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귀족 노조가 장악한 한국 노동계
고임금 정규직 이익만 대변 신뢰 잃어
사회적 위상 걸맞은 책임 의식 느껴야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22일 출범한다. 기존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를 대체할 사회적 대화 기구다. 양대 노총과 사용자ㆍ정부 대표로 구성된 노사정위와 달리 비정규직과 여성, 청년, 소상공인 대표도 참여한다. 노사관계 개선 등 노동 현안은 물론 국민연금 개혁, 사회안전망 개선 등 폭넓은 과제를 다룬다. 국회를 통과한 경사노위법은 5개월 전 공표됐지만 민주노총이 참여를 거부해 출범이 늦춰졌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참여도 19년간 거부해 왔다.
경사노위 위원장은 민주노총 출범의 산파 역할을 해 ‘노동계 대부’로 불리는 문성현(66)씨. 그는 7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자기 분신이나 다름없는 민주노총을 향해 이렇게 충고했다. “30여년간 나름 정의라고 여기며 노동운동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정의가 아닌 게 있다. 거기에 민주노총도 책임이 있다.” 발끈한 민주노총은 문 위원장에게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언사”라며 “자성하고 자중하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친노동 성향인 정부ㆍ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우차 노조 출신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이다. 양보할 줄 모른다”고 걱정했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민주노총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임 실장 발언에 대해 “무지하고 오만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총리 등이 민주노총의 21일 총파업 돌입에 우려를 표명한 데 대해서도 “공약조차 이행하지 않는 자신의 책임과 잘못을 가리기 위한 교묘한 물타기 공세”라며 싸잡아 비난했다.
민주노총의 날 선 공세에 동의하는 국민은 많지 않은 듯하다. 민주노총은 여야정이 합의한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해 “노동자의 건강이 위협받고 노동조건이 악화한다”며 반대한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도 공약대로 3년 안에 이행하라고 요구 중이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중하층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에겐 와 닿지 않는 주장이다. 청년실업 증가는 중년세대 과잉 고용과, 비정규직 양산은 대기업ㆍ공공부문 정규직 노조의 공고한 기득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규직의 고임금과 고용안정은 비정규직의 저임금과 고용조건 악화로 전가된다.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의혹에는 입 닫은 채 조합원 이익만 앞세워 총파업을 강행하는 건 집단이기주의와 다름없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노동계의 절대 강자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조 가입률은 불과 10%. 전체 임금근로자의 4%인 80만명을 약간 웃도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이 민주노총의 주축이다. 임금 근로자 최상층으로 구성된 4% 귀족노조가 노동계를 장악해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혈안이라고 한다면 과언인가.
대한민국은 과잉의 위력이 지배하는 사회다. 예컨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은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종교계의 반발에 밀려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인양 공정 인권 등 민주적 가치마저 부정하는 종교계, 자신의 치부는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법조계, 국민의 안전과 편의보다 영리 추구에 혈안인 의료계,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거부하는 거대 정당. 과잉 위력의 대표적 사례다.
대한민국은 노동계, 종교계, 법조계 등 기득권의 벽에 갇혀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있다. 힘 있는 소수가 공론장을 지배하는 과잉 위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민주노총은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을 무기로 촛불혁명을 주도했다. 민주화에 기여한 공도 작지 않다. 하지만 노동정책에 있어선 이익집단 수준이다. 민주노총이 진보를 자임한다면 비정규직 등 중간 이하 계층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 차별 없는 노동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전체주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민주주의 권력은 설득에서 나오는 법이다. 자기 이익만 대변하는 노동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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