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급락에 文대통령 인내-성과 강조
한국당도 ‘25% 함정’ 갇혀 자충수 거듭
‘무당층’ 계속 늘어 정치불신 심화 우려
세밑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0% 중반대로 떨어져 부정이 긍정을 앞서는 이른바 ‘데드크로스(dead-cross)’ 현상이 나타났을 때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민의 마음은 늘 무겁게 받아들이겠지만 숫자에 너무 매몰되면 더 큰 것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심의 흐름은 세심하게 받아들이되 정책 운용이나 정부의 자세는 흔들림 없이 가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마음을 헤아린 적절하고 옳은 지적이다. 숫자에 일희일비하며 정책기조나 방향을 틀거나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책임있는 태도도 아니다. 혼선과 반발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도 간단치 않다.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또 세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 총리의 마음이 통했는지, 이후 문 대통령의 말과 발걸음은 이전과 달랐다. 산업부 업무보고에선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며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언했고, 새해 경제운용 방향을 논의한 자리에서는 정책의 ‘시장 수용성’을 각별히 강조했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 시장에 충격을 주는 새 정책을 추진할 때 사회경제적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은 물론, 국민 공감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지적이지만 지난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이 말을 꺼냈다가 곤욕을 치른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문 대통령이 틈날 때마다 성과와 속도를 주문하는 것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그렇다고 포용의 가치를 향한 대통령의 집념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그 뜻은 신년인사회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경제정책의 기조와 틀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논란도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며 “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때까지 인내할 것”이라는 다짐이 그것이다. 달라진 것이라면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며 노동계 등 우군의 전향적 태도를 강하게 요구한 점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무산에 크게 실망한 듯 그는 “(정부가 옳은 정책을 내놔도) 대화와 타협, 양보와 고통 분담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새해 첫 여론조사는 문 대통령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데드크로스 유령을 쫓아냈다. 대통령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민심의 속성은 의심과 변심이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을 누차 보아온 탓에 숫자에 연연하지 않지만 몇몇 논란과 악재에 따른 연말 추세가 연초까지 이어지는 것은 부담스럽다. ‘3년 차 증후군’이 정설로 자리 잡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원성을 등에 업은 ‘경제 실패’ 프레임도 강화돼 국정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테니 말이다. 데드크로스를 경계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그것이 문 대통령의 대선지지율(41.1%)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선이 무너지면 핵심 지지층의 분열이 가속화되고 당정 장악력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인 것은 문 대통령이 직면한 데드크로스가 자유한국당을 코너로 몬다는 점이다. 중도층의 이탈로 대통령 지지율이 3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는데도 한국당 지지율은 홍준표 전 대표의 대선 득표율(24%) 주변에 줄곧 머물러 있다. 20% 아래서 허덕이던 시절이 길었으니 이 정도도 뿌듯하게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110석이 넘는 국회의석을 가진 70년 보수정당이 25%를 천장으로 데드록(dead-lock)에 갇힌 것은 부끄럽다. 혁신 비대위가 출범해 당 좌표의 재정립과 물갈이 운운하며 6개월 가까이 호들갑을 떤 결과가 이 수준이다.
한국당 눈에는 문 정부를 덮친 데드크로스만 보일 뿐 자신들이 빠진 데드록은 보이지 않는다. 지분이 없는 비대위원장은 곁방살이 신세로 전락하고 친박에 얹힌 원내대표는 개혁과 담쌓은 채 기득권에 안주하는 등 전혀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해서다. 문 대통령의 분신인 조국 민정수석까지 불러내 한바탕 굿판을 벌였지만 떴다방 같은 날림과 무지만 돋보였다.
그래서 마음둘 곳 없는 무당층만 자꾸 늘어난다. 평등ㆍ공정ㆍ정의를 말하는 문 정부의 레토릭은 혼란스럽고 기회ㆍ자유ㆍ책임을 내세우는 한국당의 비전은 공허하다. 딜레마다.
이유식 논설고문 y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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