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대의 루스 게이츠는 기후 변화로 결딴나고 있는 산호를 구하기 위한 '슈퍼 산호' 육종-이식 연구를 주도한 산호학자다. 그 연구로 그는 산호와 해양생태계의 파국적 상황을 저지-지연시킬 수 있는 희망을 '이식'했다. 또 레즈비언 과학자로서 해양생물학계의 생태계 다양성에도 기여했다. 그의 강한 자신감에 힘을 얻은 동료들은 그를 '해양생물학계의 '버락 오바마'라 불렀다. 하와이대 해양생물학연구소 사진.

‘기후 변화(Climate Change)’나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란 표현은 지나치게 수더분하다. 1960년대 세계기상기구(WMO)가 저 용어를 처음 쓸 때의 상황 혹은 위기감이 지금 같지 않았을 테고, 치우치지 않으려는 과학적 태도도 얼마간 반영됐을 테지만, 지구 생명의 탄생과 진화론의 시간에 비춰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의 기후 변화는 가히 ‘격변’이라 할 만하다. 이미 현실화한 묵시록적 파장을 감안한다면 ‘기후 파괴’ 혹은 ‘기후 재앙’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다는 저 기후 변화의 방파제이자 표지자다. 바다는 온실가스에 갇힌 잉여 에너지의 90%를 흡수해 지구 전체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고 지연시킨다. 대신 서서히 해수 온도가 올라 빙하를 녹이고 해류를 바꾼다. 대기와 바람의 질과 방향도 따라서 요동친다. 끝내는 바다 생태계, 나아가 지구 생태 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 바다 생태계의 ‘카나리아’(재앙 감지 종)라 불리는 게 산호다. 산호는 남북회귀선 사이 열대의 얕은 해저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이다. 바다 전체면적의 0.2%에 불과한 산호의 터전은 하지만 해양생물 종 25%(어류 종 20%)를 품는, 단위면적당 아마존 우림보다 더 밀도 높은 생태계다. 그 산호의 약 절반이 최근 50여 년 사이 사라졌다. 수온 상승과 탄소농도 증가에 따른 산성화 때문이다. 산호학계는 지금 추세라면 30년 이내 나머지 산호들도 무사하기 힘들다고 말해왔다.

‘Ocean-Optimism’ 운동은 2014년 시작됐다. ‘절망(doom and gloom)’에 잠식당해 주저앉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자는 운동, 최대한 긍정적인 소식을 공유하며 희망을 되찾자는 취지의, 종교적 간절함까지 깃든 시민운동이다. 캐나다 출신 과학 저술가 엘린 켈시(Elin Kelsey)의 트위터 해시태그(#OceanOptimism) 운동으로 시작된 캠페인에 4년 새 7,400여 만 명이 동참했다.

저 희망적 반전의 동력을 제공한 이가 미국 하와이대 해양생물학연구소(HIMB)의 산호학자 루스 게이츠(Ruth Gates)다. 그는 2013년 호주 해양과학연구소 매들린 반 오펜(Maddeleine van Oppen)과 함께, 해수 온난화와 산성화에 강한 내성과 복원력을 지닌 산호 종을 발굴ㆍ육종해 산호 멸종과 해양 생태계 피해를 줄여야 하며 또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을 세상에 알렸다. 그 에세이로 마이크로소프트사 공동창립자 폴 앨런의 가족 재단 ‘해양 산성화 대책’ 국제 공모에 당선(7개국 36개 아이디어 경합)돼 상금 1만 달러를 받았고, 2015년 연구계획을 구체화한 ‘슈퍼 산호 프로젝트’로 5개년 400만 달러 연구비를 따냈다. 그는 그 해 HIMB 소장이 됐고, 2017년 여성 최초로 국제산호학회 회장이 됐다.

여전히 제동 걸릴 기미 없는 기후 변화 추세와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산호들을 지켜보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2017년 ‘파리협약’ 탈퇴 선언을 지켜보며, 그는 하와이 오아후섬 카네오헤만 ‘코코넛 아일랜드’(Mokuolo’e 섬)의 연구소에서 저 연구를 이끌어왔다. 학회장으로서 유엔 등 국제환경기구와 시민들을 상대로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환경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그의 급진적 프로젝트, 즉 과학의 환경ㆍ생태 개입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비판과 우려에도 대응해야 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겉으로는, 단 한 순간도 낙담하지 않고 실낱 같은 희망의 통로를 개척했다. ‘해양생물학계의 버락 오바마(그의 대선 슬로건이 ‘Yes We Can’이었다)’, ‘산호초의 칼 세이건’이라 불려온 그가 10월 25일 게실염(diverticulitis) 수술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56세.

현재와 미래의 더 데워지고 산성화한 바다에서도 버텨낼 산호, 즉 슈퍼산호 연구를 그는, 자연진화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조력진화라 불렀다. 그의 시도를 비판하고 우려하는 이들에 대해 그는 일단 산호를 살리는 게 급선무라고 말하곤 했다. 사진의 수조가 슈퍼산호 종자 배양시설이다. AP 연합뉴스.

