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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성숙한 민주주의 미래 연다

입력
2018.10.29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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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감 조희연. 그는 이론가이기도 하지만, 활동가이기도 했다. 이론과 활동, 두 바퀴가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 스스로 보여줘야 할 위치에 서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그는 이론가이기도 하지만, 활동가이기도 했다. 이론과 활동, 두 바퀴가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 스스로 보여줘야 할 위치에 서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100년 동안 이 땅에서 활동해온 지식인들에게 이론과 실천의 관계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이 둘의 관계는 학문에 따라 사뭇 다르다. 자연과학이 이론의 영역인 진리 탐구에 주력한다면, 사회과학은 진리 탐구에 더해 그에 기반한 정치적 실천을 추구한다. 이때 정치적 실천이란 정치 전략은 물론 정책 개발을 아우르는 의미를 갖는다.

사회과학 안에서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특히 강조해온 흐름은 진보적 사회과학이다. 진보적 사회과학은 한편에선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을 중시한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다른 한편에선 사회개혁 및 변혁에서의 지식인의 선도적 역할을 주창한 사회운동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지난 100년 우리 지성사에서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추구했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사람이 사회학자 조희연이다. 1990년대 조희연은 진보적 사회운동론에 기반한 진보적 시민운동을 이끈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시민운동은 노동운동과 함께 ‘사회운동으로서의 민주화’로 특징지어지는 한국 민주화의 양대 축을 이뤘다. 조희연의 역할이 시민운동 이론가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회운동과 민주주의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주조하고 이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 했던 전방위적 지식인이었다.

 ◇진보적 사회운동의 이론가 

조희연은 195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성공회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조희연은 사회학자에서 교육 행정가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2014년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됐고, 2018년 재선됐다.

교육감이 되기 전 조희연은 지식사회 안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리면서 그는 진보적 학술운동 및 시민운동을 이끌었다. 1988년 진보적 연구단체들의 연합체인 학술단체협의회 창립을, 1994년 박원순 서울시장, 김기식 전 국회의원 등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결합이라는 진보적 가치에 그 누구보다 충실했던 지식인이 바로 조희연이었다.

유능한 조직가이기도 했던 조희연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내건 참여연대 창립 주역 중 한 명이다. 참여연대는 2004년 낙천ㆍ낙선 운동으로 유감없이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능한 조직가이기도 했던 조희연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내건 참여연대 창립 주역 중 한 명이다. 참여연대는 2004년 낙천ㆍ낙선 운동으로 유감없이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희연의 사회학은 여러 사상적 전통들이 결합돼 있다. 칼 마르크스에서 밥 제솝으로 이어지는 네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국가에 맞선 시민사회의 저항을 부각시키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시민사회론,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우리 안의 보편성’을 주목하는 한국적 사회과학 방법론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마르크스가 염원한 인간해방과 그람시가 추구한 대항 헤게모니는 그의 사상을 지탱하는 양대 지주였다.

지난 30여 년 동안 조희연의 사회학적 탐구는 ‘진보적 사회운동론’에서 ‘투 트랙 민주주의론’으로 진화해 왔다.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2004)는 그의 진보적 사회운동론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조희연은 우리나라 사회운동이 ‘개발독재적 예외국가’의 비정상성에 대한 투쟁에서 출발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이제 그 투쟁의 초점을 자본주의 정상성을 보여주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증가, 성 불평등, 환경 파괴, 동성애자 차별 등은 신자유주의 정상성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정상성들이다. 이 비정상성들에 맞서서 투쟁하는 급진 민주주의야말로 진보적 사회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조희연이 제시하는 급진 민주주의는 노동운동에 더해 여성ㆍ환경ㆍ평화운동은 물론 소수자운동까지를 포괄하는 사회운동 전략이다. 그가 추구하는 사회운동의 목표는 왜곡된 근대를 정상화하는 과제뿐만 아니라 세계화ㆍ정보사회ㆍ생태주의ㆍ페미니즘 등 탈근대적 변동과 담론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과제를 동시에 겨냥한다. 이러한 조희연의 진보적 사회운동론은 시민운동을 위시해 사회운동 전반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한국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데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치학자들은 정당정치로 대표되는 제도정치를 중시하는 반면, 사회학자들은 사회운동으로 나타나는 운동정치를 강조한다. 조희연의 진보적 사회운동론은 운동정치를 대변하는 담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조희연이 이러한 운동정치 중심론에서 운동정치와 제도정치가 함께 가는 병행론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투 트랙 민주주의’(2016)는 이 병행론을 다룬 저작이다.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 접근’이 그 부제다.

