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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복을 입은 유재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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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복을 입은 유재하를 만나다

입력
2019.01.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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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히트곡, ‘유재하의 클래식 콘서트’

오페라와 어우러진 유재하의 노래들을 최고의 명곡으로 꼽은 황정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이사.
오페라와 어우러진 유재하의 노래들을 최고의 명곡으로 꼽은 황정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이사.

“유재하는 건드리지 마라.”

기획 단계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찮았다고 들었다. 유재하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길 소망하는 골수팬들이 저항이었다. 그럼에도 비아트리오는 건드렸다. ‘유재하의 클래식 콘서트’. 유재하의 명곡들에 오페라 아리아를 접목시켰고, 여기에 이야기까지 입혔다. 관객은 유재하를 오페라로 만났다.

유재하의 노래에 이어 이탈리아어로 흘러나오는 오페라는 낯설었지만 극의 전개에는 전혀 이물감이 없었다. 멜로디를 통해, 또 배우의 눈빛과 음성으로 곡의 주제가 흐트러짐 없이 전달되었다. 마치 원래부터 쌍둥이로 태어난 곡들인 것처럼, 유재하의 노랫말과 노래 속에 담긴 정서가 오페라의 웅장한 발성으로 폭죽처럼 터지는 느낌이었다.

유재하의 팬들에게 오페라에 실린 유재하의 노래는 어떠했을까. 비 오는 날 조용한 찻집이나 골방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듣는 ‘우울한 편지’와 오페라와 함께 연주된 그 곡 중 어느 것이 더 좋았을까. 나는 감히 평가하지 못하겠다. 클래식 콘서트 속의 유재하는 원래의 유재하와 분명 달랐지만, 그의 오랜 팬들이 우려한 것처럼 유재하의 목소리가 전하는 감동에 흠을 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예술가들의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더 없이 감동적이었다.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전쟁을 벌였다. 적들은 베들레헴을에 주둔했다. 다윗이 문득 이렇게 외쳤다.

“나로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마시게 할 자가 누구인가!”

물맛이 좋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의미다. 곡식을 키우는 물이 좋아야 떡이든 빵이든 맛이 있다. 다윗이 마실 물이 없어서 베들레헴의 우물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물맛이 특별했을 것이다.

세 용사가 왕의 말을 듣고 적진을 뚫고 우물물을 길어왔다. 왕이 그토록 마시고 싶어 했던 물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맛난 물을 들이키지 않았다. 그는 용사들이 떠온 물을 절대자에게 바쳤다.

“내가 자기들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이 사람들의 피를 마시리이까?”

예술은 새로운 것이다. 베들레헴의 우물물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다윗을 전율케 한 세 용사처럼, 예술가들은 단순한 재생을 넘어 익숙한 감동을 새롭고 신선한 감동으로 바꾼다. 비난을 무릅쓰고, 혹시나 나올지도 모르는 혹평을 감내하면서 꾸역꾸역 간다. 그 과정이 진실하다면 물맛, 아니 결과물이 어떠하든 그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대중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자연스럽게 새로워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행가는 멜로디로 시작해 세월이 흐르면서 당대의 삶이 응축된 블랙박스로 남는다. 일상이 추억이 되듯 유행가는 역사가 된다. 그저 흘러가는 노래에 불과했던 것이 역사성과 새로운 의미를 입고 우리에게 현재의 어떤 심오한 말과 행위보다 더 깊은 맛과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유행가가 흘러가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무는 이유다.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새로워기지도 한다. 단순한 리메이크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도 감행한다. 원본을 뛰어넘는 원본을 탄생시키려는 용기와 도전이다. 김광석 역시 후배 뮤지션들의 도전 덕에 생전에 입어보지 못한 다양한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연미복을 입은 유재하가 우리에게 왔다. 공연 내내 유재하가 살았더라면, 어쩌면 저보다 더한 오페라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번 공연을 봤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자신의 옛 우물에서 오래된 노래를 길어서 가져온 ‘트리오’에게 유재하는 무슨 말을 건넸을까. 상상할수록 흥미롭다.

유재하의 클래식 콘서트가 유재하 거리가 생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구는 클래식의 도시니까. 그러면 김광석이 잠시나마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까. 김광석을 너무도 사랑하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기분 좋은 불안이다.

황정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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