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 하며 골인놀이, 교환일기 쓰며 이어그리기, 아이와 노는 '육아빠' 
김성태씨가 딸 지유와 함께 하는 방법은 같이 운동을 하는 것. 지유를 등에 메고 등산을 하거나 몸에 얹고 턱걸이를 하는 식으로 딸과의 교감을 늘린다. 김성태씨 제공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하민(6)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빠가 남긴 교환일기를 찾는 것이다. 아빠 유길상(39)씨의 늦은 퇴근과 이른 출근으로 주중에는 만나지 못하는 부자의 소통 방식이다. 교환일기를 다 읽고 나면 ‘이어 그리기’를 할 차례다. 아빠가 자유롭게 그어놓은 선 위에 아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을 마저 완성한다. 아들의 상상력은 매번 아빠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오늘 하민이는 아빠가 그린 주황색 선을 큰부리새로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이번엔 하민이가 아빠에게 일기를 쓰고 이어 그리기 미션을 낸다.

“아내가 일주일에 5일은 아빠를 못 보는 아들을 위해 엽서나 영상편지를 남겨서 접점을 만들기를 권했어요. ‘거역’할 수 없어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교환일기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어요.” 하민이는 잠들기 전 엄마에게 “나중에 아빠가 없으면 교환일기로 아빠를 기억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예전엔 (하민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한 줄 알면서도 아빠를 찾으며 울상이었는데 이제는 아빠 대신 교환일기를 찾는다고 해요. 아침에 아빠가 없는 건 똑같지만 일기를 통해 아빠를 느낄 수 있어 ‘부재의 아침’이 ‘기대의 아침’이 됐습니다.”

유길상씨가 출근 전에 남기고 간 주황색 선을 아들 하민이가 큰부리새로 완성시켰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는 교환일기 프로젝트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부자를 연결하는 끈이다. 유길상씨 제공
하민이가 아빠 유길상씨를 위해 그린 그림. ‘아빠 힘들죠’라는 메시지를 표현했다. 아들의 상상력은 늘 아빠의 예상을 뛰어 넘는다. 유길상씨 제공

지난해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자가 1만 명을 넘어서면서 가정 내 아빠들의 자리가 변화하고 있다. 육아에서 적극적으로 제 몫을 하려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포털사이트 블로그와 카페, 뉴스 83만 건을 분석한 결과 ‘아빠 육아’란 말은 2015년 1만980건에서 2017년 1만9,103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아빠의 역할’이란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함께 나온 단어는 ‘친구’ ‘놀이’ ‘표현’ 등으로, 기존의 ‘돈 벌어오는’ 전통적 아빠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아빠들을 일컫는 ‘육아 대디’ ‘육아빠(육아와 아빠를 합친 단어)’란 신조어가 유행 중이다. ‘육아빠’들은 정신 없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시간을 쪼개 아이와 친근하게 놀아줄지 고민한다.

 ◇분리수거, 운동, 여행… 모든 게 놀이가 된다 
이경용(왼쪽부터)씨가 삼남매 주안, 시온, 은총이와 함께 페트병 볼링 놀이를 준비하고 있다. 페트병에 종이를 붙이고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볼링핀 완성이다. 이경용씨 제공

주안(11), 시온(8), 은총(5) 삼 남매의 아빠인 이경용(40)씨는 생활놀이의 달인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컵, 페트병 등 모든 것이 놀이의 재료가 된다. 아빠가 페트병을 구해 종이를 붙이면 아이들이 거기에 그림을 그린다. 주안이는 글씨 쓰는 걸 좋아하고 시온이는 알록달록 색칠하는 걸 즐긴다. 막내 은총이는 아직 낙서 수준이다. 다 그리고 나면 열을 맞춰 병을 세운 뒤 볼링 놀이를 한다. 신문지를 동그랗게 말아 테이프를 감으면 볼링공이 된다.

