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제’ 출구 찾은 ‘문-문 회동’ 사례 눈길
‘청와대 참모 정치’ 접어야 데드크로스 극복
경륜 풍부한 ‘의장-대표-총리’ 라인 살려야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업무 보고에 앞서 강릉 펜션 사고 고교생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40% 중반으로 추락했다는 여론조사가 이날 발표된 탓인지 대통령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침통하다. 연합뉴스

손학규ㆍ이정미 대표의 ‘연동형 비례제 요구 단식’이 9일째를 맞던 14일 오전까지도 여야가 협상의 출구를 찾지 못하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급히 청와대 문을 두드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 카드이자 열쇠라는 생각에서다. 마침 오후 일정이 없던 문 대통령이 문 의장의 면담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 5시30분부터 30여분간 대면이 이어졌다. 의장 취임 후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장은 “야당 대표들의 단식이 주말을 넘기면 위험하니 대통령이 분명한 메시지를 내 협상의 물꼬를 터 달라”고 요청했고, 문 대통령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연동제는 나의 지론이며 후보 시절부터 누차 공약해 온 사항”이라며 그 뜻을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한 문 의장은 바로 국회 근처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 만찬장으로 달려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났다. 야당 대표의 단식을 풀고 국회를 정상화하려면 한국당의 전향적 태도가 불가결했던 까닭이다. 문 대통령의 지원은 확약받은 터였다. 이어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 중인 두 대표를 찾아 청와대와 한국당의 생각을 전하고 그동안 민주ㆍ한국당을 오가며 중재역을 맡았던 김관영 바른당 원내대표와 접촉해 구체적 합의문구를 조율했다.

이날 저녁부터 밤 사이에 그려진 큰 그림의 화룡점정은 다음날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단식농성장을 찾은 임종석 비서실장이 찍었다. “국회가 중앙선관위 안을 토대로 (의원 정원 문제를 포함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 합의안을 도출하면 적극 지지하겠다”는 언급과 함께 여야는 ‘1월 국회서 연동제 선거법 합의 처리’를 골자로 하는 6개항의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고 두 대표도 단식을 풀었다. 불과 20시간 만에 이뤄 낸 반전 드라마였다.

한국당이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동의가 아닌 검토에 합의한 것”이라며 발을 빼고 민주당 역시 “합의가 끝은 아니다”고 얼버무리니 선거제 개혁의 긴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당은 물론 의원 개개인의 이해를 충족시켜야 하고 여론도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호랑이는커녕 고양이도 그리지 못할 개연성도 크다. 하지만 해석이 제각각인 어설픈 합의라 해도 ‘연동제’란 표현과 시한을 명시한 합의를 끌어낸 일련의 열린 과정과 주요 플레이어들의 역할은 시사하는 바 크다.

특히 문 대통령과 문 의장이 앞장서고 여야 리더들을 설득해 결실을 끌어낸 방식은 말만 번지르하던 협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얼마나 지극한 정성과 땀을 쏟아 부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 정치 단막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문 의장은 “선거제 개혁에서 대통령이 주도적 정치력을 보여 주면 민생ㆍ개혁입법을 위한 좋은 구도가 마련될 것”이라고 건의했다는 후문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고비 혹은 전환점을 맞은 것은 분명하다. 올인하다시피한 북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고, 고집스레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은 ‘약자의 궁핍화’라는 역설에 직면했다. 그 결과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40% 중반으로 추락했고, 일부 조사에선 반대가 지지를 앞서는 ‘데드 크로스’도 발견됐다. 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모든 지역ㆍ계층ㆍ세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경제ㆍ민생 지표가 날로 나빠지는데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인사기강 문란과 추문으로 청와대는 동네북이 됐다.

반전의 기회와 시간은 있다. 이미 국정관리의 한계를 드러낸 ‘내 사람 중심의 청와대 통치’를 지양하고 당정에 포진한 ‘정권 대주주 중심의 여의도 정치’로 큰 그림을 새로 그리는 것이다. 문 의장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등의 안목과 지혜, 전략적 마인드는 지금 문 정부에 꼭 필요한 귀중한 자산이다. 문 대통령이 최근 자주 언급하는 뼈아픈 자성과 비상한 각오는 이들의 경륜에 기초한 로드맵의 재정비와 함께해야 빛을 발한다. ‘대통령 혼밥’ 소문의 출처는 찌라시가 아니라 청와대의 불통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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