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법원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묵묵부답으로 통과했다. 통상 피의자가 포토라인 앞에 잠시 서서 소회를 밝히는 관행을 양 전 대법원장이 거부한 것은 지난 11일 검찰 청사 앞 포토라인에 이어 두 번째다.
때마침 법조계 일각에서 검찰 포토라인이 피의자 망신주기 용이자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므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포토라인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논쟁 과정에서 포토라인에 대한 오해가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포토라인이 인민재판이라거나 이번 기회에 포토라인을 피고석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포토라인 패싱’을 계기로 포토라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 본다.
오해 #1 포토라인은 검찰과 언론이 결탁해 만든 악습이다
포토라인은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 등 불상사를 막기 위해 취재진 스스로 동선을 제한하는 자율적 통제선이다. 1993년 서울지검(현 서울 중앙지검)에 소환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취재진의 몸싸움에 휘말려 부상을 입은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도입됐다. 당시 한국사진기자회(현 한국사진기자협회) 회장으로서 포토라인 운영을 선포한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은 “한국언론연구원(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 통합), 한국TV카메라기자회(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회가 함께 포토라인 설치 규정을 마련하고 선포하는 과정에서 검찰과의 논의는 전혀 없었다”라고 밝혔다. 고 관장은 또, “포토라인은 취재원 보호와 취재 질서 유지를 위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최소한의 안전 장치이자 신사협정”이라고 덧붙였다.
오해 #2 포토라인은 공권력이 설치한다
포토라인은 취재진 스스로 설치한다. 한국사진기자협회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가 2006년 기존의 포토라인 운영안을 보완해 선포한 ‘취재현장에서의 포토라인 시행 준칙’에 따르면 사전 조정이 가능한 경우 취재진은 취재가 이루어지는 기관의 대표자와 동선과 위치 등 구체사항을 조율한다.
과거 공권력이 포토라인을 설치하려 한 적도 있다. 2005년 집회 도중 경찰과 취재진 간의 다툼이 벌어진 후 경찰은 ‘시범적으로 포토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니 사진기자들은 경찰 포토라인에 따라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포토라인을 설치해 취재진을 통제하겠다는 황당한 발상에 사진기자협회가 이의를 제기하자 경찰은 이를 철회했다.
오해 #3 포토라인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한다
피의자를 강제로 포토라인 앞에 세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2013년 개정된 법무부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은 고위공직자 등 공적 인물인 피의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촬영을 허용하면서 ‘피의자가 동의하는 경우’라고 못 박고 있다.
포토라인의 존재와 취재 활동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가 초상권 등 인격권을 침해 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결국 개인의 기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중 어느 것이 더 중한 지는 사안에 따라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조영곤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이자 국가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직결되는 만큼 포토라인 앞에 선 피의자 개인의 기본권보다 우선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해 #4 양승태는 검찰과 법원 출두 당시 포토라인을 ‘패싱’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검찰, 23일 법원 포토라인을 아무런 입장 표명 없이 통과하면서 이른바 ‘포토라인 패싱’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취재진을 따돌리고 다른 경로로 이동하지 않았으므로 ‘패싱’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포토라인이 정한 동선대로 움직였고 이를 촬영하지 못한 기자는 없다. 포토라인 시행 준칙은 ‘포토라인 내에서 대표 인터뷰는 각 매체의 대표 기자 1인씩 총 3명이 정해진 자리에서 인터뷰를 시도하도록 한다’라고 돼 있다. 기자는 인터뷰를 시도할 뿐 강제할 수 없다. 대답을 할지 안 할지는 피의자 본인이 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농단이라는 사안의 중대성과 사법부의 수장을 지낸 인물의 사회적 책임을 감안할 때 포토라인 앞에서 당당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11일 검찰 포토라인을 거부한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앞에서 소회를 밝히는 동안 대법원의 붉은색 안내선이 포토라인을 대신했다.
오해 #5 포토라인은 노란색 작은 삼각형 모양이다
포토라인은 보통 취재원이 통과하는 동선을 기준으로 양쪽에 일정 거리를 두고 설치된다. 노란색 공식 포토라인이 가장 자주 쓰이나 상황에 따라 청테이프나 해당 기관에서 쓰는 안내선, 경찰의 폴리스라인 등이 포토라인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취재진의 자율적인 약속 이행을 전제로 무형의 선을 포토라인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익히 알고 있는 노란색 삼각형은 취재원이 잠시 설 위치를 표시한 것으로 이 또한 포토라인의 일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과 특검, 법원 등에 포토라인이 설치되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노란색 삼각형으로 정착되었지만 과거에는 검은색 삼각형이나 청색 사각형, 일자형, X자형 등 다양한 형태로 취재원의 위치를 표시했다.
오해 #6 포토라인은 문제가 없다
누구든 한꺼번에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질문 공세 앞에서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이를 악용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조사를 앞두고 미리 ‘기’를 누를 필요가 있는 피의자의 경우 일부러 소환 일정을 공개해 포토라인 앞에 세운다는 것이다.
반면 공권력의 필요에 따라 포토라인을 따돌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1999년 ‘옷 로비’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씨를 조사한 후 대역을 먼저 내보내는 수법으로 기자들을 따돌렸고, 국방부는 2014년 총기난사 후 자살을 시도한 임모 병장을 병원으로 후송하면서 대역을 태워 보내 취재진을 속이기도 했다.
포토라인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거물급 피의자들이 포토라인 앞에서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라고 되풀이하는 장면이 알 권리를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며 “사회가 변한 만큼 포토라인의 새로운 방향성을 고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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