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 못했던 ‘선생님’의 성공
[저작권 한국일보]

“사교육 업계에서 강사가 되는 사람은 일반적인 취업 경로를 밟지 않은 사람이에요. 기업 공채 지원이 흔히 생각하는 대학 졸업 후의 진로인데, 학원을 시작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진로보다) 돈이 필요하죠. 대부분은 자기가 중고등학교 때 학습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잘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80, 90년대 유명 학원 강사는) 그래서 명문대 출신, 특히 일반적 취업 과정을 밟기 어려웠던 운동권이 많았어요. 기억하는 2000년대 소위 ‘일타 강사’로 불리는 스타 강사 중 절반 이상이 학생 운동권 출신이었어요.”(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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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사교육 신화 중 한 명이었던 이범 평론가는 1세대 스타 강사의 정체성을 자신의 과거 커리어이기도 했던 △명문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꼽습니다. 권위주의 정부 공교육 시스템에 때가 덜 묻었으면서도 학생들의 언어와 시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고학력의 강사. 하지만 사교육의 본격 태동기였던 90년대, 민주주의의 수준과는 별개로 경제는 호황이었죠.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기업들이 학점 따위 상관 않고 뽑던 시절에 정식 교사도 아닌 학원 강사 자리에 유능한 대졸자를 앉히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사회변혁 혹은 개혁을 위해 나섰다가 수배와 구속 등으로 경제적 자립 기회를 제약당했던 운동권 출신의 가난한 청년들이 이 조건을 정확히 만족시켰습니다.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립을 전후해 개혁적 성향의 교사들이 대거 해직되면서 사교육계로 들어 온 것도 이런 흐름을 강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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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동네 중에서도 하필 ‘강남 변두리’ 였던 대치동이 사교육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도 이런 이유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군의 인근 지역 중에서 상대적으로 사업 자금이 부족했던 학원 관계자들에게는 임대료가 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영어 조기교육 열풍의 상징으로 불리는 정상어학원이 당시 강남의 여러 아파트 단지 중 싼 곳에 속했던 은마종합상가에서 처음 자리를 잡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치동에 유능한 선생님이 있는 학원들이 생겼습니다.

◇대치동에 집결한 가족

그러나 대치동으로 학원을 끌어 모은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학생, 그리고 학부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의 성적을 위해 유능한 강사가 필요하고 그만한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자 말이죠. 여기서 이른바 ‘대전족’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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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이 지난해 6월 발간한 보고서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는 누가 대치동에 살았고 떠났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주목할 지점은98년과 2016년의 주민등록 기준 대치동 인구의 출생연도 통계입니다.

98년 8만3,423명이었던 대치동 거주 인구는 2016년 8만7,635명으로, 8만5,000명 안팎을 꾸준히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연령별 구성 또한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 곳에 정착했던 주민이 많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인구의 연령대도 자연스레 높아져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98년에 초ㆍ중ㆍ고 학생 연령의 자녀 세대 및 이들의 부모세대 연령대 인구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 했는데 이런 구성은 2016년에도 그대로입니다.

대치동 인구의 전ㆍ출입 상황을 살펴보면 이런 흐름은 더욱 뚜렷이 드러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동안 대치동을 넘나 들었던 인구의 연인원은 무려 40만명에 육박합니다. 실제 거주 인구의 4배가 넘는 숫자가 드나들었던 셈이죠. 그런데도 2005년과 2016년의 대치동 인구수 차이는 800명 정도로,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합니다. 10대와 40대 중반의 인구 무리가 들어와서 살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빠져 나가면 또 다른 10대와 40대가 그 자리를 채웠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대치동이라는 협소한 지역에 집중된 이 거대한 인구 이동의 실체는 바로 대입 이전의 학생을 둔 학부모 가족입니다.

1998년과 2016년 대치동 거주자 연령비교. 행정안전부

이 가족들은 왜 대치동에 터를 잡았을까요. 몰려들기 시작한 학원들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부동산 가격이 큰 요인이 됐습니다. 실제 강남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테북’과 ‘테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남의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보다 고가의 아파트가, 남쪽에는 상대적으로 저가의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는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집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강남이지만, 그 안에서도 또 다시 빈부격차에 따라 거주지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대치동은 ‘테남’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79년에 준공된 4,400여 세대의 대단지인 은마아파트, 81년 준공된 1,300여 세대의 청실아파트가 ‘대치동 가족’의 가장 보편적인 거주지로 통합니다. 특히 이들 아파트는 전세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체 가구 중 60~70% 정도가 전세라는 것이 인근 부동산 업계의 분석입니다. 학기초인 1~3월 사이에 이사가 가장 빈번하게 이뤄진다고 하죠.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한시적인 보금자리로 대치동을 택하는 이들을 ‘대전족(대치동 전세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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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방에 비하면 월등히 비싼 집값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세부적인 집계 자료는 없지만 보고서는 다양한 학원 업계 관계자와 거주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토대로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대전족의 주축을 이뤘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강북 생활을 청산하고 강남 이주를 결행하는 부모, 명문대를 졸업해 자수성가를 이룬 부모,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차별을 겪으며 분투하는 부모, 강남에 집을 살 수는 없지만 전셋집을 얻을 수 있는 부모가 대치동에 모여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치동의 핵, 강력한 수요층이 비로소 형성된 것입니다.