이경용씨도 ‘양육은 주로 아내의 몫’이라 생각하던 남편이었다. 그러다 4년 전쯤 아이들이 아빠를 불만족스러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우연히 기사를 하나 접했는데 ‘아이가 10세를 넘기면 부모를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요. 그때 큰아이가 여덟 살이었는데 저한테 남은 시간이 2년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간절한 심정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던 그는 ‘아빠 학교’라는 카페를 알게 됐다. 가입한 첫날 한 아빠가 자신의 아들에 대해 7년이 넘게 성장일기를 써온 걸 발견했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꽤 많은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늦었지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품은 이씨는 아이들과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분리수거 날은 세 남매의 놀이 시간이자 학습 시간이다. 한 명은 페트병, 한 명은 종이, 한 명은 비닐 등 각자 다른 종류의 재활용품을 이고지고 밖으로 나간다. 아빠는 아이들이 들고 있는 병이나 비닐이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알려주면서 캔을 멀리서 던져 ‘골인’시키는 놀이를 한다. 재활용 마대를 함께 흔들어보고 쨍그랑 소리를 들으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맞혀보는 것도 놀이가 된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과거 아빠들의 육아가 이벤트성 놀이에 집중됐다면 요즘엔 집 안에서 매일 할 수 있는 놀이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보건복지부 제공

과거 아빠들의 육아가 놀이공원에 데려가는 등 일회성 이벤트의 성격이 강했다면, 요즘 ‘육아빠’들의 관심은 일상에서 매일 할 수 있는 놀이에 집중돼 있다. 운동이 취미인 김성태(34)씨는 최근 딸 지유(4)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연습하고 있다. 쉬는 시간에 아빠는 턱걸이 운동을 하고, 아이는 운동하는 아빠 몸에 매달려 휴식하곤 한다. 부녀의 운동은 지유가 걸어 다니기 전부터 시작됐다. “등산 캐리어라고 있어요. 거기에 짐 대신 애를 메고 등산을 하는 거예요. 나무, 꽃도 많이 보여주고 이야기해 주고... 나중에 보니 아이가 그때 얘기한 걸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애착 관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됐어요.”

자신의 취미 생활과 육아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갖기 전부터 여행을 좋아했다는 윤영제(32)씨는 육아휴직을 하고 20개월이었던 아들 도윤이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마침 아이 엄마가 해외로 출장을 갔거든요. 어차피 하루 종일 혼자 애를 볼 텐데, 집에서 보든 여행 가서 보든 똑같을 것 같아서 떠나게 됐어요.”

20개월 아들 도윤이를 업고 유럽 여행을 떠난 윤영제씨. 좋아하는 여행에 육아를 결합해 아빠와 아이 모두 행복한 합의점을 찾았다. 윤영제씨 제공

물론 쉬운 여행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려는 아이를 잡고 밥을 먹이느라 본인 식사는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했다. 장거리를 이동할 때도 도윤이가 짜증 내지 않고 재미있게 갈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그는 “정말 힘들 때는 동영상의 힘을 빌렸다”며 웃었다. 도윤이는 의외로 아빠와의 여행에 잘 적응했다. “제가 계획적인 여행 보다는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장소가 있으면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움직일 때는 뒤에 메고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동했어요.”

 ◇ “아이가 잠들어야 퇴근” 아빠 육아가 넘어야 할 산 

육아는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다. ‘육아빠’들이 겪는 공통점인 어려움은 동네에 아빠 육아 동지가 없다는 것. 엄마들의 경우 동네 놀이터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커뮤니티를 통해 육아 품앗이를 하는 반면 아빠들은 주변에 육아를 하는 아빠들이 많지 않아 동료를 만들기가 어렵다. 주하(2), 주안(1) 두 남매를 키우며 육아휴직 중인 정찬우(37)씨는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건 주로 엄마들”이라고 말한다. “아이 유치원 끝나고 데리러 가면 엄마들끼리 모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도 함께 놀이터에 몰려가서 놀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먼저 다가가서 그들만의 리그에 합류하기도 어렵고요.”

