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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때 끌려가 막노동하며 폭행 당해… 소송 함께한 동료 3명은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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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때 끌려가 막노동하며 폭행 당해… 소송 함께한 동료 3명은 숨져

입력
2018.10.30 17:23
수정
2018.10.30 23:5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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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원고 이춘식씨, 77년 기나긴 고통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승소 판결을 받은 후 열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승소 판결을 받은 후 열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너이가(네 명이) 재판 같이 했는데, 다 돌아가시고 혼자 허니께 눈물이 나. 많이 슬프고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이. 죄송합니다.”

3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들 앞에선 이춘식(94)씨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렸다. “돈 많이 준다”는 얘기 듣고 열일곱 나이로 현해탄을 건넌 까까머리 청년은, 이제 하얗게 센 눈썹마저 얼마 남지 않은 백발노인이 됐다.

13년을 기다린 긴긴 소송에서의 승소 소식보다, 소송을 함께하다 하나 둘 세상을 뜬 동료들(고 여운택ㆍ신천수ㆍ김규수씨) 생각이 앞섰다. 이씨는 눈물을 훔치는 듯하더니, 이내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울어버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씨의 기구한 운명은 1941년 시작됐다. 고교 2년생이던 그는 대전시장이 일본에 보내려고 모은 보국대(일제가 조선인 학생ㆍ여성 등을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80명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당시 중고생들은 ‘조선에서보다 좋은 조건에서 일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이와테현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홋카이도산 코크스를 용광로에 퍼 올리는 막노동을 했다. 금의환향의 꿈은 금방 깨졌다. 일은 너무 고되었고, 음식은 늘 부족했다. 제대로 일 하지 않으면 헌병에게 발길질 당하기 일쑤였다. 복부에 상처를 입어 배를 꿰매고 3개월간 입원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모아 둔다던 월급은 구경도 못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그는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다시 제철소를 찾았지만, 그곳은 미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상태였다. 빈손으로 돌아온 고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연이 기구하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여운택씨와 신천수씨는 돈도 벌고 기술도 배울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오사카제철소에서 일했다. 감금 상태에서 제대로 먹지도, 돈을 받지도 못했다.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은 일본 법원의 판결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여씨와 신씨는 1997년 12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신일본제철(2012년 신일철주금으로 변경)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3년 10월 일본최고재판소에서 패소 판결을 확정 받았다.

2005년 시작된 한국 소송에서는 이씨와 김씨가 함께 했다. 7년간 두 번의 기나긴 재판을 거치고 2012년에서야 대법원이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재판을 미루며, 결과를 얻기까지 재판은 6년이나 더 지연됐다. 결국 여씨는 승소를 보지 못한 채 2013년 12월 숨을 거뒀다. 이듬해 10월에는 신씨, 2018년 6월에는 김씨가 사망했다.

승소의 기쁨을 홀로 누리게 된 이씨는 재판을 응원하러 온 이들 앞에서 “나 혼자 왔다”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네 달 전 세상을 떠난 김씨의 부인 최정호(85)씨는 “정부나 법원에서 억울한 저희 사정을 미리 해결해 줬다면, 돌아가시기 전에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진작 해결됐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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