◇메가스터디, 그리고 ‘대치동 2.0’

대치동으로 집중된 수요와 공급은 입시 제도의 변화를 맞이하면서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이었죠. 학력고사 체제의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겠다는 개혁적 방향성을 가지고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역설에 가까웠습니다. 공교육보다 훨씬 유연한 강사진과 교수법을 장착한 대치동 학원가에 새로운 입시 체제는 거대한 기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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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사교육계의 전설로 각인된 메가스터디의 전신인 강남대일학원(93년)에 이어 스타 강사를 앞세운 대형학원들이 잇따라 대치동으로 들어온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학원들 역시 대치동과 어깨를 겨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집니다.

그리고 2000년 온라인 강의를 앞세운 사교육 기업 메가스터디의 출현은 업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킵니다. 전국적인 인터넷망 확산에 힘입어 학원에 직접 가지 않고도 유명 강의를 집에서 들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죠. 1차 적인 효과는 소위 ‘1타 강사’ ‘스타 강사’를 중심으로 한 독과점 체계가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메가스터디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2004년 코스닥에 상장되고 2005년에는 회원 수가 100만명을 돌파, 산업으로서 사교육의 가능성을 입증하게 됩니다.

스타 강사들이 학원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강의 연구팀을 구성하고 개별 학원과 계약을 맺으며 활동하는 사례도 늘어갑니다. 마치 유명 연예인들이 방송국이 아닌 개인 법인을 세워 매니저를 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21세기 대치동의 상징과도 같은 맞춤형 사교육도 이런 배경에서 나타납니다. 뛰어난 강사의 수업이 학원 성공의 대부분을 좌우했던 1세대의 방식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던 중소 규모 학원들이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죠. 그 답은 수요-공급-입시체계 변화의 트라이앵글이 수년 간 축적한 데이터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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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학원가가 초점을 맞추는 일부 상위권 대학은 (수시) 합격자의 점수 데이터를 별도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학원) 상담자는 경험적 방식에 의존한다. 매년 입시전형 상담을 제공한 학생들의 사례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한다. 경력이 오래될수록 수집되는 합격 불합격 사례가 많아지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은 전형 기준 자료를 생산할 수 있다.”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 보고서가 소개한 모 학원 상담실장의 이 말은 대치동이 어떻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교육 중심지가 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랜 기간 선두 주자의 위치를 점유하면서 모은 데이터가 이제는 후발 주자인 다른 지역 학원들의 추격을 막는 진입 장벽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는 것이죠. 이런 입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하는 대학, 학과에 합격하기 위해 수험생이 수년 전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계획을 수립해 주는 입시 컨설팅이 대치동 학원가의 주 종목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강남교육지원청이 인정하는 학원의 분당 강의료 수준은 400원대이지만 업계에서는 입시컨설팅의 분당 가격을 최소 5,000원 안팎으로 보고 있습니다. 1시간이면 30만원이죠. 학부모들 사이에서 정평이 난 상담실장이라면 엄청난 수익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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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은 수시와 정시를 비롯해 각 대학이 저마다 학생부종합전형, 학생의 출결, 수상경력, 자격증 등 온갖 요소를 활용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지금의 복잡한 입시 체제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고가의 학원 수업료는 물론, 상담료를 지불할 수 있는 학부모의 자녀들만이 이런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최근 드라마를 통해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학생 ‘코디네이터(코디)’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계획의 수립을 넘어 학생들이 입시 전형 요소를 일일이 관리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범 평론가는 “코디는 상대적으로 컨설턴트보다 베일에 가려져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정보가 공유되는 것으로 안다”며 “학생의 모든 걸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한번에 여러 명을 맡을 수 없어서 그 비용도 훨씬 높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진화’를 거듭한 21세기 대치동은 누군가에게는 최첨단의 사교육 공급처, 누군가에게는 ‘입시 지옥’의 상징, 또 누군가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그들만의 ‘성’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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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가장 많은 부자가 '재생산'되는 곳, 대치동

☞ ③ 당신에게 대치동의 '성벽'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조원일 기자 ㆍ김창선 PD ㆍ자료조사 박서영 ㆍ이현경 ㆍ박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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