김호씨가 그린 딸 소민이의 일러스트.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휴직을 했다. 김호씨 제공

아이들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육아에 참여하지 않다가 갑자기 함께 놀려고 하는 아빠에게 아이들이 좀처럼 마음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경용씨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다고 말한다. “초기엔 ‘아빠 오늘 무슨 일 있어?’라고 묻더군요. 의심의 눈초리를 견디고 거의 매일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해주다 보니 그때야 ‘아빠가 정말로 우리랑 놀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걸 알고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물론 개인 시간을 뺏기는 것, 직장에서 뒤처진다는 두려움, 체력적으로 소모가 심한 것도 아빠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육아휴직을 하고 딸 소민(4)이를 키우는 김호(38)씨는 “육아휴직원을 냈을 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달가워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육아를 해야 하는 시기의 아빠들은 대부분 대리에서 과장급까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거든요. 그럴 때 가정에서까지 완벽한 아빠 노릇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아빠들에 비해 많이 놀아주려 하지만 늘 부족하죠.”

육아의 어려움에 대한 엄마와 아빠의 생각 차이. 엄마는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아빠는 방법을 모르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많았다. 보건복지부 제공

가장 어려운 것은 육아를 ‘돕는 역할’이라는, 스스로 마음에 그은 선을 넘는 일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육아 웹툰을 연재 중인 마말마(필명ㆍ36)씨는 “아이가 잠든 시간이 진짜 퇴근 시간”이라고 말한다. “육아를 정말 자기 일로 받아들이면 퇴근해도 퇴근한 게 아니에요. 아이가 잠들어야 비로소 퇴근이죠. 아빠들은 회사에 오래 있다 보니 아무래도 엄마에게 육아 부담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레 엄마만 찾게 되고 아빠들은 점점 더 난감해지죠. 평소 목마나 이불 김밥말이 등 엄마가 못해주는 놀이를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 “아빠라서 행복해요” 아빠의 자리는 있다 
연년생 형제의 아빠인 심양석씨가 둘째 아들을 들어 올리며 웃고 있다. 심씨는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줄 때 힘들지만 뿌듯하다고 말한다. 심양석씨 제공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빠만의 자리’는 분명해 보인다. 취재 중 만난 많은 아빠들이 가정 내 아빠의 역할에 대해 확신했다. 엄마 놀이와 비교했을 때 아빠 놀이의 가장 큰 장점은 ‘몸으로 놀아주는 것’. 연년생 형제의 아빠 심양석(33)씨는 별다른 놀이 레퍼토리 없이 아이들을 힘껏 안아주고, 높이높이 들어주고,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일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심씨는 “힘들지만 숨 넘어갈 듯이 깔깔대는 아이들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 속에서 아빠가 성장하기도 한다. 유영근(38)씨는 딸 미래(4)의 말이나 행동을 기억해뒀다가 웹툰으로 기록하고 있다. “작년 여름 길에서 뒤따라오던 아이가 나무를 보고는 ‘가을이 되면 나무 색이 변해?’라고 물어보길래 ‘조금만 기다리면 나무 색이 알록달록 해질 거야.’하고 답해줬어요. 따라오는 인기척이 없어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떻게 저렇게 순수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놀랐어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보며 저도 느끼는 게 많아요.”

유영근씨가 딸 미래를 소재로 그린 웹툰. 네이버 베스트도전에 육아웹툰 ‘아빠는 다섯 살’을 연재 중이다. 유영근씨 제공

아이가 아빠를 필요로 하듯, 아빠에게도 아이와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점점 많은 아빠들이 아이와 적극적으로 놀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김호씨는 어릴 적 부모님과의 추억이 적어 아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일찌감치 육아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아이가 엄마하고는 나이 들어서까지 친하게 지내는데 아빠하고는 그러기 힘든 경우가 많잖아요. 어릴 때부터 눈높이를 맞추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김성태씨는 나중에 아이들에게 “금전적인 면이 아닌 정신적인 면에서 기댈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요즘 아빠-자녀 간의 관계에서 정서적 유대를 찾기 쉽지 않아요. 이 시기의 아빠들이 대부분 육아에 소홀할 수밖에 없거든요. 경제적 활동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가장 큰 성장을 하는 3~5세에 정신적인 유대를 다져놔야 한다는 생각에 육아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김진주 인턴기자 (이화여대 심리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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