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김정식 ‘세상에 없는 여행’ 대표 

※ 인터뷰에서 ‘아니요’를 찾아보세요. 크고 작은 ‘아니요’로 자신의 오늘을 바꾼 사람들을 만나보는 한국일보의 인터뷰 연재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정식 대표. 11년 간 대안학교 교사였던 그는 여행사 운영도 딱 10년만 할 거라고 했다. “사회 생활 길면 40년 하는데 한 가지 일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10년에 하나씩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려고요. 30대~60대까지 4번의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요.” 남보라 기자

이야기는 2013년 인도 북부 라다크의 한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에서 시작됐다. 침대 1층에는 베트남에서 온 여행사 대표가, 2층에는 한국에서 온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 묵었다. 서른 일곱, 나이까지 같았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8인실에 함께 머무르며 가까워졌고, 한국 선생님은 베트남에서는 ‘공정 여행’이 널리 퍼져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공정 여행이란 여행지의 환경과 현지인의 삶까지 고려한 착한 여행. 한국에선 알려진 지 얼마 안 된데다 무거운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한 번 해보자” 마음 먹었다.

선생님은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휴직하고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라다크에서 만난 여행사 대표의 도움으로 1년간 베트남에서 지내며 시장 조사를 한 후 학교에 사표를 냈다. “30년 간 교직에 있으면서 교사가 창업해서 성공한 걸 본적이 없다”는 교장 선생님의 만류를 뒤로한 채, 여행사를 차렸다.

3년이 흘렀다. 최근 탑항공 등 여행사들이 잇따라 폐업하고 있지만 이 여행사는 지난해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입사원 공채 경쟁률은 100대 1이 넘는다. 대체 어떤 곳일까. 지난달 25일 그 선생님, 김정식(42) ‘세상에 없는 여행’ 대표를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공정여행 십계명? 저도 부담스러워요” 

- ‘세상에 없는 여행’은 어떤 여행사인가요.

“공정여행, 착한 여행을 지향하는 여행사에요. 하지만 회사 홈페이지에는 ‘공정 여행’이라는 말이 없어요.”

- 왜 그런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먼저, 식당은 맛있어야 하고 여행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착한 식당이니까 먹어달라고 하는 것이나 공정여행이니까 이용해 달라는 건 구걸하는 것 같아서 싫어요. 재밌게 여행 하고 보니 ‘공정여행이었구나’ 생각하면 좋겠어요. 두 번째로는, 사실 공정여행이 특별한 게 아니에요. 기존 여행산업이 문제가 많으니까 상식적인 수준의 여행이 공정 여행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 공정여행이 정확히 뭔가요.

“어떤 게 공정여행이라고 정의된 건 아니에요. 자유여행도 공정여행일 수 있어요. 환경을 덜 해치고 동물이 아프지 않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면서 여행 비용 중 상당수가 현지인에게 돌아가 선순환될 수 있다면 공정여행이라고 생각해요.”

- 마음을 단단히 먹고 떠나야 될 것 같아요.

“인터넷에 나오는 ‘공정여행 십계명’ 이런 것들은 저도 부담스러워요.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낯선 시공간에서 여유를 찾으려는 건데, 그런 원칙을 지키며 여행을 한다는 건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힘들어요.”

이런 무거움을 떨치기 위해 그는 ‘느슨함’을 택했다. 3박 4일 내내 봉사활동만 했던 기존 공정여행 상품과 달리 한나절이든 하루든 원하는 만큼만 좋은 활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여행을 기획했다. 또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볼런 투어’(volunteer와 tour의 합성어) 등의 공정여행뿐 아니라 자유여행 등 상품을 다양화했다. 패키지 상품에서는 여행객을 괴롭히는 3대 악(惡), 쇼핑ㆍ옵션ㆍ팁을 없앴다. 여행객들의 호응이 높았다. 2015년 베트남 상품만 판매하는 ‘베트남 스토리’로 시작했던 사업은 라오스, 미국, 일본 상품으로 확대됐고, 여행사 이름도 여러 국가를 포괄할 수 있는 ‘세상에 없는 여행’으로 바꿨다.

- 공정여행은 비쌀 것 같아요.

“일반 상품보다 딱 2배 비싸요. 저희는 베트남 다낭 3박 5일 기준 1인당 80만~90만원이에요. 항공권 40만원에 호텔, 식사, 차량, 가이드, 운전기사 인건비 등을 원가로 구성하고 수익을 포함한 가격이에요. 다른 여행사들은 원가 70만원 상품을 40만~50만원에 팔아요.“

- 원가보다 싼 여행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국내 여행사는 고객만 모으고, 현지 여행사가 한국 여행사에 돈을 내고 손님을 받아요. 마이너스 수익으로 시작하는 거죠. 그걸 메우기 위해서 여행객들에게 바가지 씌운 옵션을 팔고, 현지인들은 사지도 않는 곳에서 쇼핑을 하게해서 수익을 남겨요. 결국 액면상 2배 비싸지만 그게 적정판매가라고 생각해요.”

- 그래도 저가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아요.

“창업 전 비즈니스 가능성을 분석해보니 합리적인 비용이라면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기려는 수요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상품을 파는 여행사는 거의 없었고요. 비용을 있는 그대로 책정하고 뒤통수 치지 않는 여행이라면 어떨까 했어요. 다행히 이용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서 3년만에 빠르게 자리잡은 것 같아요.”

