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후 대사급은 처음… “잠적 후 국정원에 연락 없어”
북측 조사반 현지 파견 첩보 속, 북미관계엔 영향 적을 듯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지난해 11월 초 공관을 이탈해 잠적했다고 국가정보원이 3일 밝혔다. 조 대사대리의 망명 사실이 최종 확인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북한 대사급 외교관으로는 처음이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에서 정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민기 의원에게 “현재 조 대사대리 부부가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한 상황”이라며 “2018년 11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11월 초에 공관을 이탈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조 대사대리는 2015년 5월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한 뒤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구성은) 3등 서기관과 2등 서기관, 1등 서기관, 참사관, 공사, 대사로 분류되는데, 1등 서기관이면 실무를 담당하는 외교관”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간사인 이은재 의원은 “국정원은 조 대사대리가 1975년생으로 44세라고 했다”며 “북한이 미사일을 쏜 뒤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이 나오지 않아 2017년 승진한 조 1등 서기관이 대사대리가 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탈리아 정부는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일으키자, 같은 해 10월 문정남 당시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를 추방했다.
현재 조 대사대리의 소재는 불분명하다. 국정원은 조 대사대리가 이탈리아 당국에 신변 보호 요청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변 보호 요청은 망명이 진행되는 동안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외교 절차다. 그러나 이탈리아 최대 뉴스통신사 ANSA는 이날 “북한 관리로부터의 망명 요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잠적 배경과 관련해서는 조 대사대리가 본국 소환을 앞두고 자녀를 동반한 가족 전체의 한국 또는 제3국 망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가의 추측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망명도 자녀 교육 문제가 직접적 이유였다.
최근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이라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조 대사대리가 한국행보다는 제3국행을 선택했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의원은 “잠적한 지 약 2달 사이에 국정원에 연락을 취해 오지 않았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제3국 망명 가능성 타진 사실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망명을 막기 위해 가족 일부를 평양에 남게 하는 통상의 경우와 달리 부인ㆍ자녀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생활했다는 점에서 조 대사대리가 북한 내 최고 핵심 계층 집안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태 전 공사는 이날 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조 대사대리의 아버지도 대사였고, 장인은 리도섭 전 태국 주재 북한대사이고, 부인은 평양의대를 졸업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일단 북한 내부의 동요가 없지는 않을 듯하다.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주축인 조사반이 구성됐고 조사반이 최근 이탈리아를 찾았다는 첩보도 정보 당국이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 대사대리의 잠적이 남북이나 북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리라는 게 중론이다. 대북 소식통은 “망명 사실이 노출돼 봐야 이로울 게 없고 아직 망명지도 정해지지 않은 만큼 한동안 북한이 함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협상 재개를 바라는 미국도 변수를 최소화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은 여러 차례 있었다. 1991년 당시 고영환 콩고 주재 북한 1등 서기관이, 1996년에는 현성일 잠비아 주재 북한 3등 서기관이 망명했다.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영국 주재 북한 참사관이던 형 장승호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2016년 태 전 공사의 한국행이 최근이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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