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조사” 선거법 위반 혐의 부인
‘가짜 권양숙 여사’ 김모(49ㆍ구속 기소)씨에 속아 4억5,000만원을 뜯긴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두 번째 검찰 조사에서 피의자신문조서에 날인을 거부했다. 검찰이 사기 피해자인 자신에게 6ㆍ13지방선거와 관련해 공천을 기대하고 돈을 건넨 혐의(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옭아매려 하자 “불공정한 수사”라며 저항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사실상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윤 전 시장 측이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리겠다는 재판전략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허정)는 11일 오전 윤 전 시장을 다시 불러 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13시간 동안 조사한 뒤 12일 새벽 귀가시켰다. 윤 전 시장은 조사 과정에서 김씨 자녀의 채용청탁과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윤 전 시장은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선 피의자신문조서에 본인 서명 날인을 거부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윤 전 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찰 조사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해 검찰의 조서에 날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전 시장의 법률대리인인 노로 변호사도 “(검찰이)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본인들의 의사만 반영하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위한 조서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우리 의견은 의견서를 통해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 사건을 선거범죄로 몰아가고 있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윤 전 시장 측은 그러면서 김씨가 구속 전인 11월 5일 경찰 조사를 앞두고 윤 전 시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이런 정황이 담겨 있다며 관련 내용도 공개했다. 전날 검찰이 윤 전 시장과 김씨가 268차례나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중 공천과 관련한 내용만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한 반박 성격이었다. 실제 김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엔 ‘경찰과 검사가 시장님과 제가 공범이라고 몰고 있다. 사건을 공천 쪽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김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엔 광주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된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도 들어있어 공천 관련 금품수수를 부인하고 있는 윤 전 시장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도 있다. 실제 김씨는 윤 전 시장에게 ‘시장님 휴대폰을 바꾸라. 몇 가지 우려되는 문자가 있다. 시장님이 기억하지 못 하신 것 같은데 문자로 얘기하신 내용이 있다. 더 이상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는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찌됐든 윤 전 시장의 피의자신문조서 날인 거부는 향후 형사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는 검찰 조서에 날인을 해 유죄를 인정(의제 자백)하는 것보다 차라리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윤 전 시장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다른 취지로 조서에 기재돼 있을 경우 법정에서 사실대로 진술하더라도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진정성을 의심 받게 될 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날인이 없는 조서는 피의자의 진술만 기재된 서류에 불과해 조서로서 실질적 진정성립이 이뤄지지 않아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수사에 말려들지 않고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리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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