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배 인상” 요구로 양국 협상 해 넘기며 늘어져
WP “철군 땐 비핵화 테이블서 가장 중요한 카드 버리는 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둘러싼 한미 간 협상이 해를 넘겨 늘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북한에 반사이익을 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 조야에서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 불만을 품고 주한미군 감축을 거론하며 한국을 향해 윽박지르는 과정에서 북한을 압박할 비핵화 카드를 내팽개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재자를 자처한 우리 정부 또한 미국이 요구하는 충분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자칫 비핵화 프로세스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 난감한 처지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분담금 협상 결과가 성에 차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며 “이럴 경우 비핵화 논의 테이블에서 미국이 북한을 겨냥해 내놓을 가장 중요한 카드를 버리는 셈이어서 김정은에게는 선물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한미 양국은 ‘합리적’ 수준의 분담금 규모를 놓고 치열하게 맞붙은 상태다. 2만8,500명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절반 가량인 9,602억원(지난해 기준)을 우리 정부가 부담하는데, 지난해 10차례 협상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 2배 인상을 요구하면서 끝내 틀어졌다.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WP에 “분담금 1조원은 심리적인 마지노선”이라며 “1조원을 넘길 경우 국회 비준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원하는 대폭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트럼프 정부는 방위비 분담의 패러다임을 바꾸길 원하고 있다”며 “한국에 이어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상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선례를 제대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연간 1조원은 가뿐히 넘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에 따끔한 본때를 보이기 위해 현재 5년 단위로 체결하는 분담금 협상을 1년 단위로 바꾸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매년 한국을 상대로 비용 인상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미 간 분담금 협상이 좀체 접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주한미군 감축으로 불똥이 튈 지가 비핵화 국면의 이슈로 부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수권법에 따라 의회 동의 없이 재량으로 주한미군을 2만2,000명까지 줄일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원하는 바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이사장은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가장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비핵화 협상과 연관시키지 않고 홧김에 병력을 빼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에 따른 국내 보수진영의 거센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우리 정부도 비슷한 내용의 고민을 하고 있으나 대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담금 협상이 속히 마무리돼 불필요한 마찰의 소지를 없애야만 우리 정부가 기대하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무턱대고 미국 요구를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대로 주한미군이 줄거나, 방위비분담금이 크게 인상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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