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이 거기서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두만강이었다. 한달음도 안 돼 보이는 저기엔 북녘 땅이 또 그렇게 물끄러미 있었다. 뗏목처럼 만든 배를 타고 강물 따라 흘렀다. 동행하신 선배 학인께서 강물엔 국경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경계에서 유동하고 있었음이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 연길, 그곳도 유동하고 있는 듯했다. 차라리 계절 탓이면 좋으련만, 도시는 활기를 잃은 듯 가라앉아 있었다. “연길의 살길은 북한의 개방밖엔 없습니다.”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의 말에는 깊은 시름이 배어 있었다. 조선족이, 그렇게 연변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로 10년쯤 전 연길을 다녀오셨던 지인의 말씀이 겹쳐졌다. “어찌나 활기차던지 여기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나 싶었지요.” 북한을 품어야 함이 우리에게는 소명이나 이념 차원의 문제이지만 연변의 조선족에게는 먹고 사는 차원의 문제였음이다.

생각이 자연스레 포용으로 흘렀다. 그저 민족주의에 젖은 감상이 아니었다. 흡수통일을 염두에 뒀음도 당연히 아니었다. 남한이 북한을 포용한다고 함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하는 미래를 품음을 말한다. 그러한 미래는 당연히 서로에게 이로워야 한다. 적잖은 세월간 체제와 이념을 달리한 상대를 품으려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래서 포용은, 이를테면 휴머니즘이나 민족주의 같은 도덕적, 이념적 실천이기보다는 ‘무언가를 위한’ 포용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포용은 도덕적, 이념적 차원서도 값지지만 실용적으로도 자못 이로울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진시황의 승상이었던 이사가 쓴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오늘날에도 의의가 제법 크다. 이는 중원의 강자가 된 진시황이 일순 오만해져 축객령, 그러니까 타국 출신 인재를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사가 급히 올렸던 글이다. 이 상서에서 이사는 진나라가 중원의 강자가 됐던 결정적 이유로 진시황의 선대 왕들이 행한 포용을 제시했다. 곧 목공은 중원 각지서 온 빼어난 인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진나라 서쪽 일대를 석권하였고, 효공과 혜왕, 소왕은 각각 타국 출신인 상앙ㆍ장의ㆍ범수를 끌어안음으로써 부국강병을 일궈내고 국토를 넓혀 중원 통일의 토대를 굳건하게 구축할 수 있었음을 설파했다.

그러고는 이들을 품지 않았으면 부유함이란 이익도, 강대국이란 실질도 있을 수 없었다고 단언했다. 감정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마음이 동해서 포용한 게 아니라 분명한 이익이 있기에 그리 했다는 것이다. 포용이 실리를 기반으로 한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음이다. 나아가 그는, 태산은 어떤 흙이든 마다하지 않기에 거대해질 수 있었고 바다는 어떤 물이든 골라내지 않았기에 깊어질 수 있었으니, 군주 된 자는 무릇 인민을 내쫓아선 안 된다며 글을 맺어간다. 품음으로써 강대해지고 심원해짐을 자연의 섭리라고 함으로써 포용으로 인한 이익이 도덕적으로도 정당함을 강조했다.

포용은 그래서 말뜻을 보면 안으로 품어 들이는 내향적 활동이지만,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다음에는 외향적 활동이 된다. 품을 바는 항상 내 밖에 있으며, 어디까지 품어야 이로운지를 따져보기에 그렇다. 포용이 바깥을 향하여 자기를 여는 역량과 바깥의 자기와 다른 바를 품어낼 줄 아는 능력과 직결되는 까닭이다. 하여 권력이나 재력,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하여 포용 능력도 덩달아 커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포용을 강제해선 안 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마음으로는 원해도 팍팍한 삶의 조건 아래서 포용을 행함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길서 귀국한 다음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한반도 평화 실현에 대한 기대가 짐짓 커져 갔지만, 마음 한편에선 연길시의 가라앉은 정경이 연신 떠올랐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나아가 평화가 진전됐을 때 남북한 모두에 의한 이른바 ‘연변 패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맴돌았다. 직접 교류가 가능해지면 남북한 모두 굳이 연변을 경유할 필요가 줄어들기에 그렇다.

중국의 연변 패싱 가능성도 작지 않다. 10여 년 전 중국 정부는 연변자치주가 해오던 백두산 관리를 길림성 정부로 이관했다. 그럼으로써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관광 수입이 증대되는 실익이 창출됐다. 하지만 연변으로 들어오던 백두산 관광 수입이 길림성 정부로 들어감으로써 남북 경색으로 어려워진 연변이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남북 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이로 인해 북한과 중국간 교역이 활성화되어도 그 결실이 연변을 비껴갈 여지가 작다 할 수 없는 근거들이다.

그래서일까. 남북한과 중국 모두에 의해 연변이 한켠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공명하게 된다. 남북이 함께하는 미래를 품는다고 할 때, 그 미래에는 연변의 자리도 있어야 한다는 견해에도 선뜻 동의가 된다. 물론 연변은 엄연히 중국의 일부이고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무엇을 위한 포용인가의 문제가 더 한층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