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는요 무슨, 이거 받아보세요. 아직도 먹통이에요.”
추어탕전문 ‘옛날남원’ 사장 임점례(62)씨는 대뜸 수화기를 건넸다. 마지막 손님이 나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임씨의 목소리가 그 틈을 비집었다. “전화 예약을 못 받으니까 저녁 장사는 아예 공치고 있다오. 좀 보소, 스무 명이 꽉 차는 가게인데.” 오후 1시 점심 무렵 식당 안은 덩그렇다.
아구찜식당도, 유리가게도, 슈퍼도 수화기부터 들어 보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는 듯. “복구 됐죠”라고 묻는 기자만 무안했다. 아구찜 사장 최영락(76)씨는 “월말이고 더구나 연말이라 장사가 더 잘 돼야 하는데 평소 매출의 30%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 일대 손님이 다 끊긴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낮 12시30분부터 두 시간 남짓 둘러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현장 인근의 서울 지하철2호선 충정로역 일대 상가 분위기를 딱 요약한 말이다.
KT 통신구 화재 6일째로 접어든 29일 KT는 복구비율 99%(무선 98%, 인터넷 99%, 유선 99%)를 강조했다. 100곳 중 딱 1곳만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찾아간 화재 현장 인근 상가 10여 개 중 유선전화가 복구된 곳은 0이었다. 그나마 가게 유선전화를 휴대폰으로 ‘착신전환’ 되도록 연결한 곳도 절반에 불과했다. 화재 현장 인근 상인들이 등잔 밑이 어두운 격으로 여전히 통신 장애를 겪는 이유는 뭘까.
복구 집계에 구리(銅)케이블을 빼서다. KT가 발표한 수치는 광케이블 복구만 추려냈다는 얘기다. 구리케이블 복구비율은 이날 현재 16% 수준이다. 구리케이블은 굵고 무거워서 지하 통신구에서 지상 맨홀로 빼내는 게 불가능했던 탓에 통신구 진입이 어려웠던 6일간 제대로 복구를 할 수 없었다. 주요 피해 지역인 서대문 마포 중구 일대 구리케이블 이용자는 약 1만명, 이 중 9,000명 가량이 온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대 상인 대부분은 1990년대 말 광케이블로 대거 교체가 이뤄질 때 요금 인상 등을 이유로 구리케이블을 고집했다고 한다.
게다가 임시방편은 먹히지 않고 있다. KT가 27일부터 무선 카드 결제가 가능한 임시단말장치 1,500대 가량을 일대에 설치해줬는데도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 25~27일 나흘간 ‘결제 불가’ 고초를 겪고 발길을 돌린 손님들이 노파심에 아예 방문을 끊은 것 같다고 일대 상인들은 풀이한다. 화재 초반 ‘카드 결제 불가’라는 안내문을 내붙였던 상인들은 이제 ‘카드 결제 가능’이라는 안내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물적 피해도 피해지만, 마음도 단단히 상했다. 전화번호 100을 누르면 무선 결제 단말장치 설치, 착신전환 서비스, 광케이블 교체 등을 제공하겠다고 KT가 밝혔지만, 상인들은 “피해자가 직접 해결책을 찾는 격”이라고 불평했다. KT 아현지사에서 300m 떨어진 제미니슈퍼 사장 성영환(73)씨는 “불이 나는 걸 코앞에서 봤는데, KT 사람들이 가게 한 번 안 찾아왔다”며 “나 같은 노인네는 어디에 도움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더 있냐”고 씁쓸해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27~28일 이틀간 전화와 메일을 통해, 29일 충정로역에 설치한 천막을 통해 피해 신고를 모았다. 연합회 관계자는 “전화와 메일을 통해 16건, 현장에서 40여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라며 “30일 KT 상대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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