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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살목(殺木) 면허

입력
2018.12.15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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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시리즈 주인공에게 살인면허가 있다면 필자는 ‘살목(殺木) 면허’가 있다. 나뭇가지를 베거나 나무를 죽이는 면허이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임업후계자이거나 독림가이면 자신이 경영하는 산림에서 1년에 80㎥ 이내로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고 벌목할 수 있다. 80㎥이면 대략 1톤 트럭 8대를 채울 분량이다. 이보다 많은 살목을 하려면 지자체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산지 일시사용 허가나 벌목신청을 해야 가능하다.

한국은 나무를 죽이는데 매우 까다로운 나라다. 때문에 일반인이 나무를 베면 법으로 처벌받는다. 예를 들어 ‘산림자원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산림법)의 규정에 따르지 않고 나무를 벌목하면 산림법 위반으로 대부분 벌금형에 처해지거나 훼손면적이 넓으면 실형을 살게 된다. 한마디로 산림법 위반은 전과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특히 산촌으로 귀산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산촌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귀산교육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지역),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소득), 어디서 살 것인가(주거), 어떤 사회적 관계를 가질 것인가(갈등 방지) 등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기초 과정을 거쳐 심화 과정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구체적인 법제나 임업실습을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취약하다.

산림청의 귀산예산은 농식품부의 15~20% 수준으로 귀산인의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산림청은 구체적인 통계나 수치, 수요조사 등을 가지고 기획재정부나 국회를 설득해야 하지만 적극적이지 않다.

귀산교육 예산이 적으니 40시간을 교육하는데 어려움도 많아 한 해 교육인원이 1,000명을 넘기기도 힘들다. 귀산교육을 하는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조합중앙회, 일부 산림단체와 NGO가 있는데 대부분이 기초와 기본 강의이지 심화나 지역특성을 반영한 교육은 드물다. 또 임지견학, 산촌체류와 실습, 임업인과 교류는 임업진흥원의 ‘산촌 미리살아 보기’ 과정 등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부족함이 많다.

이러다 보니 임업관련 귀산촌 수요자를 전과자로 만들 가능성과 벌목사고 등을 국가가 방조하는 결과를 본의 아니게 조장하고 있다. 일반 톱으로 나무를 베는 것은 현실적으로 잔가지 정도이고 나무를 벌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대부분 엔진톱이나 충전톱을 사용하는데 충전톱이 간단하고 사용하기 쉬우나 단점도 있다. 영하 10도 이하에서는 작동이 잘 안되며, 큰 나무를 자르기에는 힘이 부족하고, 충전지를 여러 개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다.

필자는 경북 상주에 산지생태축산을 준비 중이다. 인위적으로 산림을 베어 내지 않으며 임간방목을 하는 방식으로 유산양을 키우기 위해 궁리한다. 혼자서 굴착기와 덤프트럭으로 진입로를 만들고 있는데 위험하고 순간의 방심이 심각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산양을 키우려면 개체 수를 1㏊(3,000평)에 EU기준인 15마리 이하로 방목해야 한다. 산림 훼손을 줄이면 초지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업성이 떨어져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나무를 죽이는데도 절차와 방법, 의식이 있다. 가급적 크거나 잘생긴 나무는 살리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목을 해야 하는 경우는 먼저 나무에 용서를 구한다. 쓰러트릴 방향을 살피고 주변 나무와의 관계를 판단한다. 벌목할 때는 가급적 나무의 휴지기인 겨울에 하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나무를 베면 빠르게 한 번에 쓰러트린다.

차량이나 기계, 살림살이가 들어와야 살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자위하지만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나무! 인류에게 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지만 일방적인 피해자이다.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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