루스 데보라 게이츠(Ruth Deborah Gates)는 1962년 3월 28일 분단국 키프로스의 영국령 군사지역 아크로티리(Akrotiri)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군 정보기관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물리치료사였다.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고, 초ㆍ중등학교는 잉글랜드 켄트의 기숙학교에서 마쳤다. 공부보단 스포츠에 더 재능을 보여 교사가 운동 코치나 체육교사가 되라고 권했다지만, 그에겐 “빈 종이 백만큼이나 흥미 없는 제안이었다”고 했다. 11살 때 프랑스 해양생물학자 자크 쿠스토(1910~1997)의 해양다큐멘터리(‘The Undersea World of Jacques Cousteau’)를 본 이래 그의 꿈은 요지부동 해양생물학자가 되는 거였다.

게이츠는 84년 뉴캐슬대 해양생물학과를 졸업했고, 이듬해 석사과정서부터 자메이카 카리브해의 산호에 빠져들었다. 2015년 인터뷰에서 그는 “만일 내가 뭔가가 될 수 있다면 산호가 되고 싶다”고, “산호만큼 정교하고 오묘한 생물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hakaimagazine.com)

카리브해 산호의 대규모 백화현상이 시작된 게 그 무렵인 1987년이었다. 89년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자메이카 산호 백화현상과 해수 온도의 상관관계’였고, 노스브리지 캘리포니아대 산호학자 피터 에드먼즈의 말처럼 그의 논문은 “매우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하지만 게이츠는 이후 13년간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한 채 UCLA의 박사후과정 연구원 신분으로 산호와 공생조류(주산텔라, zooxanthellae)의 분자생물학적 상관관계, 엄밀히 말해 산호 백화현상의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그는 2003년 하와이대 HIMB로 옮겨서야 비로소 자기 연구실을 가질 수 있었다.(theatlantic.com)

수온이 높아져 스트레스를 받은 산호충이 공생조류를 토해내면 화려한 색을 잃고 저렇게 백화(bleaching)한다. 백화한 상태가 산호는 영양공급을 받지 못해 굶어 죽는다. climatecentral.org

산호는 미세한 산호충(polyp)들이 한 몸을 이뤄 해저에 붙어 사는 동물이다. 산호충들은촉수로 플랑크톤 같은 작은 생물과 유기물을 잡아 질소원을 얻고, 폴립 속에 주산텔라와 공생하며 그들의 광합성으로 산소와 다른 영양소를 얻는다. 수온이 오르면 광합성도 활성화한다. 산호는 산소포화도 증가에 따른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으로 조류를 쫓아내고, 저마다의 다채로운 색깔을 잃고 하얗게 변한다(백화). 그 상태가 지속돼 다시 조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산호충은 서서히 굶어 죽고, 산호는 딱딱한 사체로 남게 된다.

바다 산성화도 탄산칼슘 골격의 산호 성장ㆍ유지에 악영향을 미친다. 어류 남획으로 초식어류가 줄어드는 것도 해초와 서식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산호를 위축시키는 변수지만, 주된 원인은 기후변화와 산성화다. 죽은 산호 골격은 물이끼에 뒤덮인 채 서서히 풍화하다가 푸석푸석 가루로 부서지고, 산호초에 깃들여 살던 수많은 어류와 갑각류 등도 서식지를 잃는다. 10억여 명에 달한다는 연안 어민들도 생계를 위협 받는다. 그 변화들이 90년대 중반 이후 예년보다 3, 4배 가속화했고, 특히 2016~17년 엘니뇨로 세계 최대규모 산호 서식지인 호주 그레이트베리어리프의 산호초 약 절반이 초토화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해역 산호들의 성장률도 70년대 대비 약 40% 수준으로 격감했다.

HIMB가 있는 하와이 사정도 다르지 않아, 전체 산호의 60~80%가 백화하거나 죽어나갔다. 그에 대한 게이츠의 대응이 ‘슈퍼 산호’, 즉 수온상승과 산성화에 강한 놈들끼리 교배해 더 강한 종자를 배양- 이식하자는 거였다. 수천 년 이어져온 가축ㆍ농작물 개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자연 생태계에 생명공학적으로 개입하려는 것은 전통적 보전 원칙을 180도 뒤집은 ‘과격한’ 발상이었다.(hawaii.edu)

학계 안에서도 다양한 비판과 우려들이 쏟아졌다. 수억 년 진화의 과정을 과학이 단시일 내에 수행한다는 건 불가능할 뿐더러 숱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기술적 조작(techno-fix)’에 의존한 안이한 발상이다, 성공하더라도 종 다양성이 훼손될 것이다, 광범위한 해역의 해저 이식작업까지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들 것이다…. 1969년부터 HIMB에서 활동한 원로 산호학자 폴 조키엘(Paul Jokiel, 2016년 작고)은 게이츠의 발상이 온실가스 감축을 향한 근원적 동력을 약화할 수 있다며 “이미 알고 있는 해법에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washingtonpost.com)

수온이 35도까지 오르는 미국령 사모아의 바다에 적응한 산호도 있고, 대만 원전 해역처럼 30년 넘게 고온 냉각수를 버텨낸 산호도 있고, 심지어 핵실험장 비키니환초의 산호도 있다. 기후 변화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산호의 자체 적응력, 즉 자연선택적 진화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게이츠는 산호의 자연 진화를 믿고 기다리기엔 기후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들의 연구는 유전자조작(GM)과 다르다고, 자연선택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조력 진화(assisted evolution)’라고 불렀다.

