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가에서 자녀의 휠팩을 끌고 가는 학부모.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
◇당신에게 대치동이란
#조민지씨(26ㆍ가명, 2006~2012년 대치동 거주, 입학사정관제도로 명문대 입학)

-대치동은 자신에게 뭐라고 생각하나요?

“징그러워요. 대치동 생각하면 징글징글해요. 얼마 전에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의혹)사건 볼 때도 걔네(자녀들)가 불쌍했어요. 걔네는 얼마나 매장을 당할까. 진실이 뭐든 (부모가) 애한테 거짓말을 시키고 있잖아요. 그게 끔찍하더라구요.”

-집 분위기는 어땠나요?

“정말 부담스러웠지만 좋기도 했어요. 왜냐면 뭐든 필요한 건 (부모님께) 말만 하면 되니까 편한 건 사실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다른 애들보다 좀 (느끼는) 압박이 심했어요. 못하면 안되니까, 시험이 끝나도 놀지 않았어요. 엄마는 정말 헌신적이었어요. 하루종일 제 학원 설명회를 다니고. 엄마들끼리 모여도 노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 프로페셔널한 (입시) 정보가 모이는 자리였으니까. 대치동에는 시험 기간에는 모든 집들이 배달음식 먹는다는 말도 있었어요. 애가 집중할 수 있게 집에서 요리도 안 한다고.”

-친구들과 경쟁은?

“많았죠. 중학교 때는 공부 잘 하는 애들 필기가 있으니까 교과서도 훔쳐가고 그랬어요. 제 것도 없어진 적이 있는데, 사실 어디다 놓고 왔을 수도 있는데 ‘누구야!’하고 바로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나요.”

-그 때로 돌아가면 뭘 바꾸고 싶어요?

“그냥 힘들다고 할 거 같아요. 못하겠다, 힘들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그 때는 힘들다는 생각조차 안 하려고 했어요. 그냥 졸리다, 피곤하다 정도만. 제 감정도 입시에 방해가 되니까. 지금도 제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건 일단 부정해요. 욕망을 자르는 게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저작권 한국일보]

-힘들다고 말 못한 걸 후회하나요?

“제가 후회한다고 될 일인가요. 그 때 부모님과 맺어진 관계 패턴이 굳어진 게 가장 큰 폐해인 거 같아요. 성인이 돼서도 제 모든 일에 말을 얹고 간섭하고. ‘선을 봐라, 뭘 샀냐. 쓸 데 없는 거 왜 샀냐’ 지금도 제 행동 하나하나에 가치를 부여하세요.”

-행복했던 기억은?

“이렇게 말하고 보니 너무 무겁기만 한 느낌인데 하하하. 왜 기억이 안 나지. 밝고 즐거운 것도 있는데, 아 애들이랑 노는 게 그래도 좋았어요.”

#이범 교육평론가(메가스터디 창립 멤버. 2003년 사교육 업계서 ‘은퇴’)

-사회를 바꾸려 학생운동을 했으면서 사교육으로 돈을 벌었다는 비판이 많았다. 스스로도 ‘한국 경제의 검은 구멍에서 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고도 했다. 여전히 ‘입시지옥’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자책을 많이 하나?

“(은퇴 후)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학생운동권 출신의 강사가 돈을 번 것을 두고 도덕적인 비난을 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빠져 나갔다면 과연 그 자리는 ‘진공상태’로 남았을까요. 또 다른 사람이 채웠을 거에요. 인기 아이돌 10개 그룹을 철수 시킨다고 해서 아이돌이 사라지지 않듯이.”

