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첫 2000만장 돌파… 미국선 3년새 ‘반토막’
방탄소년단ㆍ워너원 등 K팝 한류 아이돌 성장 덕 톡톡
2012년 개봉한 영화 ‘건축학 개론’은 멜로 영화로는 드물게 411만 관객을 모았다. 19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추억의 물건을 등장시키며 30대 이상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대학생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이 마루에 걸터앉아 CD플레이어(CDP)로 그룹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들으며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화 개봉 당시에도 CDP는 황학동 벼룩시장에서나 찾을 수 있을 만한 추억의 전자제품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불붙은 CD 시장
음악을 소유가 아닌 접속해서 듣는 시대 IT강국이라는 한국에서 CD 시장이 부활했다. 올해 국내 CD 판매량은 2,154만장으로 2011년(682만장)보다 판매량이 3배 이상 늘었다. 줄어들 줄 알았던 CD 판매량이 오히려 폭증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본보가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에 의뢰해 2011년부터 2018년 12월8일까지 연도별 음반 판매량(상위 400위 합계)을 확인한 결과다. 음콘협이 가온차트를 만들어 국내 음원 및 음반 판매량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역대 최고치로, CD 판매량이 2,000만 장을 넘기기는 2010년대 들어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CD 판매량은 1,693만 여장이었다.
국내 CD 시장은 2년 전부터 불이 붙기 시작했다. 2016년 CD 판매량이 1,000만장을 돌파한 이후 매년 500만장 이상 늘었다. CD에서 음원으로 음악 소비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뒤 점점 위축되고 있는 세계 음반 시장과 정반대의 판매 경향이다.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 CD 판매량은 지난해 8,760만 여장으로, 3년 전인 2014년(1억4,280만장)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100위 안에 비 아이돌 가수 ‘0’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CD 판매량이 급증한 데는 K팝 아이돌 산업의 성장 덕이 크다. 빅뱅이 2006년 데뷔하면서 거세진 K팝 한류는 방탄소년단과 워너원, 트와이스의 등장으로 넓어졌다. CD 시장도 되살아났다. 4만장 이상을 팔아 올해 음반 판매량 100위 안에 든 가수 중 아이돌이 아닌 가수는 아예 없다. CD 시장이 바로 ‘아이돌 리그’인 셈이다. 방탄소년단은 올해 낸 두 장의 앨범으로 400만장을 팔아 치웠다. 하지만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 연구원은 “(활동이 한시적인 프로젝트 그룹인) 워너원이 31일 해체해 내년 CD 시장은 올해처럼 붐이 일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너원의 올해 CD판매량은 200만장에 달한다.
‘105종 포토카드’까지 등장 ‘상술 극대화’
CD 시장의 성장은 아이러니한 현실의 결과물이다. 팬들이 음악을 듣기 위한 행위보다 기념품처럼 CD를 구매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상당수 아이돌 팬들은 가수의 사진을 모으고, 사인회 응모 당첨을 위해 CD를 여러 장 사곤 한다. 중고 음반 시장엔 포장도 뜯지 않은 아이돌그룹 CD가 쏟아진다. 음반 매장에서 CD를 산 뒤 받은 영수증에 연락처와 이름을 적은 뒤 그 영수증을 팬 사인회 응모함에 넣은 뒤 CD를 되팔아서다. CD를 판매하는 온라인사이트 예스24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중고 CD 거래량이 해마다 최소 10% 이상 늘었다.
아이돌그룹 A를 좋아한다는 대학생 김모씨(20)는 “CDP가 없지만 CD 안에 들어 있는 포토 카드와 재킷 사진을 보려고 CD를 산다”고 말했다. CD가 아이돌 ‘화보’나 팬 사인회 응모용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아이돌 기획사의 지나친 상술도 CD 판매량 급증에 한 몫하고 있다. 기획사는 같은 곡이 수록된 CD라도 재킷 사진이나 내부 사진을 멤버 별로 달리 해 출시하는 식으로 팬들의 중복 구매를 부추긴다. 그룹 하이라이트의 멤버인 양요섭은 2월 솔로 앨범 ‘백’을 내면서 105종의 사진을 따로 찍었다. CD 하나당 에 실린 그의 사진은 단 두 장. CD에 무작위로 실린 양요섭의 사진 105종을 다 모으려는 열혈 팬이라면 한없이 지갑을 열어야만 한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팬덤이 두터운 남성 아이돌그룹의 경우 CD의 사진만 달리해 3~4개의 버전을 내는 게 기본”이라며 “CD 시장의 부활엔 기획사의 상술로 인한 거품도 많이 꼈다”고 꼬집었다.
글ㆍ사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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