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가 지난 해 9월 12일 경기 성남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선수들을 폭행한 사실을 뉘우친다며 감형을 노렸던 조재범(38ㆍ구속)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항소심 재판 선고가 연기됐다. 폭행 피해자들과 합의를 진행하면서 조씨가 집행유예로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피해 사실 폭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씨에 대한 성폭행 혐의 수사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심 선수의 고소와 폭로, 조씨 측의 반성문 제출, 다른 피해자들의 합의철회 등이 연일 이어지면서 진실 규명을 위한 공방은 이미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11일 수원지법에 따르면 당초 14일로 예정돼 있었던 조씨의 상습상해 혐의 항소심 선고가 23일로 연기됐다. 담당 재판부인 형사항소4부(부장 문성관)는 앞서 지난 해 12월 17일 결심 공판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계획을 수정해 14일 추가로 재판을 더 열어 사건에 대해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조씨의 성폭행 피소 사실이 일반에 공개된 직후에도 재판 일정에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재판부가 결국 연기하기로 결정한 이면에는 심 선수 측과 조씨 측의 치열한 ‘물밑 공방’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심 선수를 비롯한 4명의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해 9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수원구치소에 복역 중인 조씨는 피해자들과의 합의에 꾸준히 노력을 기울였다.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부분 회복됐다고 판단되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가 확인되면 형량을 감격해 줄 수 있는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2심 진행 중에 조씨 측은 1심에서 합의한 피해자를 포함, 심 선수만 제외한 3명의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데 성공했고 재판부에도 20차례나 반성문을 제출하며 범행을 뉘우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조씨가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조씨 측의 합의 시도가 심 선수에게까지 이어지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심 선수 측은 피해 사실 공개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12월 17일 조씨를 경찰에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게 된다. 심 선수의 변호인은 고소 직후 2심 재판부에 그 사실을 알려 조씨의 ‘반성’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을 전달할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증거 확보 전까지는 비공개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경찰의 요청에 따라 심 선수는 이미 고소하기로 마음을 굳힌 이후인 12월 17일에도 법원에 나가 폭행 사실에 대한 증언만 했다. 이날 심 선수는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러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먹과 발로 폭행을 당했고, 그 여파로 뇌진탕 증세가 생겨 올림픽 무대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다”며 “피고인이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반면 조씨의 변호인은 “조 전 코치는 심석희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했던 것”이라며 폭행에 ‘악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경찰이 12월 31일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휴대폰과 태블릿PC 등을 확보하면서 성폭행 혐의 수사는 처음으로 외부로 드러나게 된다. 최소한 압수수색이 있었던 31일에는 조씨 측이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씨는 지난 1월 3일과 8일에도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심 선수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반성문에는 성폭행 피소 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고 기존 폭행 혐의에 대한 변명만 있었다”고 말했다. 심 선수 측도 1월 8일 재판부에 성폭행 혐의 고소 사실을 알린다. 이 때까지도 재판부는 선고일 연기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1월 8일 기존에 합의했던 폭행 피해자 2명의 합의 철회까지 이어지면서 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빙상인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재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조씨의 재판이 연기됨에 따라 경찰 수사 일정도 조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장은 “당초 16일 정도에 조사를 하는 쪽으로 협의 중이었지만 재판 일정이 바뀐 만큼 변호인과 다시 상의를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조씨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 중이던 지난해 1월 16일 훈련 중 심 선수를 수 차례 때리는 등 2011년부터 2018년 1월까지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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