세상에 없는 여행은 지난해 출국자 4만명, 연매출 70억원을 기록했다. 개인이 차린 여행사가 단기간에 이렇게 급성장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모든 패키지 상품이 일행들만을 위한 단독 상품이라 가족끼리만 편하게 여행하려는 사람들, 의미 있는 단체여행을 원하는 학교나 회사가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수익의 10%를 사회 공헌에 사용하는 이 여행사를 통해 좋은 일에 동참하려고 일부러 이 회사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세상에 없는 여행은 베트남 전쟁 피해마을, 소수 민족 마을 등에 컴퓨터, 도서 등을 지원해왔고, 올해부터는 베트남 결혼 이주민 자녀들에게도 기부한다.

세상에 없는 여행은 올해 3월 자폐인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사회적기업 오티스타의 디자이너들에게 베트남 다낭 예술여행을 후원했다. 디자이너들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기념품들. ‘부탁해 손수건’에는 여행 중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베트남어가 적혀있다. 남보라 기자
 ◇ 이 회사가 수익을 나누는 법 

- 수익 10% 기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개념 있는, 건강한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는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세상도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에요. 또 매년 직원들에게 수익의 1%씩 지급해요. 회사는 창업자가 설립했지만 만들어가는 것은 동료들이니까요.”

- 직원이 얼마나 되는데요.

“21명이에요. 직원이 40명이 될 때까지는 1%씩 계속 지급하려고요. 수익의 40%는 직원, 10%는 사회 공헌에 쓰면 수익의 50%를 지출하게 되니까, 그땐 지분 조정을 할 생각이에요. 오너나 주주 등 누구도 돈을 많이 빼가지 않으면 회사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대표님도 급여가 많지 않다는 얘긴가요.

“저는 회사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사람이에요. 가장 많이 받는 직원보다 1,000원 덜 받아요. 상징적으로요. 회사 경영 인사 등 모든 것을 직원들과 같이 하고 있어요. 그래야 직원들이 '우리 회사'라는 느낌을 가지니까요.”

- 가장 많이 받는 분은 누군가요.

“대학 졸업 후 처음부터 같이 일 시작한 입사 4년차, 28살 직원이에요. 대리에요.”

- 가족들 불만은 없나요.

“교사 때보다 급여가 줄어들긴 했어요. 다행히 아내가 직장을 다녀서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아내가 불평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방향을 응원해줘요.”

- 급여 수준이 궁금해지네요.

“서비스업이 전반적으로 박봉인데, 여행업은 더 심해요. 그런 걸 개선하려고 해요. 저희 직원 급여가 여행업계 최상위권이라고 알고 있어요. 또, 주 4.5일 근무를 해요. 화ㆍ수ㆍ목요일 중 하루 오전이나 오후 반차를 쓰도록 해요. 4시간이라도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요. 2020년부터는 주 4일을 시도해 볼 생각이에요.”

- 부러워요.

“저는 49세에 회사를 쿨하게 떠나는 게 목표에요. 직원들한테도 늘 얘기해요. 지금은 제가 100% 주주지만, 떠날 때 이 회사를 소유하지는 않을 거에요. 공익법인에서 운영할지, 어딘가에서 위탁 운영할지 모르겠지만 회사 재산을 그대로 두고, 회사에 관여하거나 돈을 받지도 않을 거에요. 제가 없어도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제공되고 회사가 잘 돌아간다면, 좋은 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 진상 찬스, 재충전 휴가... “당신은 소중해요”라고 말하는 직장 

인터뷰가 끝나고 김 대표가 테이블 위에 있던 귤을 권했다. 직원 어머니가 사오신 거라고 했다. “어머니가 회사에 왜 오시나요” 놀라서 자동으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지인 찬스’를 쓰러 오셨다고 한다. 매월 한번씩, 금요일 점심 시간에 직원의 가족이나 친구 등이 회사 근처에 오면 식사비 5만원과 점심시간 90분을 준단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직원 복지제도였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한 두개가 아니다. 직원들에게 3년 근무마다 30일의 유급 안식 휴가를 주고, 이 기간 회사 상품이 출시된 국가로 여행을 떠나면 항공권도 선물한다. 생일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날’로 정해 휴가를 주고, 금연하면 연차휴가를 3일 더 준다. 비흡연자는 입사 시 연차 휴가를 하루 더 준다. 책값 무한 지원, 회사 차량 상시 사용, 여행 상품 50% 할인…

가장 눈길을 끈 건 ‘진상 찬스’. 욕설이나 ‘갑질’을 하는 막무가내 고객과 전화상담을 할 경우, 직원들에게 전화를 끊을 권리와 함께 1시간 휴식, 1만원의 법인카드 사용권을 준다. 다친 마음을 천천히 보듬고 오라는 배려다.

사실 인터뷰 맨 처음, 회사를 소개해 달라던 질문에 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었다.

“청춘들한테 희망을 줄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 가고 싶은 회사다’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갓 창업한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인 줄 알고 흘려 들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래픽 - 한규민 디자이너
이번 인터뷰의 ‘아니요’는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찾았습니다. 지난 7월 채용 공지에서 '지원 전 읽어볼 사항' 10가지를 제시했는데, 마지막 10번 항목이 "모두가 예스할 때, 아니요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였습니다. 세상에 없는 여행 홈페이지 캡처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김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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