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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와 금 모으기 운동의 ‘조금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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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와 금 모으기 운동의 ‘조금 다른’ 이야기

입력
2018.11.27 18:32
수정
2018.11.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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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변변한 금광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무려 225톤, 21억7,0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이 쏟아진 것이죠. 연말이라 훈훈한 내용을 기대하셨다면, 그 건 아닙니다.

정부와 은행, 대기업이 친 사고였지만 국민들이 살벌한 뒷감당을 해야 했던 기묘한 기적. 오늘날까지 유구하게 이어지고 있는 헬조선 연대기의 시작. 그 중심에는 바로 이 황금빛 기적,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우리 기업들은 기술력도 자본도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외국에서 빌려온 달러로 원자재와 설비를 사고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로 값이 싼 제품을 생산, 수출해 돈을 버는 방식이었죠. 한동안은 경기 호황으로 비싼 달러 빚을 얻어 만든 싼 제품만 잔뜩 팔아도 남는 장사였습니다. 은행은 기업의 빚이 얼마가 됐건 돈을 빌려주는 데 거리낌이 없었죠. 자기 자본보다 부채가 10배나 많은 기업도 정부의 지원을 굳게 믿던 터라 별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기가 주춤하고 싸구려 제품에 대한 수요도 줄면서 곧바로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입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벌었던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죠. 동아시아 국가의 기업들이 잇따라 이상 징후를 보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황급히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1996년에는 수출 사정이 크게 나빠지면서 외채 역시 1,570억 달러에서 1,74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외환위기 이전에 심각한 경고 등이 켜졌던 겁니다. 그런데 정부는 갖고 있던 달러를 시장에 대방출하면서 달러의 가치를 낮추고 원화의 가치를 높게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이한 정책을 펼칩니다. 값싼 원화로 생산해 수출하고, 비싼 달러로 물건 값을 받아 이윤을 창출했던 기업들에겐 악재였죠. 1996년 330억 달러 수준이었던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1997년 200억 달러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위기는 점점 가속도가 붙습니다.

오리지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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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보인 이상행보의 원인 중 하나는 ‘선진국 병’ 때문이었습니다. 국민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경축하면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게 시작이었죠. 그런데 수출 실적이 나빠지고, 경제 상황 악화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자 국민 소득 ‘1만 달러’가 위협받게 됩니다. 결국 OECD 가입국의 체면을 지키려 달러를 방출, 억지로 원화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으려던 게 외환위기의 한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은행이라도 달러를 넉넉히 보유하고 있었으면 위기가 쉽게 오진 않았을 텐데, 기업들에 마구잡이로 퍼 주고 보니 정작 급할 때 쓸 달러는 없었습니다.

결국 기술력도 자본도 없었던 기업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는데도 은행은 말리지 않았고 정부는 OECD 라는 외모에 치장하느라 국가 경제의 파산을 부채질한 셈입니다.


그렇게 생긴 빚을 갚기 위해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금을 모았던 것이 금 모으기 운동이었습니다. 1997년 말, 새마을부녀회라는 단체의 ‘가락지 모으기 운동’이 그 시초가 됩니다. 국민들에게 금을 모으는 것이 생각보다 외화 벌이에 효과가 크다는 걸 알아챈 정부는 1998년 1월 전국적인 ‘금 모으기 운동’을 주도합니다. 정부와 기업, 언론이 앞장서고 국민들은 호응했습니다.

‘국가의 위기는 모두의 책임이며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한다.’

모두가 위기의 책임자라고 인식하게 만든 이 ‘가혹한 주문’ 앞에 349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금을 내놨습니다. 외화가 유출되니 해외여행 같은 ‘사치’ ‘과소비’는 당연히 지탄받을 일로 여겨졌고 수입품 사용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당시 개봉했던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을 관람 거부해야 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왔습니다.


이런 국민들의 희생 덕분이었을까요. 2001년 8월,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돈을 약속한 날짜보다 빨리 갚게 됩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IMF 체제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고 자축했습니다. 지금도 교과서나 당시를 회상하는 뉴스에는 그 때의 희생을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성과 애국심이 빚은 ‘전설 같은 업적’으로 칭송합니다.

하지만, 황금빛 이벤트 뒤에 숨어있던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외환 위기를 전혀 관리하지 못했던 ‘정부’, 겉모습만 키우고 속은 부실했던 ‘기업’, 이자 수익만 생각하고 대책 없이 돈만 빌려준 ‘은행’. 외환위기의 진짜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과연 어떤 책임을 졌을까요.


외환위기 당시 국가 최고 권력자였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 위기의 책임을 관료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리고 관료들, 경제 사령탑이었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외환위기 환란을 초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일상적인 정책 판단을 처벌하면 우리나라 경제정책 전부가 문제 된다”는 게 무죄 선고의 이유였습니다.


기업은 어땠을까요? 금 모으기가 진행되는 동안 굴지의 대기업들이 금을 수출입 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저질러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이 2008년에서야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납니다. 당시 무역 상사를 운영하던 대기업들이 금 도매업체들과 짜고 면제 제도를 악용해 세금을 포탈한 것입니다. 이 기업들은 국민들이 모은 금으로 수출 실적을 올려 IMF 구조조정 칼날을 피해 간 것은 물론 뒷돈까지 챙긴 것이죠. 그러나 탈세에 관여한 대기업과 은행 관계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금을 팔면서 제 값을 받았는지도 많은 뒷말을 남겼습니다. 결국 책임이 있던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그 책임은 직장에서 잘리고 아이의 돌반지를 내놔야 했던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죠.


현실은 ‘잔혹 동화’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준 대가로 IMF가 요구한 구조조정은 많은 것을 뒤바꿔 놓습니다. 국고 지원을 해서라도 살려야 할 기업들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헐값에 해외 매각 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수출길이 막힌 대기업은 물론 납품하던 중소기업들도 연쇄부도가 나면서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됩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997년 3분기 47만명 수준이었던 실업자 수가 1999년 1분기 약 175만명으로 증가합니다.

1998년 1개월여 동안 도산한 기업 숫자만 3,300개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파견법이 도입되는 등 얼어붙기 시작한 노동 환경은 오늘날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의 모태가 됐습니다.

경제난으로 기름값을 댈 수 없어 몰던 차를 팔아 치우는 건 비극 축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자식을 키울 수 없어 보육원에 맡겼다는 이야기들이 매일 뉴스에 나옵니다. 일가족이 연탄불을 피우고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도 하루가 멀다 하고 나왔죠.

‘자살 공화국’의 오명도 이 때 시작됩니다. 경찰청이 당시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1997년 한해 전체 자살자의 숫자는 9,000여명 수준이었지만 1년 후에는 1만2,000명을 넘어섭니다. 빈곤과 사업실패로 인한 자살 급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2018년, 각종 경제지표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체감 경기는 여전히 IMF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말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습니다.


‘헬조선 연대기’가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 정치권에서는 ‘제2의 IMF 위기설’이 흘러나옵니다. 21년 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경고음이 이제는 들리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국민들에게 남아 있는 21년 전의 트라우마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용하고 싶은 걸까요.

어느 쪽이 됐든 잔인했던 과거의 경험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를 테면, 외환위기의 상처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답은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들이죠.

이상 [오리지너]였습니다.

조원일 기자ㆍ김창선 PDㆍ박기백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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