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식사하고 2차로"
"동료들과 이해의 폭 넓히려고"
"저렴한 돈으로 부담없이 즐겨요"
영상녹화 장치 등 첨단 시설에
금연 시행에 인테리어 고급화로
여성ㆍ청소년 인구도 크게 늘어
“아! 두껍게 맞았네 정말 아깝다 “이야! 종이 한 장 차이네” “아니야. 탱크 두 대는 지나가겠다.”
13일 오후 9시 20분 대전 중구 A당구장. 계산대 바로 앞 당구대를 둘러싼 50대 초반의 남성들이 탄식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당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흡연실에 있던 한 남성은 자신의 차례가 오자 담배를 급하게 재떨이에 버리고 당구대로 달려왔다.
이 곳에서 만난 이정준(51)씨는 “30년 지기 친구들과 매월 모임을 갖고 저녁을 먹은 뒤 2차 내기 당구를 한 게임씩 친다”며 “저녁만 먹고 헤어지긴 아쉬워 당구를 치고, 맥주 한 잔 마시고 간다”고 말했다.
이 당구장을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홍석원(53) 사장은 “요즘 1차를 한 뒤 당구장에 오는 손님이 많다. 2차 내기를 해서 지면 맥주를 마신 뒤 다시 와서 3차 내기를 하는 손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당구가 생활스포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사람이 가볍게 모여 저렴한 비용으로 몇 시간씩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데다 당구장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등록신고체육시설업 현황에 따르면 2007년 1만8,261곳이던 당구장은 2016년 말 기준 2만2,495곳으로 23.2%(4,234곳) 늘었다.
당구 인구도 늘고 있다. 2016~1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에 따르면 당구 동호인이 속한 클럽 수는 2015년 1,207개(회원 수 4만4,492명)에서 2016년 1,254개(회원 수 4만6,293명)로 늘었다. ‘최근 1년간 참여 활동이 있는 상위 10개 종목’에서 당구는 2016년 10위(5.4%), 지난해엔 8위(8.3%)로 상승했다. ‘주로 참여하는 체육활동 종목’에서도 2년 연속 10위를 기록했다. 대한당구연맹은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당구동호인이 10만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개별적으로 당구를 즐기는 이들까지 합하면 실제 당구인구는 1,2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당구연맹의 설명이다.
이호균(58) 전 전남도의회 의장과 원로 언론인 정재조(67)씨, 교장으로 퇴임한 김부식(66)씨, 국회의원 보좌관 송진호(55)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남 목포시 신도심 평화광장 인근 당구장을 찾아 당구를 즐긴다.
이 전 의장은 “당구를 즐기면 겨울철 운동도 되고, 집중력이 생긴다. 시민들과 만나 소통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정씨는 “당구장에서 옛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송씨는 당구가 자신의 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송씨는 “당구를 배운 지는 얼마 되지 않는데 치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모시는 의원과 소속 정당의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김씨는 “당구는 퇴임한 동료들을 만나게 하는 구심점”이라며 “저렴한 돈으로, 가볍게 움직이며 즐길 수 있어 부담이 적은 데다 집중력도 살아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당구로 친목을 다지는 의사들도 있다. 서울치과의사협회는 5년 전 친목도모를 위해 열던 바둑경기를 당구경기로 바꿨다. 바둑이 온라인으로 가능해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자 직접 나와야 경기가 가능한 당구로 바꾼 것이다. 회원들도 당구로 종목을 바꾼 것에 만족한다.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데다 4명이 한 조를 이뤄 치기 때문에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형연(40) 강원도의원은 당구 마니아이자 전도사다. 수시로 지역주민들과 당구를 즐기면서 애로 사항을 듣고 의정활동에 반영한다. 강원도 당구연맹 기획홍보이사인 그는 의정활동과 함께 지자체에 당구대회를 알릴 수 있는 기획안을 만들고 보도자료와 미디어 홍보까지 도맡는다. 2015년 화천 쪽배축제 3쿠션 페스티벌을 유치하고, 놀이 시설이 부족한 시골마을 아이들을 위해 방과후 수업 프로그램에 당구 강습이 채택되도록 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레저스포츠 저변이 좁은 곳이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입문하기에 제격인 스포츠”라고 말했다.
당구는 안전하고 체력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어 노인들도 즐기고 있다. 대한 노인회 경기 성남시 분당구지회는 지난달 초 당구동아리를 구성했다. 회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지회 건물 지하에 있는 전용당구장에서 정기 모임을 갖고, 당구를 즐긴다.
당구가 인기를 끌면서 영상녹화 시스템 등 첨단 시설을 갖춘 당구장들도 생기고 있다. 부산 연제구의 한 대형 당구장에는 20여개의 당구대 천장에 고성능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이 당구장을 일주일에 2~3회 이상 찾는다는 김재영(41ㆍ회사원)씨는 “영상녹화 장치 덕분에 정확히 경기를 운영할 수 있어 다툼의 소지가 크게 줄었다”며 “경기를 다시 볼 수 있고, 영상을 휴대전화로 찍어 보관할 수도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당구는 일상생활은 물론, 케이블TV, 인터넷방송, 공중파 정규방송 등에서 게임을 진행할 정도로 미디어 측면에서도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당구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인테리어 개선, 첨단기술을 활용한 놀이문화로의 발전하기 때문이다. 과거 뿌연 담배연기로 가득했던 당구장이 이제 금연 시행, 인테리어 고급화 등으로 여성과 청소년들도 즐겨 찾는 모두의 스포츠 공간으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대한당구연맹 나근주 사무차장은 “여러 여건 변화로 당구는 계속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이고, 개인이 영세하게 운영하던 당구장들도 시스템화, 대형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연맹에선 이런 변화에 발맞춰 각종 클럽대회, 리그들을 개발하고 활성화하는 한편, 여성 당구인들을 위한 여러 사업을 개발하는 등 스포츠로서의 당구와 관련 산업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여러 노력들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ilbo.com
권경훈 기자 werhter@hankooilbo.com
임명수 기자 sol@hankooilbo.com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ilbo.com
박은성 기자 esp7@hanko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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