨까 하는 계획이 있다.”
-실제로는 얼마나 이뤄지나.
“2018년 말 기준으로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분이 3만500명 정도다. 그런데 실제 지난해 뇌사로 장기를 기증하고 돌아가신 분이 450명 정도다. 사실 많은 분이 장기 이식을 4년 6개월씩 기다린다. 이걸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분이 한 해에 1,600명씩 된다.”
-여전히 많이 부족한 셈이다.
“종교가 있건 없건, 나만 생각하는 삶을 훌륭하다고 하는 이는 없지 않나. 살아 있을 때도 함께 나누고, 마지막 생의 마무리 과정에서도,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 도움이 된다면 삶이 더 뜻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실제 서약을 해주신 분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아닌 경우도 무척 많다. 기증만이 삶의 마지막 희망인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본부의 목표랄까 다른 계획은.
“장기기증이나 헌혈 등 생명나눔 외에도 자살 예방 캠페인, 봉사를 통한 국제협력 활동 등을 열심히 하고 있다. 생애 첫 기부 운동도 시작했는데 지금은 많이 확산됐다. 기증자가 크게 늘고, 기부도 급증하고, 협력 성과가 높아지면 좋겠지만 그런 욕심은 한도 끝도 없고 인간적 유혹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성과가 늘면 좋겠지만 이 운동에 참여하는 단 몇 명이라도 나눔을 통해 더불어 살며, 생명을 지키며 살자는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면 그분들의 삶이 성화(聖化)되리라 생각한다.”
-10주기를 맞아 다시 되새겼으면 하는 김 추기경의 정신이 있다면.
“늘 약자를 위한 교회를 강조하시고, 선종하시면서도 빛을 보지 못하던 분들에게 빛을 선물하셨던 마음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자신을 나누는 작은 실천에 동참했으면 한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나누며 가난한 이, 병든 이, 고통 속에 갇힌 이를 사랑하는 일은 작은 실천으로도 가능하다.”
▲가톨릭생명나눔센터 (장기기증 및 조혈모세포기증 희망등록 신청 및 상담) : 1599-3042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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