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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조련 ‘프리셉터’ 있는 한, 간호사 ‘태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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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조련 ‘프리셉터’ 있는 한, 간호사 ‘태움’ 끝나지 않는다

입력
2019.02.08 04:40
수정
2019.02.08 10:4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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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담당 선배 간호사 2개월간 극한 괴롭힘 

 “차트 약 집어던지며 욕설 다반사, 인격모독”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2월15일 서울아산병원의 박선욱 간호사가 선배 간호사의 괴롭힘을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교육할 때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이른바 태움(후배 간호사의 영혼이 불에 타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힌다는 뜻)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박 간호사는 사망 전 자신의 핸드폰 메모장에 “업무에 대한 압박감, 프리셉터 선생님의 눈초리,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하루3,4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로 인해 점점 회복이 되지 않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태움 피해 간호사들은 고통 속에 목숨까지 끊지만 태움의 가해 간호사들은 실체가 없다고 발뺌을 하는 등 피해자의 입증책임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5일 서울의료원의 20대 간호사 서지윤씨가“병원 사람들은(조문) 안 왔으면 좋겠어”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선배 동료들에 대한 원망이 담긴 내용으로 그 역시 태움에 시달려왔음을 암시한다는게 의료현장의 얘기다.

 

 ◇신입간호사 생살여탈권 쥐고 있는‘프리셉터’ 

지난해 고(故)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이후 태움을 근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교육을 담당하는 선배간호사를 지칭하는 이른바 프리셉터(preceptor) 제도가 유지되는 한 태움을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다는게 현장의 목소리다. 프리셉터는 경력 4~6년차 간호사로 신입간호사들은 이들을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교육기간 2개월 동안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입 간호사로 근무했던 유모(34)씨는 “2개월 동안 프리셉터들에게 근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워 ‘독립’을 해야 하기에 이들에게 찍히면 사실상 간호사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다”며 “한 달 정도 가르쳐보고 아닌 것 같으면 스스로 짐을 싸게 만드는 것도 프리셉터의 몫”이라고 전했다.

프리셉터의 괴롭힘은 찍힌 간호사가 그만둘 때까지 집요하게 이뤄진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2년간 근무한 후 현재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정모(33)씨는 “다른 신입들에 비해 손이 느리고 업무능력이 떨어지면 태움이 시작된다”면서 “다른 간호사들 보는 앞에서 의료차트나 약품을 집어 던지면서 욕을 하는 것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정씨는 “환자가 호출해 병실에 다녀오면 ‘환자에게 웃음을 팔고 다닌다’식의 인격모독도 서슴지 않는다”고 전했다. 간호사 유씨는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차트 정리, 물품정리, 약품 재고, 환자상태 등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태움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셉터들이 태움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대한간호협회가 7,225명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실시한‘간호사 인권침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0.2%가 프리셉터에게 최근 12개월간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이어 동료 간호사 27.1%, 간호부서장 13.3%, 의사 8.3% 순으로 가해자를 지목했다.

교육이 끝나고 ‘독립’을 해도 태움은 지속된다. 일반인도 아닌 환자를 돌봐야하는 간호업무를 2개월 만에 숙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교육기간이 끝나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신입간호사들도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인격모독까지 당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부당한 태움이 지속돼도 ‘환자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는 말로 면죄부를 받는 분위기도 태움의 근절을 가로 막는다. 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 간호사 최원영씨는 “환자생명과 무관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환자 생명이 달린 일’이라며 기물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 선배 간호사들이 적지않다”며 “오히려 이런 간호사들이 진정 환자를 위하는 간호사로 포장되고 미화되는 게 현실”이라고 씁쓸해 했다.

 ◇사태 발생해도 축소ㆍ은폐 일쑤 

 

태움은 음성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폭로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가 용기를 내 간호부서에 태움을 고발해도 사건이 은폐ㆍ축소되기 십상이다. 1년차 간호사가 같은 부서의 8년차 간호사에게 7개월간 욕설과 폭언을 당한 끝에 사직서를 냈지만, 병원이 가해간호사에게 정직 1개월 처분만 내린 지난해 연세의료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내 병원에서는 처음으로 태움 가해를 이유로 선배간호사가 징계를 받았지만 노동조합은 병원 측이 사건의 은폐ㆍ축소를 시도한다고 주장한다. 권미경 연세의료원 노조 위원장은 “해당 부서 간호관리자는 피해 간호사가 사직서에 사직의 사유를 선배 간호사의 태움 때문이라고 적시한 부분을 제외하자고 하는 등 사건을 은폐ㆍ축소하려 했다”며 “태움이 발생하면 사건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막고, 피해자를 회유시켜 부서 이동 등 간호부서 내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연세의료원 노조는 수간호사급인 간호관리자의 징계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등 병원 측과 맞서고 있다.

지난해 태움 문제가 공론화된 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직장내 괴롭힘 금지를골자로 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올해 7월 16일부터 시행되지만 태움 은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법은‘직장 내 괴롭힘’을 업무상 범위를 넘어 포괄적ㆍ신체적ㆍ정신적 괴롭힘까지 포괄하고 있고,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을 목격하면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위계서열이 뚜렷한 간호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하면, 피해사실을 진술할 수 있는 후배 간호사가 선배 간호사를 신고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간호사 유씨는 “연차가 높아 힘이 센 선배 간호사에게 찍혀 태움을 당하는 간호사를 옹호해줄 간호사는 없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간호사 출신인 조윤미 C&I 소비자연구소 대표는 “태움 방지법으로 불리는개정 근로기준법이 7월부터 시행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해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며 “병원 내 간호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교육‧인적 시스템 개선이 이뤄져야 태움이 근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태움 근절을 위해서는 현재 프리셉터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는 간호사교육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간호사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 전문 수간호사 등 교육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태움 문화 근절을 위한 근본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 간호인력의 수급관리, 근무환경 개선을 전담할 ‘간호정책 TF’를 신설했다. 우선 77억원의 예산으로 교육전담간호사 259명의 배치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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