투 트랙 민주주의란 뭘까. 조희연은 한국 민주주의를 정당체제에 기반한 제도정치 혹은 사회운동에 주력하는 운동정치의 어느 한 관점에서만 분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간의 부단한 각축 속에서 변화해 간다고 그는 파악한다. 그는 말한다.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정치로서의 사회적 정치와 일체화된 적이 없고, 오히려 제도화된 정치와 정당정치 ‘외부’의 사회적 정치, 그 일부로서의 운동정치와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투 트랙 민주주의는 조희연에게 한국 민주주의를 분석할 수 있는 경험적 분석틀이자 한국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규범적 프레임이다. 제도정치와 운동정치가 병행할 때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할 수 있다는 게 투 트랙 민주주의론의 핵심이다. 이런 조희연의 투 트랙 민주주의론은 정당 중심의 제도정치를 설파해온 최장집의 민주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자 사회운동 중심의 운동정치를 주장해온 자신의 민주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반성으로 제출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분석적 측면에서 투 트랙 민주주의는 한국 민주주의 변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한국 민주주의는 정치사회의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의 운동정치 간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적 측면에서 조희연의 대안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일찍이 정치사회의 정당정치와 시민사회의 사회운동 간의 생산적 교류를 제안한 바 있다. ‘쌍선적 심의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조희연은 교육 행정가로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찾음으로써 지식사회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민주화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사회구성체 논쟁의 주역, 진보적 시민운동의 주창자, 사회운동의 자율과 연대를 중시한 급진 민주주의자, 그리고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을 강조한 투 트랙 민주주의자로서의 조희연을 우리 지식사회는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민사회의 미래 

일본에서 활동하는 지식인 윤건차는 현대 한국 사상의 지도에서 조희연을 사회학자 김동춘과 함께 ‘좌파적 시민사회론자’로 분류한 바 있다. 시민사회는 조희연의 학문 세계를 이끌어온 키워드였다.

시민사회란 국가ㆍ시장과 함께 사회를 이루는 세 주체이자 영역 중 하나다. 정치학자 진 코헨과 사회학자 앤드류 아라토에 따르면, 시민사회는 가족, 결사체, 사회운동, 공공 의사소통 형태로 이뤄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라면 먼저 시민단체인 자발적 결사체와 환경ㆍ여성ㆍ평화운동 등의 시민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시대가 활짝 열린 시기는 1990년대였다.

최근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은 세계화의 강화에 따른 ‘지구 시민사회’의 부상과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온라인 시민사회’의 등장에 맞춰졌다. 특히 온라인 시민사회는 온라인 매체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공론장의 또 하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시민사회는 오프라인 영역과 온라인 영역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시민사회가 갖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보수적 시민사회 대 진보적 시민사회’의 대립 구도가 등장했고 공고화됐다는 점이다. ‘이중적 시민사회’라 부를 수 있는 이 대립 구도는 우리 사회를 ‘두 국민’ 사회로 나눠 왔고, 이념갈등을 위시한 격렬한 사회갈등의 배경을 이뤄 왔다.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지나친 분열과 갈등의 과도한 비용 지불은 우리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시민사회는 본디 서로 다른 차이를 승인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를 추구하는 공간이다. 다가올 100년 동안 이러한 차이와 연대가 생산적으로 공존하는 시민사회를 어떻게 일구어 나갈지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강상중의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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