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여성 지점장 15명이 탄생한 것은 1961년 은행 설립 이후 처음입니다.”
기업은행이 15일 실시한 상반기 정기인사로 금융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역대 최대 여성 지점장 승진이 이뤄졌던 지난해(13명)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대리→과장, 과장→팀장(부지점장급), 팀장→부장(지점장급) 등 이른바 ‘책임자급’으로 승진한 335명 중 절반 이상(175명)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역대 최대 수준의 여성 승진 인사였다.
보수적인 남성 위주 문화와 위계질서가 여전한 은행권은 여성에게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꼽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책임자급 승진에 여성이 절반이 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16일 승진자들에 대한 임명식을 가진 기업은행은 “성과와 실력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심사했다”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업은행에는 유리 천장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국내 은행 최초로 여성 은행장을 배출한 은행이기도 하다. 2013년 취임한 권선주 전 행장은 만 3년 임기를 채우고 퇴임했다. 당시 다른 은행에서도 잇따라 여성 임원이 탄생하며 ‘권선주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기업은행에 유독 여풍이 강한 이유로, 은행의 양대 사업인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을 성별과 관계 없이 골고루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꼽힌다. 시중은행들은 보통 WM과 상품판매는 여성이, 기업금융은 남성이 담당하게 한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ㆍ육성에 특화된 터라, 다른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여직원이 기업금융을 담당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국내 은행 최초로 중소기업대출 150조원을 돌파했고, 그 해 11월에는 거래 기업고객이 150만곳을 넘어섰을 정도로 기업 금융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WM과 기업금융 역량이 탁월한 여성 인재 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기본적으로 기업금융을 알아야 한다”며 “WM과 기업금융 역량을 두루 보유한 여성 인재 양성이 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김도진 행장이 평소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를 강조해왔다”며 “이 같은 원칙에 따라 검증된 실력 있는 여성들이 차세대 리더로 많이 발탁된 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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