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에 압도적인 필력 더해져
“우리는 모두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이야기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높은 효율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면, 스스로 이야기 없는 사람이 되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터. 중국 소설가 왕웨이롄(36)이다. 대학에서 물리학, 인류학, 문학을 공부한 그는 지성의 힘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언어로 세계의 심층에 다다르려고” 소설가가 됐다고 한다. 중국 문단은 ‘심오한’, ‘철학적인’, ‘영민한’ 같은 말로 왕웨이롄을 수식한다. 그의 소설집 ‘책물고기’가 나왔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책이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중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참석한 그를 만났다. 이야기를 믿고, 자신을 믿는 자신만만한 작가였다.
책엔 단편 4편, 중편 1편이 실렸다. 왕웨이롄은 소설에 작가의 지문을 남기지 않았다. 5편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소설들이다. ‘왕웨이롄스러운 소설’을 내놓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다. “새로운 글쓰기가 아니면 글쓰기의 의미가 퇴색한다. 현재를 사유하고 시대를 반영하는 게 소설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늘 달라져야 한다. 세상엔 이미 많은 소설이 나와 있다. 비슷한 소설을 보태고 싶지 않다.”
표제작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따온 이야기다. ‘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메아리처럼 울리기 시작한다. 신묘한 한의사가 찾아낸 메아리의 출처는 몸속에 사는 책물고기(書魚), 흔한 말로 하면 책벌레다. 책물고기가 ‘나’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거였다.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나’는 책에 적힌 약초 이름들을 소리 내 읽는다. ‘뇌환’이라는 이름에서 메아리가 멈춘다. 책물고기가 무서워하는 약초라는 뜻. 뇌환을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자 메아리는 사라진다. 신비로운 이야기라고는 없는 요즘 세상을 비튼 우화다. ‘나’의 말. “너무 많은 문자의 의미가 우리 삶의 의미를 은폐했다. 우리 개개인이 다 역사의 기생충이 되었다.”
‘아버지의 복수’의 아버지는 광저우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는 북방 출신의 샴푸 외판원이다. 콤플렉스는 어눌한 광둥어. 잘하려고 애쓸수록 그의 언어는 외로워진다. 외판원에서 잘리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그의 광둥어가 완벽해진다. 말은 택시 기사보다 외판원이 많이 하는데… “이 바보야, 세일즈맨은 자기 말만 하잖아!” 그렇게 괴짜인 아버지는 광저우를 향한 징글징글한 사랑을 그의 방식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뿌리 없음의 한을 푼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표류하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다. 주변인이라는 존재에 관심이 많다. 요즘 작가들은 주변인이다. 문화 중심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책 읽는 사람이 드무니까.”
책물고기
왕웨이롄 지음∙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발행∙288쪽∙1만3,500원
왕웨이롄의 소설은 자기애 아니면 고독을 요설로 풀어내는 소설들과 다르다. 그는 뚝딱 세계를 짓고는 겹겹의 은유, 상징을 감춰 둔다. 그 세계 자체가 야릇하고도 생생해서 감춰진 걸 찾아내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다. 수록작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에서 바다 같은 염전이 전부인 퇴락한 소도시의 삶을 묘사한 필력은 압권이다. 문장을 따라가는 눈이 소금기로 버석거린다. ‘걸림돌’은 중국판 쉰들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중국에 정착한 유대인 할머니의 이야기다. “동정은 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어서” 입을 닫고 산 할머니다. “글쓰기는 뭐와 같은 줄 아니? 꼭 숫돌과도 같아서 그 바위의 모서리를 갈아 더 날카롭게 할수록 나는 피가 나고 정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지.” 작가의 고백일까.
왕웨이롄은 사회주의 시절 태어나 자본주의를 누리고 사는 중국 신인류, ‘바링허우’ 세대다. “그런 규정이 개개인의 개성을 지운다. 단, 그 시절에 나고 자라 미래에 눈을 돌리게 된 건 작가로서의 자산이다. 현재가 미래를 바꾸는 게 아니라, 미래가 현재를 바꾼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삶은 어떤지 물었다. ”글만 써서 먹고살기 어려운 건 중국도 마찬가지다. 소설 초판을 고작 몇천 권 찍는다. 5만권 팔리면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작가들이 돈을 많이 번다면 세계를 이해하는 시각이 좁아질 거다. 문학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 그걸 믿고 간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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