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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한 과학기지에서 동료에게 흉기를 휘둘러 재판에 넘겨진 러시아 엔지니어의 범행 동기가 ‘스포일러’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동료가 자신이 읽는 추리소설 속 범인 정체를 언급하자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평소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았고, 사건 당일 술에 취한 피해자가 용의자를 모욕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MK러시아 등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 10월 9일(이하 현지시각) 낮 남극 서북쪽 킹조지섬에 자리한 러시아의 벨링스하우젠 연구기지에서 발생했다. 이날 엔지니어 세르게이 사비츠키(55)는 용접공인 동료 올레그 벨로그조프(52)와 식당에서 말다툼을 하다 흉기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 중상을 입은 올레그는 다른 동료들의 신고로 칠레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경찰 조사와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사비츠키의 범행은 벨로그조프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 데서 비롯됐다. 당시 사비츠키는 프랑스 소설가 브리지트 오베르의 추리소설 ‘마르쉐 박사의 네 아들’을 읽고 있었는데, 벨로그조프가 결말을 폭로한 것도 모자라 범인 정체까지 언급한 것이다. 별다른 즐길 거리가 없는 남극에서 독서를 유일한 낙으로 삼아왔던 사비츠키는 벨로그조프의 황당한 행동에 화를 참지 못 했고, 결국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는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는 지난달 30일 MK러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늘 두 사람 사이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며 “벨로그조프는 다소 무례한 편이다. (이 때문에) 사비츠키는 벨로그조프와 일하는 걸 불편해했다. 무슨 일이 터질까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니콜라예비치는 “벨로그조프는 친구가 되면 의외로 차분한 편이었지만, 사비츠키는 다소 충동적이었다”며 “그들 사이엔 항상 불꽃이 튀고 있었다. 두 사람을 친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은 술에 취한 벨로그조프가 사비츠키를 모욕한 게 범행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벨로그조프가 술에 취한 채 당구대에 올라가 사비츠키를 욕보이는 춤을 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니콜라예비치는 “내가 아는 한 벨로그조프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사비츠키가 마셨을진 모르나, 그래도 도수가 낮은 맥주 정도였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술은 주말과 같은 휴일에만 허용된다. 범행 당일은 휴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비츠키는 지난 10월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으로 추방됐다. 러시아 검찰은 그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오는 12월까지 자택에 구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사비츠키는 현지 언론에 “내가 한 일을 후회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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