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물려받을 것인가 아니면 버리고 밑바닥부터 새로 출발할 것인가. 유빈은 전자를 택한 듯싶다. 유빈은 ‘원더걸스의 유산’을 윤색해 홀로서기할 때 자산으로 활용했다.
유빈이 6월, 가수 데뷔 11년 만에 처음으로 홀로 낸 노래 제목은 ‘숙녀(淑女)’. 그는 누렇게 색이 바랜 책에 힘을 잃고 누워 있는 낱말을 꺼내 1970~80년 유행했던 복고 사운드로 추억에 힘을 실었다. 뿅뿅 거리는 신시사이저와 두둥 거리는 드럼 소리의 청량함. 반짝이 드레스에 빨간색 장갑을 낀, 구한말 신여성 차림의 유빈은 무대에서 원더걸스 시절보다 더 진하게 ‘복고의 맛’을 우려낸다.
이 무대에선 유빈의 ‘표정’이 보인다. 원더걸스에 뜨거웠던 세상과 달리 정작 무대에서 살아 있는 표정을 보여주지 못한 소녀의 성장이다. 세월과 함께 자란 유빈은 그렇게 복고로 생명력을 찾았다.
“땡큐 소 머치~.” 유빈이 최근 낸 앨범 ‘#TUSM’의 타이틀곡 ‘땡큐 소 머치’는 그의 ‘복고 2탄’이다.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1989)을 연상시키듯 반짝거리는 조명 아래 가볍게 어깨를 흔들기 좋은 복고풍 멜로디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곡의 백미는 경쾌한 휘파람 소리.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 정떨어지게 해 줘 고맙다는 반어적 제목과 노랫말이 휘파람 소리를 타고 지루함의 문턱을 가볍게 넘는다. 팔을 요란하게 흔드는 게 특징인 ‘허슬’춤을 활용한 춤은 재미의 부록. 유빈은 ‘보내줄게’와 ‘게임 오버’ 등 수록곡을 모두 복고풍 스타일로 채워 그의 음악적 방향을 또렷하게 들려준다. ‘가시나’ ‘주인공’ 등의 복고풍 노래로 원더걸스 출신 선미와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유빈의 복고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까.
강추
EDM(일렉트릭 댄스 뮤직)과 힙합 대신 ‘시티팝’을 ‘힙’하게 찾는 청년의 신세계.
비추
선미에 유빈까지? 복고풍이라면 이제 그만.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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