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금융지주사였던 우리금융이 4년 만에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새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일단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겸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금융지주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향후 계열사 확장을 통한 비은행 부문 강화와 정부 잔여지분 매각을 통한 완전한 민영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잖다.
금융위원회는 7일 정례회의를 열고 우리은행의 금융지주사 전환 인가 안건을 승인했다. 우리은행이 인가를 신청한 지 111일만이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지주는 앞으로 우리은행 등 6개 자회사와 16개 손자회사, 1개 증손회사 등을 지배하게 된다. 연내 지주사 설립이 완료되면 현재 4강(KB 신한 하나 NH농협)인 국내 금융지주 구도도 5강으로 재편된다.
우리은행의 지배구조는 그간 부침이 많았다. 당초 우리금융지주는 외환 위기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총 13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빛은행(상업+한일은행)과 평화은행 등을 묶어 지난 2001년 3월 예보 지분 100%로 설립됐다. 이후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민영화를 추진 과정에서 증권, 보험,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 계열사를 매각하며 몸집이 쪼그라들었다. 결국 2014년 우리은행으로 흡수ㆍ합병되며 사라졌다. 2016년 말 민영화에 성공하면서 지주사 재전환 논의가 시작됐지만 채용비리 등 악재가 겹치면서 큰 진전이 없었다. 다시 지주사 전환에 속도가 붙은 것은 지난해 11월 손 행장이 취임한 이후다.
◇손행장 회장 겸임 유력
우리은행 이사회는 8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지주사 전환 후속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겸직 허용 여부 등 지배구조 문제도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를 대변하는 예금보험공사(지분 18.43%)가 추천한 비상임 이사도 참석해 금융 당국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당국은 신설되는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한시적으로 겸직하게 한 뒤 이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이 지주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7%로 절대적인데다 조직 안정 차원에서도 당장은 겸직 체제가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면 권한이 비대해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한 대학 교수는 “이사회가 과점주주의 독립 추천을 받은 이사들로 구성돼 있는 만큼 최고경영자가 지주 회장과 행장을 겸임하더라도 전횡은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지주사는 아직 설립되지 않은 회사여서 관련 법에 따라 대표이사를 선정하기 위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꾸릴 필요는 없다. 다만 일부 사외이사들은 회장 선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임추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8일 이사진이 모여 임추위를 꾸릴 지 여부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 후보로는 손 행장을 포함해 10여명이 거론되고 있다. 지주 회장ㆍ행장 겸임구도로 간다면 손 행장이 유리하다. 지주의 핵심인 우리은행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노조의 지지도 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을 승인 받는 주주총회를 연내(12월말) 개최한다는 계획에 따라 주총 소집을 위한 23일 이사회 전까진 회장 후보를 선출할 방침이다.
◇남은 과제는
우리금융이 ‘무늬만 지주사’를 벗어나기 위해선 민영화 과정에서 매각했던 증권, 보험,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등 계열사를 확충해야 한다. 우리은행이 금융권 인수합병(M&A)의 ‘큰 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주사 전환 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위험가중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급락하는 점은 복병이다.
현행 감독규정상 신설 금융지주 회사의 경우 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내부등급법’이 아닌 ‘표준등급법’을 사용해야 한다. 표준등급법을 쓰면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아져 자기자본 비율이 하락한다. 우리은행도 현 내부등급법이 아닌 표준등급법으로 바꿔 적용하면 자기자본 비율이 9월 말 기준 15.8%에서 국내 은행 하위 수준인 11% 안팎으로 떨어진다. 그 만큼 M&A에 쓸 실탄이 부족하다는 뜻이어서 공격적으로 계열사를 늘려야 하는 우리금융 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낮은 자기자본비율로 인해 일정 규모 이상의 M&A는 상당히 지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장기적으로는 예보 지분을 털어내고 ‘완전 민영화’를 달성하는 것도 숙제다. 그간 우리은행을 둘러싼 잇따른 관치 논란은 정부의 잔여지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 완전한 종합금융지주로 독립하기 위해선 완전 민영화가 선결돼야 한다.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도 과제로 꼽힌다. 우리은행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2배로, 신한금융(0.62)이나 KB금융(0.57) 등 다른 지주사보다 낮다. PBR는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낮을수록 저평가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날 우리은행의 주가도 0.63% 하락한 1만5,750원으로 마감됐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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