-대치동 사교육 주 수요자인 강남 중산층은 어떤 계층이라고 생각하나

“흔히 대치동 사람들의 소득이 최상위권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실제는 달라요. 원래부터 대대로 부자였던 사람은 대치동에 별로 안 살아요. 자식에게 부와 지위를 상속해 주기에는 모자란 사람들, 집안의 온갖 지원을 받아 공부를 통해 성공한 사람이 더 많죠. 공부를 통한 성공이 자녀에게도 반복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강남의 중산층이 입시지옥을 만든다는 비난도 많다

“대치동 현상이 점점 커지는 중심에는 사실 많은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욕망을 도덕적으로 비난을 해서 해결이 되느냐, 절대 불가능합니다. 헌법재판소가 과외교육을 합헌으로 본 것도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의미였어요. 그래도 사교육을 경계하고 대처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욕망이 기능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욕망의 순환고리를 어떻게 교육 정책으로 풀어나갈 것이냐’를 두고 지금도 많은 고민을 합니다.”

#이승욱(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숲’ 대표. 전직 교사.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학 전공 후 10년 이상 상담 활동)

-사교육 열기 속에 숨은 부모들의 욕망은 정체가 뭐라고 생각하나

“공포라고 봐요. 다 늙어서도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요. 국민연금을 부어 봐야 그 돈으로 살 수가 없어요. ‘우리도 노후가 위험한데 지금의 생활 수준마저도 애들이 지키지 못하고 뺏기면 어쩔까’하는 마음인 거죠. 지금의 부모세대는 IMF 외환위기와 세계금융위기를 겪었어요. 부모가 가진 부동산을 저당 잡혀서 사업을 차렸다가 경제 위기를 맞아 쫄딱 망하는 케이스도 숱하게 봐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 시스템이 개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요. 결국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남으려면 수입이 안정적인 전문직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고학력이 필수적인 거죠.”

-뉴질랜드 생활 경험을 토대로 사교육과 우리 사회시스템을 관련 짓는 발언을 많이 했다.

“그 곳에서 여러 케이스를 봤어요. 남편 직업이 목수인데 와이프의 직업은 의사이거나, 부동산업을 하는 부인과 대학교수인 남편 등등.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10년 경력의 목수 연봉이 대략 5만~6만불이고 많으면 10만불도 넘어요. 교수보다 많아요. 뉴질랜드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4,000원 수준이에요. 대학 진학률이 우리보다 훨씬 적어 50%도 안 됩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면 국가가 무이자 대출부터 대부분의 과정을 책임집니다. 노후도 비슷해요. 생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는 경우가 우리보다 현저히 적어요.”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

“가족이 대를 물려가며 서로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우리의 시스템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가 개인을 돌보는 장치가 마련돼야 해요.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장치 말이죠.”

[저작권 한국일보] 8일 오후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17학년도 정시모집 입시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배치기준표를 살펴보고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2016-12-08(한국일보)
◇변하지 않은 것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시청률이 연일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를 압도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한번쯤 시청했거나, 줄거리를 들어봤을 정도죠. 2019년 1월,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고 계신가요. 당신은 대치동 ‘성벽’ 안에 있습니까. 그 속에 있다면, 행복하신가요. 아니면 밖에서 분노 혹은 질투, 그도 아니면 자식에게 그만큼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요.

530년 전 은행나무가 뿌리 내렸다는 대치동. 비옥한 땅 한 평 물려 받지 못해 안간힘을 쓰며 가난과 싸웠을 마을 사람들과 생존의 공포를 간직하고 늦은 밤까지 아이를 학원으로 내 모는 부모들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아 보입니다. 이상 [오리지너]였습니다. ☞ ① 가장 많은 부자가 '재생산'되는 곳, 대치동

☞ ② 대치동은 어떻게 사교육 '캐슬'이 되었나

조원일 기자 ㆍ김창선 PD ㆍ자료조사 박서영 ㆍ이현경 ㆍ박기백

*이 기사는 작성 과정에서 서울역사발물관의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 보고서에 많은 부분을 의지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독자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자료와 과거 기사만으로 채울 수 없었던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범 교육평론가님, 조민지(가명)씨, 이승욱 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숲’ 대표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