게이츠는 2016년 4월 뉴요커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평가에는 관심 없다. 내가 걱정하는 건 지금 산호들이 겪는 일뿐이다. 내가 뭔가를 해서 산호가 미래에도 버텨낼 수 있다면, 그게 뭐든 나는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산호초를 구하려면 과학을 행동으로 전환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했고, “종 다양성 훼손의 주범은 (슈퍼산호가 아니라) 기후변화 그 자체”라고도 했다. 반 오펜은 “조력진화는 세계가 기후변화를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2013년 전까지 게이츠는 그리 알려진 학자가 아니었고, 교수도 아니었다. 그는 여성 연구원이었고, 동성애자였다. 그가 HIMB 소장이 되고 국제산호학회 회장이 된 것은 산호(학계)의 처지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림 4연구원들이 해저에 이식한 슈퍼산호들의 적응 상태를 살펴보는 모습이다. HIMB측은 슈퍼산호프로젝트는 "이제 이륙단계"라고 평가했다. paulallen.com

슈퍼산호 연구는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됐다. 강한 종자를 찾아 반복 교배하며 더 강한 종자를 확보하는 연구, 내성 유전자가 2대- 3대로 유전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 유전되게 할지 방법을 찾는 연구, 기존 산호들이 고온에 강한 조류를 공생 파트너로 교체하게 하는 연구였다. 물론 성과도 있다. 그의 박사후과정 연구원 홀리 푸트남(Hollie Putnam) 팀은 특정 온도와 산도에 반복 노출되며 백화-회복의 과정을 버틴 산호의 2세대가 같은 환경에서 부모세대보다 더 강한 면모를 보였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측은 “우리 연구는 이제 가속을 끝내고 막 이륙하는 단계”라고 자평했다.(WP, 위 기사).

지난 5월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게이츠는, 4년 사귄 연인인 화가 겸 디자이너 로빈 버턴 게이츠(Robin Burton-Gates)와 지난 9월 28일 호놀룰루 법원에서 결혼했다. 둘은 내년 4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버턴 게이츠에 따르면 남편 루스 게이츠는 매일 주먹과 손가락 끝으로 푸시업을 하고 “샌드백을 치면 마치 총 소리가 날 정도”(#14)로 강한 체력을 가진 이였다. 그는 연구소 인근에 ‘코코넛 아일랜드 가라데 도장’을 설립한 가라데 유단자(3단)였다.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 특히 레즈비언 과학자로서의 경험과 생각 등을 그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일전에 소개한 트랜스젠더 신경과학자 벤 베어리스(Ben Barres)와 달리 그에겐 감당해야 할 숙제가 많고 또 다급했다. 그리고 그의 활력만큼 종양세포도 활기찼다.

오리건주립대 버지니아 와이스(Virginia Weis) 교수는 “게이츠는 항상 교란자(disruptor)였다”고 말했다. “그의 실천지향적 태도 때문에, 또 전통적 의미의 여성성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과학자였기 때문에 게이츠는 늘 반발에 직면하곤 했다.” 로드아일랜드 교수가 된 홀리 푸트넘은 게이츠를 늘 자신보다 연구 목표를 앞세운 ‘우상 파괴자’라 평했다. “한 영역의 선두주자로선 무척 드물게, 그는 늘 (자신이 아닌) 산호와 인간, 과학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원하지 않았다.” 베스 렌즈(Beth Lenz)라는 게이츠의 제자는 그가 산호학회 회장이 된 뒤 백인 남성 위주의 조직 구성을 적극적으로 다양화했다고 말했고, 트렌스젠더인 제자 셰일 마츠다(Shayle Matsyda)는 “그는 나의 참 모습을 거리낌없이 표출할 수 있게 도운 스승”이라고 기억했다.(theatlantic.com)

그는 무척 잘 웃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의 웃음은 상대방조차 웃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푸지고 호탕했다.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대 산호학자 트레이시 에인스워스(Tracy Ainsworth)의 ‘믿기 힘든’ 증언에 따르면, 게이츠가 그레이트베리어리프의 헤론아일랜드 산호초에서 처음 스노클링을 할 땐 “물 속에서 하도 크게 웃어 보트 운전자들까지 그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인들의 그 웃음을 희망과 자신감의 부적처럼 여겼다. 버턴 게이츠는 “우리는 그가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웃었다”고 말했다. 그의 웃음소리는 2017년 에미상과 피바디상 수상작인 제프 올로우스키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산호를 찾아서 Chasing Coral’에서 들을 수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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