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2019년 1월24일. 이날은 정부 수립 71년 동안 한 번도 침범당한 적 없던 ‘마지막 성역’이 무너진 날로 기록됐다. 1995년 이후 네 차례나 전직 대통령의 구속을 이끌어 냈던 검찰마저 여태껏 손대지 못했던 자리가 바로 전직 대법원장이었다. 거의 가능성 없어 보이던 그의 극적인 구속 과정을 지켜 본 법조계 관계자는 “이제, 제 아무리 대법원장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일선 법관의 재판에 관여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이었다. 블랙리스트가 처음 불거졌던 2017년 2월까지만 하더라도, 그 의혹이 사법부 수장의 구치소행으로 이어질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때는 검찰이 수사에 나설지조차 불투명했다. 법원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을’일 수밖에 없는 검찰이 예봉을 들이댈 지가 미지수였고, 섣불리 사법부를 수사하게 되면 사법시스템을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강했다.

하지만 약 2년에 걸쳐 양 전 대법원장을 둘러싼 의혹은 △재판개입 △일선법원 재판거래 △예산유용 의혹 등으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법원 안에서조차 “부작용이 있더라도 잘못은 고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 분노는 서서히 양 전 대법원장을 옭아맸다.

블랙리스트 파문이 시작된 지 만 2년, 사법농단 수사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에서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 장면들을 되짚어 본다.

 ◇장면1: 이탄희, 엘리트의 길 거부하고 사표를 던지다 
19일 경기 고양시 장항동 사법연수원에서 각급 법원의 대표 판사들이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전국 법원에서 자율적으로 선출된 판사 100명은 법원행정처 고위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재발 방지책 등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의 시작점엔 한 장의 사직서가 있었다. 2017년 2월9일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난 이탄희(41ㆍ사법연수원 34기) 판사가 인사 1주일 만인 2월 16일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국 법관 3,000여명 중 단 1%만이 보직을 차지하는 ‘출세의 지름길’ 법원행정처를 거부하며 사표를 던진 배경을 두고 법원 안팎에선 소문이 무성했다. 소문의 실체는 법원행정처에서 특정 성향의 판사들을 뒷조사한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를 관리해왔고, 이 사실을 안 이 판사가 업무를 거부하며 사직서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보도가 쏟아졌고, 법원 내 문제제기가 이어지며 ‘사법파동’ 조짐을 보였다.

전국의 법관들은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논란(5차 사법파동) 이후 8년 만에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대법원도 자체조사에 나섰다. 소문은 점점 사실의 모습을 갖춰 갔다. 조사를 거듭할수록 의혹은 부풀어 올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판결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가 조율한 내용이 담긴 행정처 문건이 발견됐고, 주요 판결들을 ‘협조 사례’로 꼽으며 상고법원 도입을 청와대에 부탁한 문건들도 쏟아졌다.

 
 ◇장면2: 양승태 “검찰이 수사 한답니까?”… 여론이 돌아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경기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앞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심현철기자

법원 안팎의 의혹 제기에도 검찰이 사법부 수장을 수사할지는 확실치 않았다. 수사의 여부를 논하기 이전에 그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개혁 성향 판사들 조차 “검찰 수사가 아닌 대법원 자체 조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정도였다. 검찰은 사법부 협조 없인 사실상 불가능한 수사라고 판단, “사법부 수사의뢰가 있기 전까진 수사에 나서지 않겠다”며 스스로 선을 그었다. 새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은 결정을 보류한 채 장고를 거듭했다.

이 교착상태를 무너뜨린 사람은 다름아닌 양 전 대법원장 자신이었다. 지난해 6월 1일 자신의 집 앞 놀이터에 기자들을 불러모은 양 전 대법원장은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그의 해명은 너무 설득력이 없었다. 각종 의혹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잘 몰라서 하는 말’ 정도로 치부하며 웃었다. 그는 “(문제의 문건은) 일회성으로 왔다 갔다 했겠지, 그런 거는 한번 보고 버려버리는 것”이라고 얼버무리거나 “검찰에서 (나를) 수사 한답니까”라며 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른바 ‘놀이터 회견’은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전직 대법원장의 인식 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냈고, 여론은 급격히 비판적으로 돌라섰다. 법원 내에서 수사 불가론을 주장하던 이들도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양 전 대법원장과 비슷한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던 고위 법관들 사이에서도 “퇴임한지 몇 달 만에 완전히 감을 잃으셨다”거나 “얻은 것 없이 잃기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회견 2주만인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고, 이 발표 사흘 만인 6월 1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수사에 착수했다.

 ◇장면3: 양승태의 법원 앞 회견, 또 한번의 자충수가 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배우한 기자

초반 수사는 순조롭지 못했다. 법원행정처의 자료 제공 범위에서부터 마찰을 빚었고,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번번히 기각했다. 길어진 수사에 피로감도 높아졌다. 박병대ㆍ고영한 전 행정처장(대법관)의 구속영장 기각을, 사실상의 수사 실패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규진 업무수첩 △블랙리스트 문건 △김앤장 독대 문건 등 물증을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에 직진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양 전 대법원장 조사는 시작 전부터 요란했다. 올해 1월 11일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된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대법원 청사에서 입장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하지만 그의 이 선택은 또 한번의 자충수렸다. 대법원은 청사 내 회견을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결국 그는 청사 담장 밖에서 회견을 열어야 했다. 회견 시점에 맞춰 나온 법원공무원 노조원들은 ‘사법적폐 청산’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양승태 구속”을 외쳤다.

예상 밖의 홀대에 양 전 대법원장은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준비한 입장을 한번에 읊어 내려가지 못했고, 중간중간 입술이 파르르 떨기도 했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머지않아 재판을 받게 될 법원에서 회견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이 사태를 감당해야 할 법관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라고 개탄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저 고집을 보니, 어떻게 사법농단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면4: 양승태의 후배 탓, 부메랑으로 돌아오다 
양승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 마이크를 손으로 치우고 있다. 서재훈 기자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부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검찰에 출석했다. 하지만 피의자 신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조서 열람에 썼다. 열람 시간만 총 36시간에 달했다. 문답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는 적었고, 대부분 조서를 꼼꼼히 정독하며 공을 들였다고 했다. 최고 법률전문가인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측 논리를 무너뜨릴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검찰이 주도적으로 공격하고 양 전 대법원장은 방어에 급급한 일방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의 핵심 물증에 맞서 후배들과 다른 관계자들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검찰이 제시한 ‘이규진 업무수첩’에 대한 물음에는 조작 가능성을 거론했다. 수첩에는 지시내용과 함께 대법원장을 의미하는 '大'자 표시가 있었는데,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누군가가 뒤늦게 적어 넣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모함으로 몰고 갔다.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에 대해서는 “모두 거짓 진술”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법원은 1년 4개월 전까지 사법부를 이끌던 양 전 대법원장에게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한 평판사의 용기, 조직이 받는 상처를 무릅쓰고 그에게 힘을 보탠 수많은 판사들, 사법부 역사상 최고의 엘리트로 꼽혔던 사법부 수장의 오판, 국정농단에 이은 사법농단을 두고 보지 않은 서릿발 같은 여론이 만든 반전이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상 초유의 일을 맞이한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았지만, 앞으로 헌법상 사법부 독립과, 재판의 독립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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