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4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카주라호
카주라호 서부사원군 미투나 부조 중에는 사람의 성행위를 보고 웃는 코끼리가 인상적이다.

배낭을 메고 사원 입구를 기웃거리자니 문화재 해설사쯤 됨 직한 중년의 인도 남성이 손짓으로 오라고 한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메인 홀로 들어가니 안쪽 중앙에 원통 모양의 커다란 대리석이 하나 있었다. 그 남성은 다짜고자 향 냄새가 진동하는 돌에 머리를 조아리라고 하더니 주위를 돌라고 했다. 탑돌이 비슷했다 그 양반이 뭐 대단한 걸 소개한 것도 아닌 것 같고 혼자 둘러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손가락을 비비는 걸 보니 1달러는 건네야 할 것 같았다.

사원을 나와 고려대에서 유학했다는 가이드 알람에게 물었다. 알람이 배를 잡고 웃는다. 인도 사람에게는 전혀 웃을 일이 아니지만 외국인은 달랐다. 머리를 조아린 그 돌은 힌두교가 숭상하는 시바신의 링가, 그러니까 성기였다. 힌두 신의 성기에 머리를 조아린 대가로 1달러를 뜯긴 것이다. 카주라호의 메탕게스바라 사원이었다.

카주라호 메탕게스바라 사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힌두교 시바신의 성기인 '링가'가 자리잡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탑돌이 하듯 링가 주위를 돌며 다산을 기원한다.

카주라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인도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다 싶었다. 유교와 불교, 기독교 문화권에서 넘어와 모든 것이 새로운 까닭이기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은 없었다.

10, 11세기 찬델라 왕조 때 주도였던 카주라호에는 20여개의 사원이 흩어져 있었다. 자이나교의 파라슈바나트 사원에는 눈 화장을 하는 여인, 몽골리안 얼굴의 여인상이 유명하고, 아디나트 사원은 힌두사원으로 착각하기 십상이었지만 역시 자이나교 사원이었다. 동부사원군은 여느 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부사원군에 접어들면 마음의 준비부터 해야 한다. 칸다리아 마하데브 사원과 락시마나 사원 벽면을 뒤덮고 있는 미투나 부조 때문이다. 미투나는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 또는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말한다. 이 사원군을 둘러보다 보면 이곳이 어떻게 이슬람의 칼을 피할 수 있었는 지 궁금할 뿐이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박물관도 처음에는 동로마제국의 성전이었다 오스만투르크의 이슬람 사원으로 변신한 후 20세기 들어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면 과거 종교는 부정되는 것이 관례다. 하늘 아래 두 신을 섬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서부사원군의 미투나 부조는 남녀상열지사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메운 부조를 보면 나체는 기본이고, 남녀간 정상체위도 찾아보기 힘들다. 남성은 실제보다 몇 배는 과장됐고 온갖 체위가 벽면에 도배됐다.

에로틱한 부조가 즐비한 인도 카주라호 서부사원군 전경.

게다가 이 에로틱 사원의 부조는 코믹하기까지 했다. 허리를 180도로 꺽은 여성과 꼿꼿하게 서 있는 남성의 미투나 부조가 하나 눈에 띄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코끼리가 그걸 보고 싱긋 웃고 있는 것이었다. 웃는 코끼리,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인도 역사에서 코끼리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BC 3세기 알렉산더가 동방원정때 마주친 것도 인도 코끼리부대였다. 영국군의 총과 대포를 이기지는 못했지만 인도 역사는 코끼리와 함께 만들어졌다.

인도에서는 투표 안내문에도 코끼리 그림이 등장한다. 대중사회당 상징이 코끼리고, 소냐 간디가 이끄는 인도국민회의는 손바닥,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몸담고 있는 인도인민당은 연꽃, 사마즈와디당(SP)은 자전거를 등장시켰다. 문맹자를 위한 배려다.

코끼리로 상징되는 대중사회당 정치인 마야와티는 여러가지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여걸이다. 네루-간디 가문의 텃밭인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39세 나이에 인도 최연소 주총리가 됐다. 더구나 그는 가죽 가공산업에 종사하는 ‘차마르’, 불가촉천민이다. 인도에서 여성, 불가촉천민, 대중사회당 정치인이 이처럼 성공한 경우도 드물다.

2010년 3월 대중사회당 창당기념일 때 얘기다. 이날 마야와티는 대형 화환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꽃 대신 지폐가 꽂혀 있었다. 그 돈을 환산해보니 5억원이나 됐다.

카주라호를 찾는 한국인이 많기는 많은 것 같았다. 바라나시에서 아그라를 가는 중간 관광포인트로 손색이 없기 때문인지 사원군 입구에 전라도밥집, 시골밥상 등 한국식당이 여럿 보였다. 김치볶음밥과 신라면으로 입맛을 북돋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도에 와서 한국식 카레를 기대했다가 몇날 며칠 쫄쫄 굶은 사람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인도 갔다 몸무게를 잔뜩 줄여서 귀국한 여행자들이 영혼의 순례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한쪽 귀로 듣고 다른쪽 귀로 흘리는 것이 좋다.

소들이 오르차성을 제 집 드나들듯 종횡무진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무굴제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오르차성을 둘러보고 있다. 새로 단장한 흔적이 없는 성이 오히려 고색창연하다.

에로틱한 카주라호를 뒤로 하고 고즈늑한 오르차로 달렸다. 1531년 라지푸트왕조의 수도로 건설된 곳이지만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의 침략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 라즈마할과 제항기르마할, 람라자사원, 락시미나라얀사원 등은 카주라호 못지 않게 고색창연했다. 더구나 인적이 드물다보니 옛 유적을 돌아보는 느낌이 그저 그만이었다.

오르차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큰 제항기르마할은 무굴제국 4대 황제 제항기르의 이름을 땄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던 왕자는 무굴제국 3대 악바르 황제의 눈밖에 났다. 황제 계승권을 박탈당한 왕자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해 이곳 오르차로 숨어든다. 당시 오르차를 다스리던 분델라 왕조의 비르 싱 데오 왕이 그를 숨겨줬고, 왕자는 결국 무굴제국 4대 제항기르 황제가 된 사연이 겹치면서 유적 이름이 제항기르마할이 된 것이다. 그 후 타지마할의 주인공 샤 자한과 아우랑제브 황제도 이곳에 잠시 기거했다.

인도 현지인들이 카주라호 인근 잔시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저녁 무렵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로 가기 위해 인근 잔시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정시에 기차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소와 원숭이가 어슬렁거리는 촌동네 기차역 구경도 재미가 쏠쏠했다.

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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