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견해를 발표했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인종차별철폐협약)’은 유엔이 1965년에 채택한 협약으로, 국제인권기본규범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에 발효됐다.
인종차별철폐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정기적으로 국가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돌아가며 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위원회는 국가 보고서와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고, 당사국 정부에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은 다음 그 나라의 인종차별 상황에 대한 판단과 권고사항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데, 이것이 바로 최종견해다.
올여름 일본 심의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 강제노동, 재일한국인 차별같이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는 이슈들이 있어 한국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피해자인 이슈에 대해 일본 정부가 변명을 했다. 이번 우리나라 심의는 우리나라 정부가 보고와 해명을 하는 자리였다.
나는 2012년 한국 심의에 시민사회단체의 일원으로 참가했었다. 그때 우리나라는 인종차별 가중처벌과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받았다.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폭력적인 이주민 단속,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 같은 이슈들이 꽤 문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위원회가 이번에 낸 권고들 중에는 6년 전과 비슷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지난 6년 동안 인종차별 문제에서 그다지 더 나은 나라가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같은 권고를 거듭 받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다. 낭비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도 되면, 국내현실이 아직 국제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변명은 제네바에 가서 하기 부끄럽다. 우리나라는 유엔 전 사무총장 배출국이고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작년에 우리나라가 유엔에 낸 분담금은 2억3,000만달러에 달했다. 우리나라는 유엔 핵심분담국 중 하나다. 이건 그냥 갖는 지위가 아니고 그냥 내는 돈이 아니다.
인권에는 가격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영향력과 협상력이 있는 나라가 되려고 노력을 한다. 나는 정부의 입장을 잘 모르겠지만, 자발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이 되려고 하는 주권국가는 없지 않을까? 영토분쟁, 주권정치개입, 환경규제, 무역제재조치나 협상 같은 여러 영역에서, 여러 나라들은 제각기 원하는 바가 있고 이를 얻기 위해 힘을 가지려고 한다. 인권규범이행 또한 한 나라의 국력이자 협상력이 된다. 당위를 말하기 전에 실리만 따져도 시늉이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솔직히 인권규범은 합격점이 꽤 낮아서, 조금 신경을 쓰면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국은 인종차별로 점수를 왕창 까먹었다. 일단 6년 동안 개선하지 못한 점들이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인종차별이 범죄가 아니고, 가중처벌도 받지 않는다. 폭력적인 이주민 단속을 하지 말라고 그렇게 여러 번 권고를 받았는데, 올해 8월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법무부의 단속을 피하려다가 추락사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매매혼에 가까운 국제결혼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문제나 인신매매방지법이나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문제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외에도 여러 유엔 절차에서 하도 여러 번 지적을 받아, 이제 그 부분은 부동문자로 보일 지경이다.
여기에 최근 똑바로 해결하지 않은 다른 이슈들까지 더해졌다. 난무하는 인종차별 및 혐오발언, 난민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공포와 이를 부추기는 언론보도,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부재 등,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받아 온 숙제는 또 늘었다. 경제력에 미치지 못하는 인권의식과 수동적인 정부 정책 사이에서, 숙제와 감점은 쌓이기만 한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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