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미세먼지가 오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 바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다. 미세먼지가 심하면 COPD 환자의 호흡곤란 횟수가 일반인보다 28배 높아진다는 연구도 나왔다.
COPD는 기도에 염증이 생겨 공기가 들어가는 숨 길이 막히는 병이다. 기침, 가래, 호흡곤란이 주요 증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기관지천식, 심부전, 폐렴 같은 다른 질환을 앓아도 생길 수 있어 잘 구분해야 한다. 특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이런 증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잦은 기침, 객담, 점액, 자주 숨가쁨 등이 나타나면 COPD를 의심해야 한다.
COPD는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대표적인 병이어서 대다수 환자가 폐 기능이 30~40%로 떨어져야 검사를 받는다. 폐 기능이 매우 악화된 뒤에야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폐가 2개 있기 때문이다. 한쪽 폐로도 살 수 있으며 폐 기능이 50%까지 떨어져도 무리하지 않으면 별 증상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유광하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실제 국내 사망원인 2위인 심혈관질환 사망자 가운데 심근경색 사망자의 일부는 COPD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국내 사망원인을 보면 폐렴이 4위, 만성하기도질환이 8위인데, 폐렴과 만성하기도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대다수가 COPD로 인한 사망”이라고 했다.
병원 진단 받는 환자 2.8% 불과
COPD로 인한 심근경색 사망자를 제외해도 COPD로 인한 위험은 심각하다. 통계청의 2017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사망원인 4위와 8위는 각각 폐렴과 만성하기도질환이다. 폐렴이 인구 10만명당 37.8명, 만성하기도질환이 13.2명의 사망을 초래했다.
두 질환을 합치면 인구 10만명당 51명으로 국내 사망원인 3위인 뇌혈관질환 사망자(44.4명)에 비견될 만큼 COPD는 사망 위험성이 높다. 특히 지난해 폐렴이 10만명당 32.2명, 만성하기도질환으로 13.7명이 목숨을 잃어 두 질환 사망자가 45.9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1년 새 사망률이 5.1%P나 증가했다.
유 교수는 “이처럼 국내 사망원인 통계에서도 COPD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며 “COPD로 인해 세계적으로 2초마다 한 명씩 사망하며, 2020년에는 허혈성 심장질환, 뇌졸중에 이어 세계 사망원인 3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COPD 환자는 340만명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병원에서 진단받은 환자는 2.8%에 불과할 정도로 진단율이 매우 낮다. 손장원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이처럼 COPD를 조기 진단하지 않은 환자는 병이 악화돼 중증이 돼야 병원을 찾게 된다”며 “국내에서 COPD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이 흔한 병인데도 질환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관리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조기 진단 위해 폐기능검사해야
COPD 초기에는 약물 치료 없이 담배를 끊고, 인플루엔자(독감)과 폐렴 예방접종을 받는 것으로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약물치료가 필요한 때도 간단한 흡입기 치료로 관리할 수 있다. 손 교수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 자주 나타나는 단순 감기도 COPD 증상을 악화시켜 입원이나 사망 위험을 높인다”며 “급속한 COPD 악화를 막으려면 폐렴구균 백신과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하고 흡입기 치료로 증상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COPD는 병원에서 효과적으로 진료하면 질병 악화와 입원을 막을 수 있지만 병이 악화하면 삶의 질이 크게 나빠지고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진다(국내 주요 10대 만성질환 질병 부담 5위). 2017년 ‘국내 COPD 사회경제적 비용 조사 결과, 연간 1조4,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쓰이고 있었다. 고혈압과 비교했을 때 COPD의 사회적 비용은 10배 이상이었다.
김영균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한 번 폐가 망가지면 되돌릴 수 없어 조기 진단해 관리와 치료로 입원과 급성 악화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국가건강검진에 COPD의 표준 진단법인 폐기능검사를 포함해 숨어 있는 COPD 환자를 찾아내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는 국가건강검진에 폐기능검사를 포함하자는 데에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1안은 고위험군(10갑년(10년 동안 하루 한 갑씩 매일 흡연) 이상의 흡연)을 대상으로 50세, 60세에 폐기능검사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이 안을 시행하면 대상자는 매년 20만명으로 21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안은 56세와 66세에 해당되는 모든 사람에게 폐기능검사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검사비, 2차 검진비 등을 포함해 모두 71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진국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국가건강검진에 폐기능검사를 포함하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흡연이 COPD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이지만 최근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미세먼지도 이 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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