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근 칼럼] 빈 둥지에 서재를 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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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빈 둥지에 서재를 들이며

입력
2018.12.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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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거래 계약과 같아진 부모 자녀 관계

돈의 위력을 맛볼수록 물질 의존 심화

가치와 정신의 전수에 관심 더 가져야

지난 2월 큰딸을 출가시켰다. 공부부터 취업까지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결했기에 부모로서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던 딸이다. 그럼에도 무능하고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초년 운이 좋다고 말하긴 어렵겠다. 마음의 빚을 미처 갚지 못한 채 딸을 출가시킨지라 기쁨과 아쉬움 사이에서 여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는 삼남매를 두었다. 결혼과 함께 유학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쌍둥이 남매가 태어났다. 머나 먼 타국 땅에서 쌍둥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야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일념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런 나는 애들에게 무책임하고 까칠한 아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 자리를 잡고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할 만할 즈음에 열두 살 터울로 깜짝 선물과 같은 막내딸을 얻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바람에 가지가 흔들려야 나무도 더욱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생장점도 깨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껏 애들은 나에게 삶을 좀 더 반듯하게 열심히 살아야 할 명분과 동력을 제공했다. 덕분에 나는 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며 나태함에 빠지지 않고 삶을 이어 올 수 있었다.

큰딸이 떠난 방에는 서재를 들였다. 그간 나에겐 변변한 서재가 없었다. 삼남매가 방을 하나씩 차지한 상황에서 서재 꾸밀 공간을 찾기 힘들었다. 집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쓸라치면 주로 식탁을 이용했는데 늘 뭔가 쌓아놓은 식탁 때문에 아내가 많이 힘들어 했다. 그래서일까, 서재를 들이는 일에 팔소매를 걷어붙인 아내는 일사천리로 일을 끝냈다.

내심 나는 큰딸이 쓰던 방을 비워 둘 요량이었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시면 며칠씩 쉬어 가신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부모님의 서울 나들이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마음을 바꿨다. 정초에 길을 가다 갑자기 쓰러지신 이래 아버지께서는 장거리 여행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셨다. 그때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요즘 대다수 신세대에겐 당연할지 몰라도 예전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건 대단한 호사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조부모 밑에서 자랐던 것도 단칸방에 어린 동생 둘에 나까지 데리고 있기 어려웠던 부모님의 고충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감격적이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묻는다면,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처음으로 집을 사서 입주한 때를 꼽고 싶다. 석양 무렵에 건넌방의 우윳빛 유리창을 투과해 내 들뜬 가슴을 불그레하게 물들이던 노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즈음 시작된 부모와의 동거는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서로가 자신의 역할에 익숙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대개 어렸을 때 부모의 부재는 불안과 공포를 가져오지만 나에겐 안도와 해방을 의미했다. 틈만 나면 조부모에게 달려가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내가 늦게나마 제자리를 찾고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건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 덕분 아닌가 싶다.

지금껏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초등학생 때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낡은 자전거를 끌고 왕진을 떠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것이다. 농촌의 많은 가정에서 소가 곧 전 재산에 가깝던 시절, 수의사인 아버지께서는 말 못하는 짐승을 거두는 이들의 때를 가리지 않는 호출에 그런 식으로 응했다.

부모 자녀 관계가 상거래 계약과 다름없는 세상이 됐다. 돈으로 효도를 담보하려는 시도는 세상을 더 삭막하고 비정하게 만들 뿐이다. 돈의 위력을 시험하기 전에 자녀에게 비친 자신의 뒷모습을 먼저 되돌아볼 일이다. 물질보다는 두고두고 견지해야 할 소중한 가치와 정신을 물려주는 게 좀 더 현명한 선택 아닐까 싶다.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어 대학에 진학한 학생일수록 물질에 대한 집착과 환상이 훨씬 심각한 것을 목도하며 갖게 된 소회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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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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