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문학동네)를 낸 작가 이슬아(왼쪽)와 이슬아 인턴기자. 엄마와 딸, 그리고 세상에 대해 유쾌한 수다를 떨었다. 고영권기자

“이 그림체로는 아주 큰 슬픔을 얘기 못 하겠더라고요. 슬픈 얼굴이 묘사가 안돼요.”

“그럼 결국, 그림을 못 그려서 그런 거네요.”

“네 맞아요. (일동 폭소) 제 그림이 뛰어났다면 더 깊은 작품이 됐을 거에요. 하하하.”

지난 2일 한국일보 편집국에 마주 앉은 작가 이슬아는 유쾌하게 받아 넘겼다. ‘누드 모델’이란 이색 경력에, 구독료를 받고 매일 에세이를 한편씩 배달해주는 ‘일간 이슬아’ 발행이란 깜짝 시도를 선보였던 작가다. 이번엔 그림 에세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문학동네)를 들고 나타났다.

쿨한 농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징징대거나 한탄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담백한 책이다. 돈 없어 대학을 포기하게 되자 소주 사들고 3일간 다락방에서 틀어박혀 있다 나오자마자 비빔밥 한 그릇 비벼 먹고는 ‘진양상회 미스 장’이 된, 34-24-36인치 몸매의 엄마 복희에 대한 얘기다. 그 딸이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돈 많이 준다는 이유로 누드 모델 일을 하겠다 했을 때 반대는커녕 자신의 옷 가게에서 가장 비싼 코트를 골라와 “알몸이 되기 전에 네가 걸치고 있는 옷이 최대한 고급스러웠으면 해”라는 말을 건넨 엄마에 대한 얘기다.

애틋한 모녀 이야기를 넘어 이 책이 범상치 않은 지점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 말마따나 이 책은 “돈벌이의 역사” 혹은 “일을 완성하는 맷집”에 대한 책이다. 반응은 뜨겁다. 출간 하루 만에 초판 3,000부가 다 팔렸다. 이름과 나이가 같은 이슬아 인턴기자와 마주했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나. 나도 끙끙대며 갚아가고 있다.

“기쁘게도 다 갚았다. ‘일간 이슬아’ 덕분에 처음으로 생활비 대부분을 글쓰기로 벌고 있다. 체력이 약한 편이라 다른 일에다 시간과 체력을 소진하지 않아서 좋다.”

-살림살이가 좀 나아진 편이다.

“장단점이 있다. 알려진 만큼 쓴 소리도 많이 듣는다. 아무래도 여자 작가니까 얼굴이나 몸에 대한 평가도 있다. 그런 건 신경 안 쓰려하는 편이다. 건강한 마음을 위해 달리기나 물구나무 서기 같은 운동을 한다.”

-상처를 잘 받는 편인가.

“엄마가 늘 하는 말은 가장 건강한 마음은 상처를 잘 받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상처를 안 받는 게 아니라 슬프면 울고, 찔리면 아프다고 하는 것, 그리고는 금방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 모녀는 사실 성실한 노동자다. 사실 별 수 없기도 하다. 돈 안 벌고 살 순 없으니.”

-책엔 어린 시절 기억이 생생하다.

“반복해서 여러 버전으로 써봐서 그런 것 같다. 시간적으로 먼 기억이라 더 객관화가 된다. 나를 덜 연민하면서 쓸 수 있으니까. 너무 가까운 기억들은 아무래도 나 스스로 좀 봐주면서 쓰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자전적이라기보다 픽션이라 생각한다. 기억은 계속 편집되는 거니까.”

-엄마는 객관화가 어려운 존재 아닌가.

“사실 첫 책을 엄마에 대한 책으로 내긴 싫었다. 남들은 다루지 않은, 뭔가 쿨하고 멋진 걸 쓰고 싶었다. 그런데 편집자님께 설득당해서. 하하.”

-엄마는 책을 보고 뭐라 하시는지.

“엄마는 이 책의 복희와 자신을 완전히 분리시킨다. 자기 얘기가 아니라 딸의 픽션이라 생각한다. 스스로는 더 튼튼하고 강한 캐릭터라 생각한다. 딱 하나, 청바지 파는 아저씨가 엄마에게 엄청 대시하는 장면은 너무 민망하다고 무조건 빼라고 하시더라.”

"이 책 꼭 잘돼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는 이슬아 작가. 전업작가를 꿈꾼다. 고영권 기자

-책 제목은 어떻게 정했나.

“엄마와 내가 닮은 얼굴은 아닌데, 슬플 때 짓는 표정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슬픔을 제일 먼저 알아차려주는, 눈물샘이 연결된 사이라는, 어떤 애틋한 비유로 읽혔으면 좋겠다. 또 내가 엄마 나이쯤 되면 엄마와 비슷하게 울거나 웃지 않을까.”

-당당하고 씩씩한 편인가.

“그런 말 들을 때 가장 초조해진다. 별로 안 어울리는 말 같아서. 다만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스타일이다. 생각에 짓눌리지 않는다. 해야 한다 싶으면 몸이 빨리 움직인다. 큰 재능이 없으니 뭐든 부지런히 한다. 이 책도 뭐가 될 지 몰랐는데, 이렇게 묶으니 한 권이 된다. 성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을 보면 본인의 여건에 대한 아쉬움, 분노 같은 게 없다. 엄마가 3일만에 다락방에서 나온 이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너무 좋은 질문이다. 사실 모두 힘들고, 슬프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 가족은 누군가 농담을 하고 다 함께 웃는다. 어렸을 적에 ‘순풍 산부인과’를 많이 봐서 그랬을 수 있다. (웃음) 시트콤은 늘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진다. 아주 많은 갈등이 있었다가 지나가고, 있었다가 지나간다. 그런 만회의 과정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적절히 생략해주는 먹먹함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 인생에 뭔가 다른 게 더 있다는 느낌, 그 부분은 글쓰기로 더 잘 풀어내고 싶다.”

-누드모델,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해야 할 상황이었다. 거기다 콤플렉스도 극복해보고 싶었다. 여자들은 외모에 대한 평가를 계속 받으니까. 내 몸을 사랑하게 됐어요, 그런 얘긴 아니다. 해보니 그냥 몸에 대해 별 생각이 없어졌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 몸을 30분 동안 보고 그리는 걸 수백번하면서 내 몸에 대한 온갖 그림들을 다 보니, 몸은 그냥 어떤 형태, 몸뚱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연애나 성 문제에 대한 엄마와의 대화가 거리낌 없다. 실제 그런가.

“책이 ‘19금’으로 랩핑되면 안되니까 수위를 낮춘 거다. 하하.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그리 됐다. 둘 다 거리낌이 없고, 말을 돌려 안 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부모님이 다 ‘문청’이었다. 작가가 된 건 결국 그 영향인가.

“아빠, 엄마가 젊은 시절 소설 좋아하고 문학도를 꿈꿨다는 건 나중에 커서야 알았다. 그걸 알고서는 글 좀 써보라고 하는데 안 하려 든다. 엄청 근사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좀 아깝긴 하다. 그래도 뭐 이젠, 내가 쓰면 되니까.”

-준비하는 소설이 있나.

“쓰고 있다. 주로 주변의 블루칼라들에 대한 얘기다. 노동이 부각된다기보다는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연애나 돈 이야기, 다시 일로 돌아간 이야기 같은 걸 쓰고 싶다. ‘일간 이슬아’에다 연재하고 피드백을 받으면 어떨까 고민 중이다. 쓰게 되면 말씀 드리겠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이슬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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